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 호텔 ˙ 외식업계에 미풍일까 돌풍일까
호텔 일각에선 맞춤메뉴 선보여
9월 28일, 드디어 ‘그 법’이 시행됐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금지법)에 대한 외식업계의 반응은 시행 전부터 우려가 컸다. 주로 세미나 혹은 미팅을 위해 공직자나 언론인, 교직원 등이 호텔의 연회장과 레스토랑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호텔 레스토랑의 식사 가격은 대부분 1인당 3만 원을 가볍게 호가하기 때문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다. 부패를 근절하고자 나타난 청탁금지법은 과연 호텔·외식업계에 어떤 영향을 가져왔을지, 호텔&레스토랑이 취재했다.
취재 김민신 기자
청탁금지법 (김영란법) 포스터
상한액 3만 원에 호텔·외식업계 긴장
청탁금지법은 법안 대상자들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과 상관없이 법에서 정한 상한액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적용 대상기관인 국회, 교육청, 공기관 등 공공 분야는 물론 언론 및 방송분야도 예외 없이 청탁금지법이 가져올 변화에 촉각을 세웠다. 이미 청탁금지법이 시행 예고됐을 때부터 작은 움직임은 있었다. 각 기관 및 기업에선 청탁금지법에 따른 업무변동과 주의할 점에 관한 교육을 펼치고 있으며, 청탁금지법을 좀 더 쉽게 설명하는 도서와 어플리케이션도 출시됐다. 심지어 청탁금지법을 위반했을 시 이를 신고해 포상금을 노리는 일명 ‘란파라치’까지 등장했다. 호텔, 외식업계 역시 이러한 변화를 주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청탁금지법에서 정하는 식사, 주류, 다과 등의 상한액은 3만 원인데, 바로 이 액수가 문제점으로 발발한 것이다. 고가 메뉴와 인건비로 운영되는 호텔 외식업의 특성상 1인 3만원이 넘지 않는 식사를 준비하기엔 애로사항이 많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에 법안 대상자들을 고객으로 해온 호텔· 외식업계 역시 청탁금지법을 의식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연회 신메뉴
외식업계 내에도 온도차 존재해
청탁금지법으로 인한 반향은 외식업계 내에서도 온도차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레스토랑을 보유한 호텔 중 일부는 아직까진 청탁 금지법에 대한 직접적인 코멘트를 삼가는 분위기다. A호텔 관계자는 청탁금지법을 의식한 레스토랑 신메뉴를 준비하면서도, “공개적으로 인터뷰는 하지 말자는 것이 내부지침”이라며 말을 아꼈다. B호텔 관계자 역시 마찬가지로 “예전보다 저렴한 가격의 메뉴를 출시하긴 했지만 꼭 청탁금지법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엔 곤란”하다고 말했다.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동안은 업계 분위기를 살피려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읽힌다. 또한 외식업의 성격에 따라 청탁금지법의 영향과 우려도 차이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성규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주임은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후 조금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하곤 있지만, 매출이 눈에 띄게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전반적으로 영향이 심하지 않은 편이다.”라고 말하며 “다만 레스토랑의 경우는 좀 다른데, 예를 들어 일식처럼 재료의 단가부터고가일 수밖에 없는 곳은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고민이 좀 많아졌다.”고 전했다.
한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연회는 3가지 코스로 구성된 실속형 맞춤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에피타이저, 메인요리, 디저트 등 3코스로 준비된 코스요리는 한식과 중식, 양식, 일식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돼 선택의 폭을 넓혔다. 한식의 경우 한우사골 우거지탕 또는 비빔밥이 제공되며, 중식은 해물덮밥, 양식은 쇠고기버거 스테이크 또는 나폴리 파스타, 일식은 장어 덮밥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서울 세종호텔 라운지&다이닝 베르디는 10월 1일부터 테이크아웃 도시락 6종을 출시했다. 가격대는 최소 1만 원부터 최대 3만 2000원으로, 가장 최고가인 찹스테이크&새우구이 도시락을 제외한 나머지 안심스테이크 도시락(2만 7000원), 소불고기 도시락(2만 2000원), 연어스테이크 도시락(1만 8000원), 치킨스테이크 도시락(1만 3000원), 석쇠불고기 도시락(1만 원)이면 청탁금지법에 개의치 않고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다.
