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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el & Resort

호텔앤레스토랑 - 대체 불가 서비스로 차별화에 기여하는 시니어 지배인과 그들의 일터로서의 호텔

언제 방문하더라도 그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시니어 지배인은 존재만으로 고객에게 호텔의 위용을 드러내 준다. 특히 오랜 역사를 지닌 호텔일수록 단골고객과의 깊은 유대 관계를 맺는 일이 많아 시니어 지배인의 역할은 다른 직원들로 대체될 수 없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다. 때문에 자주 가는 호텔에 내가 찾던 지배인이 보이지 않으면 컴플레인을 제기하는 고객이 있을 정도로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단순한 친절과 센스있는 응대를 넘어서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발현된다. 그러나 이렇듯 시니어 호텔리어들의 베테랑 서비스가 호텔의 서비스 차별화의 핵심 요소로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비스 차별화에 갈급함을 느끼는 호텔이 많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Senior HR Issue 첫 번째 이슈였던 시니어 호텔리어의 클래식 서비스에 이어, 두 번째로는 시니어 호텔리어의 일터로서 호텔은 어떤 직장인지 의미를 되새겨봤다. 

 


요통에 시달리는 호텔업계

신체활동의 중심이 되는 척추와 허리. 우리의 신체 밸런스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허리는 무거운 체중을 지탱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방향으로 운동이 일어나 여러 가지 원인의 각종 통증에 시달리는 부위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인체와 같이 각 부분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조직은 조직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을 ‘허리’에 비유한다. 허리가 튼튼해야 만사가 형통하듯 그 어떤 조직에서도 튼튼하지 않은 허리를 가지고 있으면 조직이 위태롭기 마련이다.

 
올해 초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실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의 연도별 퇴직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의 허리인 40·50대의 비자발적 퇴직자가 49만 명에 육박하며 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40·50대 시니어는 높은 숙련도와 생산성을 가지고 있는 조직 내 주역이지만, 한편으로 그만큼 높은 임금과 경영진으로의 승계가 이뤄지지 않고서는 더이상 쌓을 커리어가 없는 위치에 있어 아이러니하게도 조직이 힘들 때 제일 먼저 손 놓이는 이들이다.

 

 

이번 코로나19의 여파로 긴축재정에 돌입한 호텔에서 임금 삭감과 구조조정의 위기도 대부분 40·50대 임원급이 짊어졌다. 코로나19 사태가 아니더라도 호텔에서 시니어 직원들의 입지는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 정년은 있지만 정년까지 채우지 못하는 호텔리어들이 대다수인 데다가 그동안의 커리어를 살릴만한 곳이 없어 그간의 소중한 경력들이 사장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호텔리어 공유 & 채용 플랫폼 호텔인네트워크 이정한 대표(이하 이 대표)는 “시니어 직원들의 불안정한 고용은 자연스럽게 주니어 직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주니어 직원들은 시니어 선배를 보며 자신의 미래를 비춰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서비스업계는 박한 연봉에 3교대 근무,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강도높은 업무로 서비스에 대한 사명감을 가진 이들이 비전을 갖지 않으면 근무하기 힘든 구조다. 그런데 선배들의 커리어가 사장되고 있는 것을 지켜봐오며 더이상 남아있어야 할 이유를 못 느낀 주니어 직원들이나,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그렇게 호텔은 계속해서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산업이 한 단계 성장하려면 시니어 직원들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해주고, 주니어 직원들도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처럼 인적 자원의 의존도가 높은 서비스, 환대산업의 호텔일수록 직원들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장은 ‘현장’에 마련돼야 한다. 서비스 스킬은 손님과의 잦은 대면에서 비롯된 다양한 상황을 해결해나가는 경험에서부터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호텔업계 종사자들은 국내 호텔들이 오랜 경력개발을 하기에 그리 좋은 직장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 단추 잘못 꿴 비효율적 인력 운용으로 반쪽짜리 럭셔리 제공하고 있던 호텔들

 

