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미국 시애틀 벨타운(Belltown) 지역의 방 28개짜리 오래된 사회 복귀 훈련 시설이 라이프 스타일 호텔로 재탄생한 사례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환대산업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킨 것으로 회자된다. 바로 놀이용 카드의 가장 높은 패인 동시에 낮은 패이기도 한 Ace의 의미를 담아 지은 에이스 호텔(Ace Hotel) 이야기다. 에이스 호텔은 도시 속에 깊이 스며들어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티와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그 지역만의 문화를 만들어내며 지역사회의 부흥에 기여한다. 북적이는 로비, 호텔 곳곳에 전시된 무명의 지역 예술가와 장인들의 다양한 작품들, 음악을 사랑한 창업자들이 투숙객과의 공감대를 위해 배치한 객실 소품인 기타와 턴테이블 등은 에이스 스타일(Ace’s Style)이라고 일컬어진다. 많은호텔들이 많은 호텔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 독특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가진 이 호텔 브랜드에는 어떤 스토리가 숨겨져 있을까?
호기심, 열정, 추진력이 바탕이 된 다양한 경험의 연결
에이스 호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인공은 알코올 및 마약 중독으로 2013년 47세의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탁월한 사업 감각과 예술가적인 기질을 지닌 알렉스 칼더우드(Alex Calderwood)다. 1966년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태어나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10대를 보낸 칼더우드는 조용하고 겸손하며 사교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그의 관심사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에 대한 추진력은 대단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 벨타운의 옷 가게인 ‘인터내셔널 뉴스(International News)’에서 파트 타임으로 근무하며 흥미를 느껴 이미 합격한 대학에 입학하는 대신 이곳에 정식 직원으로 입사했다. 영화, 책, 음악,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시애틀의 항공 제조사인 보잉(Boeing)에서 버린 금속조각으로 직접 만든 테이블과 장식품, 조명 기구들을 활용해 이 옷가게에 독특한 분위기의 쇼룸을 만들기도 했다. 트렌드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능했던 그는 당시 일본인들이 빈티지 데님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잊힌 데님 재고를 추적해 일본에 판매하는 데님 무역상을 하기도 했다.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던 칼더우드는 1985년부터 시애틀의 밤 문화를 즐기며 나이트클럽에서 여러 클럽의 소유주와 DJ, 뮤지션과 친구가 됐다. 90년대 초, 칼더우드와 친구들은 창고에서 그들만의 나이트클럽을 오픈했으며 이는 ‘테이스티 쇼(Tasty Shows)’로 불렸다.
‘테이스티 쇼’는 1996년 경험 마케팅 회사인 ‘네버스탑(Neverstop)’으로 발전, 파티 계획 및 운영 업무 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 나이티, 갭 등의 유명 회사 신제품 출시회 업무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이들은 길거리 문화(Street Culture)와 기업 브랜드를 연결하는 브랜드 코-크리에이션에 중점을 뒀다. 음악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시애틀의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칼더 우드와 웨이드 웨이겔(Wade Weigel)은 일찍이 사업 파트너로 함께하며 에이스 호텔의 근간을 다졌다. 1993년 그들은 전 재산 1만 2000달러로 각계각층의 남자에게 일종의 사교장의 역할을 했던, 이발소의 향수를 자극하는 ‘루디스(Rudy’s)’를 오픈했다. 칼더우드와 웨이겔은 이곳이 단순한 이발소이기보다는 공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남녀노소의 다양한 사람들이 교류하며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곳이 되기를 바랐다. 깔끔하고 멋진 젊은 스타일리스트가 합리적인 가격에 이발과 문신을 제공하고, 빈티지 크롬과 가죽으로 된 이발 의자와 힙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분위기의 루디스는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문화를 함께 사는 것처럼, 이발과 음악을 통해 문화를 교류하는 곳이었다. 루디스는 착실히 성장해 2021년 현재 미국 워싱턴, 오레건, 뉴욕, 조지아 주에 걸쳐 20개의 지점을 보유한 비즈니스 체인으로 성장했다. 칼더우드와 웨이겔은 벨타운의 새로운 루디스 지점을 찾기 위해 둘러보다가 외딴 플럽하우스(Flophouse: 일반적으로 남성 전용의 간이 숙박소)를 발견하고 이곳에 이발소와 호텔을 결합하는 형태의 비즈니스를 구상했다. 이 건
