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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춘 것 같다. 필자도 한달 동안 재택근무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해야할 일들이 미뤄지고 있는 상태다. 이럴수록 다시 마음을 다잡고 본연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이번 달은 디자이너로서 잠시 ‘숨 고르기 시간’으로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창의성에 관한 주제로 기고해볼까 한다. 디자이너로서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 예술가로서의 감각이냐? 디자이너로서의 합리성이냐?인데 예술과 디자인의 사이의 논점과 예술과 디자인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사진 출처_ 구글)

예술과 디자인

디자인과 예술가는 모두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와 감각적인 표현을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은 있다. 하지만 예술과 디자인의 사고 과정과 관점은 다르다. 
예술은 미적의 어떤 조형물을 만드는 인간의 창조 활동이며 디자인은 주어진 환경과 목적에 맞게 조형적으로 어떤 것을 실체화하는 것이다. 즉, 예술은 작가의 생각이나 표현하고 싶은 나만의 철학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에 반해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생각이나 표현도 중요하지만, 내가 만들 디자인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슨 목적으로 사용되는지, 디자이너 중심이 아닌, 사회, 디자이너 외 소비자 조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니즈를 바탕으로 해 출발한다. 누구보다 많은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를 가져야하며 끊임없이 사람들과 소통하고 의견을 수렴해 피드백 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개인적으로 빨간색을 좋아해서 제품을 빨간색으로 디자인했다면 그건 디자인이 아닌 예술을 한 것이다. 특히 디자이너는 무엇보다 객관화된 자료를 중심으로 디자이너의 조형적 감각을 더해 표현해야 한다. 디자이너는 색채, 형태, 재료, 질감 등이 기본적인 요소기에 조형적 미의 관점으로 이를 서로 잘 조화시킬 수 있는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만들고 해석하고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것이 디자인이다. 디자인의 본질은 그 목적이 개인의 문제 해결이 아닌, 사회, 대중들에게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해석과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이 디자인의 본질이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공감과 감동을 공유하는 것이 디자인이 주는 매력과 가치다. 이는 상업성을 기반으로 존재한다. 


그에 반해 예술가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보다 자신의 표현하고 싶은 것을 구현하는데 있다. 이는 한 개인의 생각을 표명하는 의사고 예술의 근원은 사적인 생각으로 스스로 창조하며 자기 본질에 가깝다. 이 역시 새로운 생각에 대한 발견을 위한 행위다. 
디자인과 예술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형의 사고, 생각, 인사이트들을 유형적으로 표현해 조형화한다는 점이다. 이때 다양한 표현 방법의 툴을 사용해 적절한 비례감과 조형미, 색채와 재료, 패턴, 공간감을 표현하는데 이때 작가의 표현방법에 따라 다양하고 개성 있는 결과물이 탄생된다. 하지만 이 결과물은 목적이 명확히 다르다. 한마다로 나를 위한 것인지, 타자를 위한 것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미학적 인식

<그림 2> 이집트 시대의 명각

최초의 아름다운에 대한 사상, 아름다움에 대한 미학적 인식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어떤 것을 창출하는 활동은 막연하지만 그외 다른 활동들과 구별됐을 것이다. 
아름다움 또는 미(美)에 대한 인식은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됐다. 인간은 스스로 질서, 조화, 아름다움에 대한 의식 없이 춤, 노래 등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구분없이 예술을 해왔다. 하지만 몇몇 특정한 사물의 아름다움에 대해 어느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유독 어떤 사물, 행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봤을 것 같다. 아름다운 것에 대해 고대 이집트인들도 마찬가지였다고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한다.


이집트인들도 그들의 예술적 창조물에 대해 아름다움의 가치를 몰랐을 것이다. 우리가 현재 그들의 종교적, 문화적, 추상적 특질이 반영된 조각과 벽면의 부조에 감명 받는 것과는 반대로 그 시대의 그들은 그것들에 대한 의미와 인식을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 이 작품들은 무덤 속 어둠에 숨겨져 있었으며 그들의 건축은 높은 수준으로 찬양받았지만 <그림 2>에서 보여지듯 수만 개에 이르는 이러한 명각(銘刻)에서 상찬하는 것은 그 명각이 지니는 금속의 영구성, 강인함, 풍부함 등이다. 그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접근보다는 신에 대한 숭배와 관계를 영원히 기록하고 싶은 의지와 왕의 재력을 과시하고 보존함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아름다움에 대해 종교적, 정치적 태도를 구별하지 못했으며 예술이란 특별함에 의구심과 인식하지 못했다. 

 

<그림 3> 황금비율 / <그림 4> 황금비율의 모나리자

고대에는 황금비율(Golden Ratio)이 존재했다. 고대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대상을 객관적 속성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무게, 질량처럼 어떤 아름다움에 대한 측정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황금비욜 1:1.618은 수학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비율이고 우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비율이라 칭한다. 이는 어떠한 선으로 이등분해 한쪽의 평방을 다른 쪽 전체의 면적과 같도록 하는 분할이다. 특히 무엇보다 조화를 중시하는 그리스인들은 이 비례가 가장 세상에서 아름답다고 정의하며 건축, 조각, 예술품에 적용하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모나리자의 인체 비율도 황금비율에 의해 제작된 것이라 한다. 하지만 과연 수학적 비례만으로 미를 창조할 수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요즘 이에 대한 반론에 대해 많이 언급되고 있다.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대상의 객관적 특성이 그것을 판단하는 근거에도 어떠한 대상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다르고 주관적이다. 이는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를 거치면서 아름다움은 점점 더 주관적이고 이 시대는 아름다움을 감각이라는 매개로 주관적인 판단기준에 의해 쾌감을 주는 속성으로 칭했다. 

필요성에 근거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미켈란젤로는 ‘군더더기의 정화’라 말했고 의미 없는 장식과 수식은 ‘기형(Deformity)인 상태, 미완의 상태’로 취급했다.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미학(美學, Aesthetics, Esthetics)은 철학의 하위 분야로서 ‘아름다움’의 본질을 묻는 학문이다. 최고의 미에 대해 구별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아름다움이라는 미적범주(美的範疇)에는 우아미, 숭고미, 비장미, 골계미 등이 있다. 그중 숭고미(崇高美)는 숭고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움이다. 미학적 관점에서는 자연을 인식하는 자아가 자연의 조화를 현실에서 추구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미의식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이 보통 이해할 수 없는 경이로움, 위대함, 신의 경지를 추구하는 미다. 

플라톤은 위대한 아름다움을 이데아에서 찾았으며, 근대 미학을 체계화한 이마누엘 칸트는 보편적으로 고정된 美는 없고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형식(Form of finality without an end)’을 ‘미’라고 규정했다. 칸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근본으로 예술에 대한 창조활동이 일어난다고 보고 예술이 자연처럼 되고 보일 때 가장 아름답고 이러한 아름다움이 도덕적으로 형성화된 미적 개념으로 봤다. 아름다움은 개인적이고 그것을 만드는 틀은 보편적이라 했다. 칸트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개인의 미적인 이념을 존중했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위해 필요한 것은 주체에 대한 진정성과 도덕적인 태도. 분명한 표현, 형식미의 주체를 표현함에 있어 진지성과 거짓 없는 표현이다. 이러한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은 언어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그 이념을 실천했고 체계적으로 시도하려는 행위였다. 아름다움에 대한 지각은 우리가 사물과 상태와의 상호작용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인식이다. 

 


이규홍

ASC design 대표

domuskyuhong@gmail.com


글 : 이규홍 / 디자인 : 강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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