호텔리어의 정년은 대체적으로 60세 전후지만 정년을 맞이해 퇴직하는 지배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존재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국내 호텔 서비스에 대한 전문성이 너무 저개발, 저평가 돼 있다는 데 있다. 이에 대해 라마다 남대문 호텔 & 스위츠 박종모 총지배인은 “서비스 마인드와 스킬은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서비스를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의 교감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서비스업, 특히 서비스업의 정수로 불리는 호텔리어는 현장에 완전히 녹아들어야 스스로의 서비스를 내재화 할 수 있다. 해외 시니어 호텔리어들의 전문성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말단에서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온 내공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국내 호텔 인사구조는 인건비의 이슈가 크다 보니 젊은 직원들을 선호하는데 이직률이 높아 한곳에 오래 있는 직원들이 많지 않고, 그렇다 보니 충분한 현장 경험이 없는 직원들이 업무를 맡으면서 전반적으로 낮아진 연령대로 호텔이 운영, 오랜 경력의 지배인들의 설 곳이 없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인적 인프라의 의존도가 높은 만큼 인건비 비중이 커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국내 호텔들은 하이엔드 서비스를 추구하면서 고급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인건비에 허덕이며 연봉이 낮은 직원들을 채용하고, 이들의 비중이 커진 탓에 많은 경력의 고임금 시니어 지배인들을 정리, 다른 산업에 비해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밖으로 내몰리는 선배들을 보며 주니어 호텔리어들은 비전을 보지 못하고 이탈하는 악순환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돈만 들이면 따라할 수 있는 시설의 고급화는 호텔의 차별화 요소가 되지 못한다. 새롭게 오픈하는 호텔은 계속 늘어나고, 신식 호텔이다 보니 시설은 당연히 기존 호텔들에 비교했을 때 좋을 수밖에 없다. 결국 호텔의 차별화 요소는 소프트웨어, 인적 자원”이라고 이야기하며 “그런데 많은 국내 호텔 오너들이 호텔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가 깊지 않은데다 호텔은 수익구조가 약한 업종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익을 내려고 해 계속해서 인건비를 운운하는, 태생적으로 잘못된 호텔 운영 방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합리적인 가격에 기본적인 서비스만 제공하는 중소형호텔이야 인건비가 객실 가격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이를 AI나 IT 기술 기반의 플랫폼으로 갈음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특급호텔에서까지 인적 인프라를 기술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호텔이 너도나도 서비스 차별화를 외치지만 결국 그저 그런 서비스들만 존재하는 이유가 이처럼 반쪽짜리, 인스턴트 럭셔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지난 시니어 호텔리어 기획에서 만나본 콘래드 서울 권문현 지배인의 럭셔리는 그가 한 곳에서 40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기 때문인 점도 있지만 언제나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그를 일부러 찾는 고객들로 인해 완성됐다. 다른 직원들보다 인건비는 높았을지 몰라도 그가 5년, 10년, 20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존재함으로써 쌓인 서비스가 호텔의 위용을 높이는데 발현된 것이다. 결국 인건비의 문제는 인적 인프라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지 몰랐던 호텔들이 그동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으로 만들어 낸 셈인 듯 보인다.

 


단순 서비스 아닌 관계 맺는 차별화

“26년째 한 호텔에서 3대째 방문해주는 고객을 맞이하고 있다 보니 이제 고객이라는 느낌보다 먼 친척을 두고 있는 느낌이다. 호텔에 방문할 때마다 여행 중에 생각나서 샀다는 선물을 챙겨오고, 매년 친필로 작성한 연하장도 호텔로 보내주는 이들이다. 주변에 워낙 호텔이 많이 생겨 다른 호텔에 묵는 일이 있더라도 한 번씩 들러 안부를 묻고, 어떤 때에는 함께 오던 지인의 경조사를 알려주기도 한다. 그렇게 고객들과 오랜 시간 관계를 맺어오며 쌓아 온 진심이 우리 호텔에서 추구하는 럭셔리 서비스다.” 명동 시내에서 63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보이호텔 객실팀 김희영 부장의 이야기다. 63년의 역사만큼 수십 년째 방문하는 단골고객들이 아직까지 핵심 고객으로 남아있는 사보이호텔. 그들이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호텔을 유지해 오고 지금과 같이 업계가 힘든 때에도 크게 휘둘리지 않는 것은 이렇게 오랜 세월, 꾸준히 찾아와준 고객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호텔의 역사가 길기 때문만은 아닌, 언제나 한결같이 같은 공간에서 이들을 맞이해주는 직원들이 있었던 덕분일 터다.


