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와 악평 사이, 국내 최초 기획 호텔 평가 저널리즘
“레스토랑, 바, 와인은 수많은 정보와 이를 평가하는 전문가가 있지만 호텔은 전혀 없다. 이유는 호텔 소비는 돈 뿐만이 아닌 시간까지 요구하기 때문이다. 맛집은 하루 2~3곳씩 갈 수 있지만 호텔을 하루에 2~3곳 가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필자는 변호사가 되기 전부터 호텔을 즐겼다. 홀로 체크인해서, 갖고 간 스피커로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을 들으며 준비한 와인을 꺼낸다. 그 낭만은 SNS로 공유되는 순간 변질되기에 기억으로만 남긴다. 그런 기억들이 중첩되며 남은 추억은 호텔에 단순한 소비 이상의 애정을 갖게 했다.
호텔에 존재하는 평가는 오직 홍보 또는 악평뿐이다. 호텔 스스로가 ‘전통과 현대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라 자찬하거나 혹은 ‘최악의 후기’라는 이름으로 비판될 뿐이다.
이 글은 홍보 또는 악평만을 받아내야 했던 호텔이 준 감동의 흔적을 남기고 특정 호텔에 가보지 않은 이에게 레퍼런스를 주기 위함이다.
가끔 보이는 고객의 평가(를 가장한 감정적인 글)들은, 꽤 많은 호텔을 다니며 적잖은 돈을 쓰고 적잖은 투숙경험을 하며 정립한 나의 시선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지면을 통해 우리나라 호텔을 이야기해두고 싶다. 좋은 점을 끄집어내는 게 아니라, 그저 내 돈으로 내가 경험한, 그것도 수십 차례 경험한 그 브랜드, 그 호텔 경험의 총화를 남겨두려 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다.
✽ 이 글에 대한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았음을 미리 밝힌다
품격 있는 호텔은 시작부터 다르다.
‘표어’란 현재 그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존재한다. 공자의 뜻대로 30살(입지- 立志), 40살(불혹-不惑), 50살(이순-耳順) 등이 나이에 따라 될까? 당연히 안 된다. 어쩌면 공자 같은 성인조차 그게 잘 안 되니까 그런 표어를 내세웠 는지 모른다. 가끔 가는 법원 어느 간판에는 “소통하겠습니다”라 적혀 있지 만 그것은 소통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권 친화적인 검찰’이라는 표어 는 수사 과정에 기실 범죄자의 인권이 배제돼 있음을 웅변한다. 특급 호텔에 ‘친절한 호텔’이란 표어는 없다. 설명은 당연하지 않은 것에만 필요하다. 그 설명의 최적효율화가 광고라는 것이고.
인터컨티넨탈 호텔 코엑스(이하 인터컨 코엑스)는 그 전형이다. 홈페이지 어 디에도 친절이 써 있지 않지만 “비즈니스와 컨벤션, 여행에 최적화된 서비 스를 경험하실 수 있다”는 소개 문구는 사실 그대로다. 체크인부터 잘 훈련 된 직원들은 언제나 ‘일어서서’, ‘미소로’ 맞이한다. 투숙객이 온다고 굳이 왜 일어설까. 사실 쓸데없는 의전이고 실제 ‘6성급’이라 불리는 호텔들조차 이제 그렇게 안 하지만 굳이 하는 기립의 의지는 고객이 환대받음을 느끼는 데 부족함이 없다.
왜 제목을 ‘Korea의 모더니티’라 지었을까. 생긴지 20년 갓 넘은 호텔치고는 중후하다. 지하 아케이드에 있는 맞춤정장, 와인숍부터가 통일된 자색 벽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며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으로 이동하면 인사하는 직원이, 조금이라도 길을 헤매는 듯하면 다른 직원이 와 무엇이 필요한지 안내한다.
이색적인 객실, 예상 외의 뷰
체크인을 마치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특이한 점은 항상 6대 중 1대의 엘리베이터가 문을 열고 투숙객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트렌드와 달리 카드키가 없어도 객실로 바로 올라갈 수 있어 보안이 염려되나 필자는 이게 더 편하다(주머니에 없어진 카드키를 찾느라 가지 않아도 되는 층에 가는 커플들을 정말 많이 봤다). 객실 컨디션은 처음 가면 당황스럽다. 일반 룸 기준 작지도 넓지도 않 은 사이즈이지만, 초록색의 객실 바닥과 뒤의 나무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본떠 만든 양평 세한정(歲寒庭)을 떠올리게 한다. 푹신한 베딩은 수면에 까다로운 고객조차 커버하고 슬리퍼 재질 역시 포근하다. GS계열사답게 페리오 치약이 넉넉히 들어가 있고 도루코 면도기, 인터컨 전통의 아그리아 어메니티까지 부족함이 없다.
호텔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시선’이다. 우리집과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은 결국 ‘뷰’인데 인터컨 코엑스는 콘래드 서울, 비스타 워커힐 만큼 압도적이진 않더라도 잘만 배정되면 꽤 좋은 ‘뷰’를 볼 수 있다. 확 트인 서울 강남 전경을 사이로 밤에는 좌측 봉은사가 영롱하게 빛나며, 저 멀리 한강 사이로 차량 불빛 이 밤공기를 부유한다. 의자에 앉아 칠레 와인의 위상을 드높인 세냐 (Sena)를 꺼내 슈베르트 판타지를 들으면 도파민이 분비된다. 다만, 반드시 고층 템플뷰를 예약하기를 권한다.
