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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각 / ▲ 율곡기념관

 

강릉은 고속철도(KTX) 개통으로 교통의 편리성 때문에 당일여행은 물론 주말을 이용한 1박 2일 여행지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2018동계올림픽 이후 올림픽 도시로 국제적 인지도가 크게 상승했고, 세계적 관광도시로 비상하고 있다. 최명희 전 강릉시장은 2015년 10월 20일, 제96회 강원전국체전에 참가한 재중국(在中國)선수단 임원진을 초청한 만찬자리에서 “우리나라 화폐 중 최고액인 5만 원 권의 신사임당, 그리고 5000원 권의 이율곡은 바로 이곳 강릉의 인물”이라며 “위인이 나는 도시 강릉에서 2018평창동계올림픽 빙상경기가 열린다.”라며 강릉을 홍보하기도 했다.

강릉은 우리나라 대표 역사 여행지다. 관동지방(關東地方)의 대표 도시인 강릉은 다양한 문화유적이 있는데, 조선시대 대학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와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과 관련해 유명해진 강릉의 대표적 유적지인 오죽헌(烏竹軒)을 빼놓을 수 없다.


강릉시 율곡로에 위치한 오죽헌은 조선 초기 건축물로 건축사적인 측면에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데, 이런 이유로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65호로 지정됐다. 오죽헌은 원래 수재 최응현(睡齋 崔應賢: 1428(세종10)∼1507(중종2), 조선 중기의 문신)의 집이었는데, 둘째 사위인 이사온(李思溫: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신사임당의 외조부)에게 상속됐다가 이사온의 딸 용인 이씨(龍仁 李氏: 신사임당 어머니)에게 상속됐다. 용인 이씨는 딸을 다섯 뒀는데, 재산을 물려줄 때 외손자인 이이에게는 조상의 제사를 받들라는 조건으로 서울의 중부(中部) 수진방(壽進坊, 지금의 수송동과 청진동)에 있는 기와집 한 채와 전답을 줬고, 권처균(權處均: 율곡 이이의 이종제(姨從弟))에게는 묘소를 보살피라는 조건으로 오죽헌 기와집과 전답을 줬다. 외할머니로부터 집을 물려받은 권처균은 집 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무성한 것을 보고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 했는데, 이것이 후에 집 이름이 됐다. 오죽헌 몽룡실(夢龍室)에서 율곡 이이가 태어남으로써 더욱 유서 깊은 곳이 됐다. 오죽헌 경내에는 오죽헌을 비롯해 문성사(文成祠), 사랑채, 어제각(御製閣), 율곡기념관, 강릉시립박물관 등이 있다. 문성사는 율곡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며, 어제각은 율곡의 저서 「격몽요결(击蒙要诀)」과 율곡이 유년기에 사용했였던 벼루를 보관하기 위한 유품소장각이다. 한편 율곡기념관은 율곡의 저서와 신사임당의 유작을 비롯해 매창(梅窓, 신사임당의 맏딸)·옥산 이우(玉山 李瑀, 신사임당 막내아들) 등 율곡 일가의 유품 전시관이 있다.


신사임당은 우리 역사에서 여성 최초로 고액권인 5만 원 화폐 도안 인물로 그녀의 삶은 50년이 채 안 된다. 1504년(연산군 10년) 외가인 강릉 북평촌(현재 강릉시 죽헌동)에서 서울 사람인 아버지 신명화(申命和)와 강릉 사람인 어머니 용인 이씨 사이에서 다섯 딸 중 둘째로 태어났다. 신사임당의 본명은 신인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임당은 당호(堂號)이며, 사임당 외에도 시임당·임사제라고도 했다. 결혼은 1522년인 19세 때로 남편은 덕수 이씨 가문의 이원수(李元秀)다. 이후 2년 뒤인 21세 때 맏아들 선, 26세 때 맏딸 매창, 33세에 셋째 아들 율곡 이이를 낳는 등 모두 4남 3녀를 낳아 길렀다.

 

 

▲ 화폐를 든 최명희 전 강릉시장 / ▲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 화폐


이이(1536~1584년 중종31~선조17)는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정치가로, 호는 율곡(집안의 농장이 있는 경기도 파주 파평면 율곡리의 이름에서 따왔다.)이다. 이원수와 평산 신씨의 4남 3녀 중 3남으로 외가인 강릉에서 태어났다. 16세에 어머니의 죽음을 당해 큰 충격을 받고, 뒤이어 아버지가 맞은 서모(庶母)때문에 가정의 불화가 잦자, 어머니의 상을 치른 후 결국 금강산에 입산해 1년 정도 승려가 됐다. 절에서 나온 후에 이이는 20세인 1555년에 「자경문(自警文)」을 지어, 승려가 됐던 일을 반성하고 다시 과거 공부에 전념해 1564년 7월에는 생원(生員)과 진사(進士)에, 8월에는 명경과(明經科)에 급제, 호조좌랑(戶曹佐郞)을 제수 받았다.

 


 

글 : 김선일 / 디자인 : 임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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