한편 전체 직원 중 약 10% 정도가 20~30년 이상의 장기근속자인 롯데호텔에는 20대부터 60대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직원이 근무한다. 그중 2019년도 K-Hotelier로 선정된 배병일 헤드 매니저는 현재 시그니엘서울 스테이 레스토랑에서 근무, 30년간 롯데호텔에 몸담아 온 베테랑 호텔리어인데 은퇴를 5년 앞둔 지금까지도 매주 월요일에 30년의 세월 동안 함께한 단골고객에게 직접 안부 문자를 보내고, 한두 번 방문한 고객이라도 재방문 고객은 귀신같이 알아봐 단숨에 고객들을 롯데호텔의 팬으로 만든다고 한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배 매니저의 서비스 영향력은 오랜 기간 롯데호텔 서울에 근무하다 시그니엘 서울로 보직이 바뀌었을 때 그를 따라 스테이로 주 방문 레스토랑을 옮긴 고객이 있을 정도다. 롯데호텔의 오랜 지배인들 중 단연 톱이라고 할 수 있는 배 매니저은 롯데호텔 서비스의 품격을 높일 뿐 아니라 주니어 직원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언택트가 강조되고, 개인주의 경향으로 인해 과도한 서비스는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직원과 고객 간의 작은 유대에서부터 시작된다. 실제로 호텔의 단골손님들이 자주 찾는 직원이 오랜 기간 보이지 않자 호텔에 컴플레인하는 곳도 있을 정도다. 이처럼 정형화된 서비스 매뉴얼이 아닌 인간적 교감을 통해 맺어 온 고객과 시니어 지배인 간 사이의 시간들은 아무리 젊고 유능한 인재의 서비스라도 대신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는 법이다.

 

롯데호텔_ 사내 서비스 강사 제도


시니어 지배인들의 경력 존중해줘야
평생직장은 옛말이라지만 권문현 지배인과 김희영 부장, 배 매니저와 같이 한 호텔에 오래 근무해온 이들은 이미 어느 호텔의 호텔리어를 넘어서 스스로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안정적으로 호텔에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공통적이다. 바로 장기근속 지배인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직원이 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전담 조직 ‘기업문화TFT’까지 구성해 운영하고 있는 롯데호텔은 직원들의 직무 역량 스킬을 강화하고 호텔 전문인 가치 확대, 더 나아가 브랜드 이미지 향상을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중에 베테랑 장기근속 직원들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사내 서비스 강사 제도’로 많은 사내 서비스 강사를 배출하고 있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사내 서비스 강사 제도를 통해 시니어들이 그간 어떤 마음가짐으로 호텔에 근무해왔는지, 겪어온 세월 속에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던 스토리를 주니어 직원들과 공유하면서 주니어는 선배를 보며 동기부여도 되고,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시니어 지배인들에게도 자극제가 되고 있다.”면서 “또한 이러한 소통의 장은 20대부터 60대까지 전 연령대가 근무하는 호텔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물꼬를 터 주기도 해 여러모로 일하기 좋은 직장을 만드는데 윤활유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직률이 현저히 낮아 10년 이상은 물론 20년 이상 장기근속 직원이 많은 사보이호텔도 매년 연말 장기근속 및 공로가 많았던 직원에 상을 수여, 포상하고 있다. 또한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는 고임금의 경력 직원에게 눈치 줄 법도 한데 단 한 번 눈치 주는 일이 없다. 오히려 힘든 시기를 함께 버텨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해, 역으로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며 어떻게 하면 호텔 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조금 과장하면 시니어 지배인 한 명의 연봉은 두 명의 신입 직원을 채용할 수 있는 정도다. 젊고 유능한 호텔리어를 원하지만 인건비 부담으로 비정규직 고용도 빈번한 요즘, 오히려 반대로 시니어 직원들에 대한 끊임없는 임파워먼트를 줬던 호텔들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는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지속적인 커리어 동기부여 필요해
호텔의 기능 성숙도가 아직 높지 않은 수준이라 서비스에 대한 국내 호텔 서비스는 전문성이 저평가돼 있지만 사실 서비스 지배인들의 역량 개발 방향성은 무궁무진하다. 문화와 산업이 발전하면서 고객들의 니즈가 세분화되고 이에 따라 호텔리어가 해야 할 일들도 다변화되기 때문이다. 자칫 서비스업은 같은 멘트를 하고 같은 동작을 하는 단순한 업무라고 보일 수 있지만 만나는 고객들은 천차만별이고, 직원들도 직장에서 장기적인 비전을 보지 못한다면 아무리 시니어 지배인이라도 호텔을 떠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호텔은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커리어패스를 세울 수 있도록 그들의 비전을 마련해줘야 한다.