정갈한 클럽라운지, 탁 트인 헬스장
2층에 자리한 ‘호텔의 꽃’인 클럽라운지는 JW메리어트 서울처럼 메뉴가 다양하지도, 포시즌스 또는 신라처럼 화려하지도 않지만 정갈하고 내실 있다. 핑거푸드는 욕심 안 부리면 저녁을 대 체할 만큼 알차게 나오고, 매번 나오는 레드, 화이트, 스파클링 각 와인의 테이스팅 역시 나쁘지 않다. 다만, 보통의 호텔이 클 럽 라운지에 고층, 좋은 뷰를 할애하는 것에 비해 이곳에선 그런 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매일 운동을 하며 근손실을 걱정하는 나같은 이들에겐 ‘헬스장’ 역시 중요한 요소다. 헬스장의 좋고 나쁨은 수영장과 달리 호텔 의 ‘급’에 비례하지 않는다. 호텔이 도심에 있는가, 멤버십으로 운영되는가, 그 비중이 호텔 수익에서 얼마나 차지하는가 등이 고려되는데 인터컨 코엑스의 헬스장은 탁 트인 봉은사 뷰를 앞에 두고 매우 넓은 공간에 다양한 기구를 배치해 놓았다. 굳이 단점을 거론하자면 중량을 치는 이들에게 필수인 파워랙, 스미 스머신의 대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인데 이 호텔 멤버십 의 연령대 및 커뮤니티를 생각하면 이해 가능한 부분이다. 수영장 역시 자연채광과 함께 역영(力泳)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조식을 제공하는 1층 ‘브래서리’에서는 핫푸드, 콜드푸드, 핑거푸드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끼를 든든하게 채운다. 커피/차 역시 주문을 받아 직접 서빙해주고 조식임에도 제공되는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은 많은 투숙객을 충격에 빠트린다.
1층 입구 앞의 로비라운지는 저녁에 하우스 밴드가 음악을 연 주하는데 시그니처 핫 초콜릿은 마시는 재미가 있고 타이해물 볶음면은 의외의 미식이라 할 만하다. 30층에 있는 스카이라 운지의 야경은 볼만하며, 와인 역시 특급호텔 치고 저렴하다. 무엇보다 스카이라운지 직원들의 서비스 및 고객을 대하는 태도는 이 곳이 왜 특급호텔의 최상층에 위치해 있는지를 적나 라하게 보여준다.
최고의 서비스, 그것이 호텔의 본령(本領)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이 JW, 코트야드, 페어필드 등으로 등급을 세분화한 것과 달리 인터컨티넨탈 호텔은 단일 브랜드임에도 그 폭과 가격대가 매우 넓다. 굳이 인터컨 발리, 다낭 리조트까지 가지 않더라도 인터컨 홍콩, 도쿄 심지어 바로 옆에 자리 한 형제호텔(그랜드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에 비해서도 인터컨 코엑스의 룸 크기, 객실 컨디션은 세련됐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터컨 코엑스는 잘 훈련된 직원들 의 조직된 서비스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곳이다. 사실, 시설은 일정 기준만 넘으면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이다. 호텔은 시간을 소비하러 가는 곳이고 그 소비를 돕는 이들은 다름 아닌 직원들이다. 최고의 서비 스, 그것이 호텔의 본령(本領)이다. 그들은 답변부터 다르다. 예정돼 있지 않은 메뉴, 예를 들어 “아이스라떼 없나요?”라고 물으면 우유를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 했다. 고객이 체크아웃한 줄 알고 노크를 한 클리닝 직원은 안에 투숙객이 있는 것을 알고 “더 필요하신 것은 없으신가요?”라고 묻는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박물관 루브르는 세월의 더께를 입은 고가구, 고미술품을 옛것 그대 로 복원하고 고서(古書)를 보존하는 마법의 재료로, 일본의 화지(和紙), 중국의 선지(宣 紙)가 아닌 한국의 종이를 찾는다. 기껏해야 구멍 뚫기 좋은 창호 문풍지로 기억되던 한국 종이는 루브르 베테랑 복원사들에 의해 고품격 복원지로 재탄생했다.
인터컨 코엑스에는 분명 하드웨어 자체로는 다른 내로라 하는 ‘6성급’ 호텔들에 비해 ‘옛것’의 느낌이 있다. 최근 리뉴얼한 파르나스의 모던 함에 비견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인터컨 코엑스 직원들의 세심한 노력은, 복원사들이 천연종이를 으깨고 짓이겨 구멍이나 흠집을 메우듯 하드웨어의 단점을 상쇄하고 품격있는 ‘모더니티’ 호텔로서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호텔 소비는 정체성 소구다. 이는 ‘사치’, ‘허영’이라는 엉뚱한 담론이 아닌 스타일의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 인생사 다 결국 행복하자고 사는 것인데, 그 중 한 요소는 쉴 때 내 맘대로 방해받지 않고 쉬는 것이다. 남들이 당신에게 하는 말의 뉘앙스와 조사까지 신경쓰느라 에너지가 소모되는 사회에서 잠시 벗어나, 내가 편안한 환경에서 쉬는 데 힘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는 곳, 인터컨 코엑스는 그런 곳이다.
남기엽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변호사 / kyn.attorney@gmail.com
글 : 남기엽 / 디자인 : 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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