또한 베르디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전부터 3만 원 이하로 구성된 조찬 및 점심 메뉴를 운영하고 있던 터라 오히려 최근 들어 다시 호응을 얻고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울가든호텔 레스토랑 라스텔라도 청탁금지법 이전부터 2만 9700원짜리 점심뷔페를 선보여 왔기 때문에, 청탁금지법 시행 후 런치 예약률이 상승했다. 신세계조선호텔이 운영하는 뱅커스 클럽은 청탁금지법 시행일인 9월 28일에 맞춰 3만원 연회 메뉴를 선보였다. 조식은 스크램블, 쇠고기 버섯죽, 황태북어국 이렇게 3가지 메인 메뉴 중심의 코스로 구성됐으며, 오찬 비즈니스는 광둥 스타일의 중식코스 3가지를 기존 메뉴에 추가로 구성했다. 김홍기 뱅커스 클럽 지배인은 “청탁금지법에 따른 미팅 장소 섭외의 어려움 때문에 3만 원 메뉴를 찾는 문의를 많이 받았다.”며, “평소보다 조찬에 대한 문의가 30% 정도 증가했다. 가벼운 식사로 회의를 진행할 수 있는 조찬 미팅의 수요가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더리버사이드 호텔의 중식당 따뚱은 오픈 7주년을 기념해 전체적인 가격 인하를 실시했다. 특히 주중 런치 및 디너 이벤트 세트는 청탁 금지법에 맞춰 1~2만 원대의 가격으로 구성했다. 주중 런치 이벤트 세트메뉴는 찹쌀 탕수육, 칠리 닭고기, 중새우요리 등 2가지 요리를 택하고 식사류와 디저트까지 제공되며 가격은 1인 1만 45000원이다. 또한 주중 디너 이벤트 세트메뉴는 스프와 함께 활전복 연두부찜, 유린기, 미극전기, 찹쌀 탕수육 등 3가지 요리를 택하고 식사, 디저트까지 포함해 1인 2만 9900원에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가격 인하에 대해 호텔관계자는 “좀 더 캐주얼한 연령대의 다양한 고객들에게도 특급호텔 중식당의 깊은 맛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하며 “호텔 중식당의 문턱이 높다는 편견을 깨고, 친근하고도 품격있는 서비스로 다가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뱅커스 클럽 중식 오찬메뉴
사실상 전 국민이 청탁금지법 적용대상
한편 황교안 국무총리는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빚어진 혼선과 미비점을 점검하고 보다 체계적으로 검토할 것을 당부했다. 청탁금지법의 적용대상은 사실상 전 국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직자, 교직원 등 적용대상이 아니더라도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직종도 영향을 받는다. 그럼에도 너무 경직되고 모호한 법령으로 많은 문의가 쏟아진 점을 반영해 청탁금지법이 지금보다 좀 더 보완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국민권익 위원회 홈페이지에선 청탁금지법 직종별 매뉴얼과 사례집을 열람할수 있다. 시행하기 전부터 우려와 기대를 받아 온 청탁금지법이 수정과정을 거친다면, 호텔 레스토랑을 비롯한 외식업계엔 또 어떤 바람이 불지 지켜볼 일이다.
더리버사이드 중식당 따뚱
INTERVIEW
외식업계에 대대적인 지각변동 있을 것
- 창업피아 이홍구 대표 -
Q. 청탁금지법 시행 후 외식업계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변화가 있는가?
가뜩이나 장기 침체에 빠져있는 외식시장에 청탁금지법이 시행되면서 다소 걱정하는 모습들이다. 다만 고가의 음식을 다루는 외식업 대표들의 시름은 깊은 반면, 고가의 메뉴를 다루지 않는 중저가 외식업 대표들은 상대적으로 걱정이 조금 덜하다. 특히 그 중에서도 교육관련 종사자들과 직무연관성이 깊은 상권에 위치한 음식점과 제과점 등의 외식업은 크게 긴장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얼마 전 한 언론사의 카메라에 잡힌 초등학교 가을 소풍의 점심식사 분위기는 청탁금지법을 실감하게 하기 충분했다. 예전처럼 선생님과 학생들, 학부모들이 함께 점심을 즐기는 모습은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Q. 청탁금지법이 주로 어떤 외식업종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칠거라고 생각하나?
고가의 음식을 판매하는 고급 레스토랑, 일식당, 고급 중식당, 한정 식전문점 등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예약됐던 모임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회식을 하던 단체손님들이 뚝 끊겼다. 특히 법인카드를 주로 사용했던 상권과 관련업종들은 청탁금지법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Q. 반대로 청탁금지법의 영향을 적게 받거나 플러스가 될 수 있는 외식업종이 있을까?
집밥 전문점과 같이 건강을 강조하며 1~2만 원 내외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운영하는 음식점들이 청탁금지법의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고급 음식점에서 접대를 주고받던 외식 이용자들이 청탁 금지법으로 인한 부담을 최소화하되, 잘 먹었다는 느낌을 받기 좋기때문이다. 또한, 1인식 샤브샤브 전문점 등과 같이 다소 가볍지 않으면서 독립 공간의 이미지를 주는 음식점들도 각광을 받을 수 있다.
Q. 호텔 외식업계 일각에선 사실상 청탁금지법을 의식한 신메뉴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도한 운영방법은 아니지만 태세에 적응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호텔이 주는 특성상 호텔 레스토랑은 가족 단위보다는 접대와 모임의 성격이 강한 비즈니스의 연장선임을 감안할때, 메뉴의 변화를 주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반찬의 가지 수를 줄이거나, 외국산 식재료로 전환하는 방법을 모색하거나, 1~2만 원대의 새 메뉴를 선보여 기존에 호텔 레스토랑을 이용하던 고객들을 잡으려는 노력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Q. 앞으로 청탁금지법으로 인한 호텔 외식업은 물론 외식업계 전반의 전망은 어떠한가?
오피스, 관공서, 학교 등지의 고급음식점들의 경우 향후 외식업 신규 출점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기존 음식점들은 매물로 나올 확률이 높아졌다. 한편으론 청탁금지법을 활용한 합리적인 가격의 다양한 음식점들이 생겨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이러한 분위기가 고가의 음식점을 찾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넘어 외식 자체의 횟수가 줄어들게 됨으로써 외식업계 전반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세종호텔_테이크아웃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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