여성, 그리고 로컬인재 양성에 앞장서고 있는 아코르 앰배서더 그룹은 ‘총지배인 양성과정(IHMP, International Hospitality Management Program)’과 다양성 증진을 위한 사내 네트워크 ‘라이즈(RiiSE)’의 운영을 통해 지배인들이 커리어에 동기부여를 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자극을 불어 넣고 있다. 어떤 이유에선지 여성이 수장 자리에 오르는 일이 터부시됐던 호텔업계에서 아코르 앰버서더는 국내 24개 호텔의 20%를 한국인 여성 총지배인으로 배출하며 여성 호텔리어들에 새로운 커리어 개발의 기회를 열었다. 그룹의 세 번째 여성 총지배인 노보탤 앰배서더 서울 독산의 김경림 총지배인은 “20년 전 처음 세일즈 마케팅 지배인으로 그룹에 입사해 근무하면서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자 아무래도 이직의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판촉팀장의 자리에 올라갔을 때까지도 주위 다른 대기업 호텔들에서 여자 부장급부터는 볼 수 없더라. 임원도 당연히 없었다. 호텔리어로서 근무하게 된 이상 최정점에 올라가 보자는 개인적인 목표가 있었는데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그때 IHMP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이를 새로운 목표로 세우게 됐다.”면서 “총 18개월의 과정을 거치는 교육은 먼저 각 국가 내의 경쟁을 통해 1~2위에 올라야 글로벌 호텔리어들과 함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당시 여성과 로컬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그룹의 의지가 확실히 보였기 때문에 그것이 큰 동기부여가 됐고, 교육을 통해 세일즈 이외 전반적인 호텔 업무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돼 스스로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이야기하며 그룹의 이러한 동기부여 프로그램을 후배 지배인들도 경력개발에 적극적으로 이용하길 바라는 마음에 RiiSE를 통해서도 열심히 어필하고 있다고 전했다.

 

Accor Ambassador Korea_ RiiSE


직원에 대한 배려, 복지로부터 비롯되는 안정성
장기근속, 베테랑 직원들에 대한 존중, 그리고 끝이 보이는 것 같았던 그들의 경력개발에 대한 새로운 비전 제시. 두 가지 인적 자원관리 전략의 핵심은 ‘안정성’이다. 다들 힘들다 손을 내젓는 서비스업계에 몸담고자 마음먹고, 호텔리어로서의 길이 나의 길임을 받아들인 이들과 아닌 이들의 서비스는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서비스 차별화를 꾀하고자 한다면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르는 불안함, 적정 수준 이후에는 도태되는 전문성, 커리어에 대한 불확실성은 배제하고, 고객 서비스에 대한 고민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근무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호텔의 몫이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 조성을 위해 호텔은 직원에 대한 배려인 좋은 복지도 자연스럽게 고려하게 된다. 


롯데호텔은 최장 2년의 남녀육아휴직과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자녀를 둔 여성 직원에 대해서는 최장 1년 동안 휴직할 수 있는 ‘자녀입학돌봄 휴직’, 그리고 퇴직 후 진로 설계를 지원하는 ‘라온하제’ 프로그램 등 전체 연령대를 아우르는 생애주기 프로그렘을 제공하고 있고, 사보이호텔도 요즘에는 찾아보기 드문 직원 숙소를 갖추고 있는 데다가 직원 수가 20명 남짓으로 규모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직원 식당까지 운영 중이다. 또한 자기계발을 위한 교육비, 동호회 활동 지원과 함께 여성 직원들이 출산 후 복귀할 수 있는 문화까지 마련돼 있다.

 


더 큰 문제는 중소형호텔, 오너의 서비스 마인드 있어야
한편 특급 및 인터내셔널 체인 호텔이야 비교적 체계적인 인사구조를 통해 직원들의 커리어패스가 구분돼 있다고 하지만 문제는 중소형 호텔의 이들의 경우 사보이호텔과 같은 경영철학이 없으면 중소규모에서 일당백의 시니어 호텔리어가 활용될 수 있는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시니어 직원들을 버틸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이다. 한 시니어 호텔리어는 “정년 전, 아직 일할 수 있는 나이에 호텔을 그만두게 돼 3~4성급 호텔로 이직하는 동료들을 보면 호텔업계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한 오너의 지나친 운영 간섭이 큰 문제가 되는 듯 보인다. 너무 적은 인원으로 투자는 없이 최대 효율을 뽑으려고 하기 때문에 이를 버티지 못하고 나오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면서 “특급호텔에서 20~30년 경력을 쌓아온 이들이 운영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3~4성급 호텔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는데,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인력도 구축이 안 된 곳들이 많아 특급호텔과 중소형호텔의 서비스 인력 양극화는 계속해서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국내 호텔업계가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미국과 같이 한 산업으로서 호텔을 정의하기엔 가야 할 길이 많지만, 한 업계에서 20년, 30년이고, 더 나아가 서비스 ‘장인’들이 배출이 돼야 앞으로 국내 호텔들이 성장해나가야 하는 방향성이 보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니어 지배인들의 양성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기. 허리가 튼튼해야 산업이 건강해지듯이 높은 숙련도와 생산성을 가지고 있는 시니어 지배인들의 역할에 대해 호텔업계는 다시 정의를 내려야 할 때다.

 


INTERVIEW

 

“사보이호텔의 큰 강점인 오랜 직원들,
호텔만의 럭셔리 만들어가는 보람 느껴”
사보이호텔 객실팀 김희영 부장

 

Q. 호텔리어로 근무하게 된 계기과 그동안 호텔리어로서 일해온 경력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호텔이 첫 직장은 아니었다. 원래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해 섬유회사의 무역부에서 일을 했는데 잦은 추가 근무와 심한 남녀차별을 겪었다. 그때만 해도 4년제 졸업한 여직원은 찾아보기 어려웠을 때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회사를 나왔다. 두 번째 직업 선택에 있어서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곳을 찾다 관광대학에 진학, 호텔은 남녀차별이 없고 정해진 근무시간이 있었던 곳이라 망설일 것 없이 호텔을 직장으로 선택하게 됐다. 사보이호텔에서의 근무는 1994년 12월 
1일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쭉 이어오고 있다. 다행히 적성에 맞아 평생직장이 됐는데 사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생각보다 할 게 많아 당황스러웠다(웃음). 어학 공부는 물론 마케팅도 배워야 하고 객실 예약시스템도 알아야 했으니 말이다. 

Q. 한 호텔에서 26년을 근무했다. 다른 호텔 경험도 해보고 싶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오랫동안 사보이호텔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물론 중간에 특급호텔로 이직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겉으로 봤을 때 보이는 외국계 체인에 대한 동경이나, 대기업 호텔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호텔의 ‘호’자도 몰랐던 시기기도 했고, 당시 사수였던 객실 지배인님이 스위스 그랜드호텔 출신으로 너무 멋진 분이어서 일단 사보이호텔에서 일을 배워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사수를 통해 많은 것들을 배웠다. 당시 우리 호텔뿐만 아니라 한국 전반적으로 일본인 관광객들이 70%를 차지할 정도로 많았기 때문에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고, 서비스 지배인의 유전자를 타고난 것 같았던 사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부족한 부분이 많음을 알게 돼 이직은 둘째치고 내실부터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신라호텔에서 하던 교육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선망하던 특급, 대기업 호텔의 직원들과 이야기해보니 결국 고객이 호텔에 원하는 니즈는 다 똑같다는 것을 알게 돼 굳이 이직을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도 한 몫 했다. 그렇게 어느 호텔에 있든 ‘나만의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나의 호텔리어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만의 서비스를 만들어 가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된 단골고객과의 접점이 계속 쌓이면서 막 보람을 느끼게 돼 사보이호텔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은 여러 이유가 맞물렸던 것 같다.

Q. 오랜 기간 근무해오며 경험해본 사보이호텔은 어떤가? 직원으로서 어떤 부분이 가장 좋았는지 이야기한다면?
직원이라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경영진의 마인드가 너무 좋다. 60년 넘게 3대째 이어온 내력이 있는 터라 내실 있는 운영을 위해 제도적으로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에 대한 구분이 명확, 직원들이 고객 서비스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무엇보다 직원들에 대한 배려가 깊다는데 가장 큰 장점이 있다. 단순히 직원을 이윤 창출의 도구로 봤다면 가능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도 아직까지 직원들은 큰 문제없이 각자의 업무를 보고 있다. 직원이 안정적이어야 서비스도 안정적으로 나온다는 경영방침이 직원들에게 피해는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는 대처로 이어진 것이다. 이렇듯 경영진이 한결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 직원들은 안심이다.


직원들이 안정적이니 호텔 운영에 기복이 없다. 특히 중간 간부 이상이 굳건하기 때문에 밑의 직원들은 차근차근 업무를 배울 수 있어 주니어 직원들이 경력을 쌓아가는 데도 무리가 없다. 주변 호텔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간 관리자들의 이탈이 잦아 경력이 1~2년 남짓한 직원이 주임으로 승진하고, 그렇게 사수 없는 주임이 새로운 신입 직원의 채용으로 또다시 팀장이 되고, 팀장에서 총지배인으로 정신없이 자리에 오르면서 경력에 비해 과도한 책임감을 떠안고 호텔을 떠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더라. 호텔리어는 고객과 대면하는 접점에서 보람을 느끼는 직업인데, 충분히 보람을 느끼지 못한 채 업계를 떠나게 돼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런 면들을 지켜 봐오며 스스로를 되돌아봤을 때 떠오르는 고객들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호텔리어로서 좋은 직장에 근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Q. 단골고객과 따로 메신저 연락을 할 정도로 가까이 지내고 있다고 들었다. 단골고객에게 사보이호텔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호텔의 모토가 ‘내 집처럼 따뜻한 공간’으로 제2의 집처럼 여길 수 있는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다. 실제로 20년 동안 연중 200일 이상을 투숙하며 자신의 집보다 우리 호텔을 더 편하게 여겨 직원들과 직원 식당에서 함께 식사까지 하던 고객이 있었으니 말이다. 60년 전과 다르게 명동 일대에 화려하고 럭셔리한 호텔들이 많이 늘어났지만 다른 호텔에는 없고 우리 호텔에만 있는 것이 바로 고객을 알아봐 주는 오랜 직원들이다. 처음 호텔에 발을 디뎠을 때 봤던 직원들이 자신과 함께 늙어가는 모습을 보며 다른 호텔에서는 찾을 수 없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 종종 오랜만에 방문하는 단골손님과 서로 왜 늙지를 않냐며 장난을 칠 때면 이제는 정말 손님 대 직원의 관계가 아닌 먼 친척이 놀러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Q. 이제는 사보이호텔의 가장 오래된 직원이 됐다. 앞으로 호텔리어로서 기대하는 비전과 계획은 무엇인가?
한곳에서 일을 오래 하게 되면 아무래도 타성에 젖을 수 있다. 이제 손님이 하나만 얘기해도 열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어떤 때에는 일본사람과 대화를 하는데 일본사람보다 빨리 말할 때도 있다. 너무 익숙해진 탓에 외다시피 한 멘트를 줄줄 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전과 다르게 주 고객의 국적도, 연령층도, 그에 따른 니즈도 천차만별로 변해가고 있어 점점 더 타성에 젖지 않는 서비스를 해야 한다 다짐하고 있다. 고객 한 명 한 명은 다 다른 이들이므로 순수하게 진실된 마음을 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AI나 키오스크로 서비스 인력이 대체되고 있는데 AI만도 못한 서비스를 하면 안 되지 않나(웃음). 사보이호텔의 강점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고객들에 ‘전달’ 아닌 ‘대화’를 통해 편안한 마음으로 호텔에 방문할 수 있도록 안주하지 않고 노력해 더 많은 단골고객을 만드는 것이 나의 비전이자 계획이다.

 


글 : 노아윤 / 디자인 : 강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