물은 28개의 객실로 구성된 시애틀의 해양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 복귀 훈련 시설로 이용되던 곳이었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재미있는 일들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즐겨 했던 창업자들의 또 하나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에이스 창업자들의 뚜렷한 비전: 진정성, 사람, 예술에 대한 열정
1999년 에이스 호텔이 시애틀에서 데뷔했을 때, 창립자들은 그들만의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바로 여느 호텔과는 다른 지역사회인들과 함께 지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칼더우드와 웨이겔, 그리고 새롭게 파트너로 합류한 오랜 친구 더그 헤릭(Doug Herrick)에 의해 세상에 선보인 에이스 호텔은 진정성과, 사람, 그리고 음악, 예술, 디자인, 음식에 대한 공통 관심사에 대한 열정으로 시작됐다. 멋들어진 호텔을 지으려는 포부보다는 DJ, 예술가, 그래픽 디자이너, 음악가 등 평소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편하게 머물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200만 달러가 채 되지 않는 넉넉하지 않은 투자금으로 시작한 사업이었기에, 각 방의 구조는 그대로 두고 가구와 자재는 재활용품이 나 저렴한 철물상을 최대한 활용했다. ‘테이스티 쇼’를 하나하나 만들어간 것처럼, 에이스 호텔 역시 거리 예술가 친구들의 작품을 호텔 곳곳에 큐레이팅하며 장식했다. 이로 인해 인디 컬처와 하이테크 산업의 부가 공존하는 시애틀만의 정서를 흠뻑 녹여낸 저마다의 특색을 가진 28개의 객실을 지닌 호텔이 탄생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가난한 밴드나 돈 많은 IT 기업가 모두 부담 없이 머물 수 있는곳으로, 모든 형태의 삶을 호텔 안으로 끌어들인 에이스 호텔은 그야말로 호텔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에이스로 떠올랐다. 호텔의 이름은 놀이용 카드의 최고점과 최저점의 ACE에서 따왔으며
이는 칼더우드의 어린 시절 별명이기도 하다고. 창업자들이 갖고 있던 환대 철학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연민(Compassion)이었다. 이는 섬김의 의미보다는 타인의 안녕을 진정으로 위하며, 사람들과 공감하며 살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고 한다. 에이스의 창업자들은 지역사회 구성원들과의 창의적인 협동을 중시했으며, 어떤 일을 하든지 호기심, 공감, 강한 신념을 바탕으로 하고자 했다. 이러한 철학이 에이스 호텔을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에이스 호텔의 철학: 커뮤니티와 문화적 공간 만들기
2006년 건축가 잭 바론(Jack Barron)이 파트너로 합류하면서 Ace는 미국 전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2009년 뉴욕 맨해튼의 12층짜리 호텔을 인수하고 에이스 호텔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에서 스몰 비즈니스로 유지하고 싶어 했던 동업자들과 판을 크게 키우고 싶어 했던 칼더우드와의 마찰도 발생했다. 칼더우드는 에이스 호텔 제국을 설립하는데 중추가 된 아틀리에 에이스(Atelier Ace)를 설립하면서 동업자들과 이별하고 호텔 사업에 집중했다. 힐튼(Hilton), 파크 하얏트(Park Hyatt) 및 W 호텔의 초기 브랜드 콘셉트를 구축 및 총괄했던 경력이 있는 브래드 윌슨(Brad Wilson)이 2011년에 아틀리에 에이스의 회장으로 영입되면서 2013년부터는 영국 런던의 쇼어디치(Shoreditch) 지점을 시작으로 글로벌 호텔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쇼어디치 지점은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인한 락다운 이후 건물 임대인의 의사결정으로 폐점됐지만, 에이스 호텔의 글로벌 시장으로의 확장은 계속되고 있다.
2020년 6월 일본 교토에 지역 감성을 듬뿍 담은 ‘에이스 호텔 교토’를 오픈했고, 2021년 캐나다 토론토에도 호텔을 오픈 예정이다. 글로벌 호텔 비즈니스로 발을 디디면서도 사람, 커뮤니티, 각 도시의 역사와 문화적 공간을 만드는 에이스 호텔의 기본 철학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2013년 칼더우드 사후 에이스 호텔의 사업을 총괄하는 윌슨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호텔 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커뮤니티와 문화적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하는 것에 가까워요.”라고 호텔의 비즈니스 방향을 설명한다.
에이스 호텔이 새로운 도시에 진출하고 호텔을 만들어가는 방식은 독특하다. 단순히 지점을 늘리기에 집중하기보다 ‘컬렉션’의 개념으로 각 지점마다 도시의 역사와 문화가 드러날 수 있도록 개성을 갖춰 나가는 형태다. 또한 이미 번화가인 지역보다는 낙후되거나 허름한 지역의 스토리가 있는 건물을 선정하고 그에 맞는 테마로 호텔의 콘셉트를 그려 나간다. 마치 스타벅스가 들어서는 곳의 땅값이 오르듯, 에이스 호텔이 들어서는 골목도 번화가로 재탄생하며 지역사회의 부흥에 일조했다. 현지에 대한 진정성 있는 조사와 포용을 바탕으로 그 지역과 융화되고자 하는 것이 에이스의 방식이다. 지역사회의 디자인 업체, 건축가들, 장인들과 협업을 통한 브랜드 코-크리에이션으로 지역의 커뮤니티와 문화를 만들어간다. ‘스텀프타운(Stumptown)’이라 불리는 오레건 포틀랜드의 에이스 호텔에는 루디스의 단골이었던 커피 장인, 듀안 소렌슨(Duane Sorenson)의 로스터리 카페인 ‘스텀프타운 커피’가 입점돼 있다. 또한 이곳은 ‘미국의 자전거 수도(America’s Bicycle Capital)’라는 별명에 걸맞게 호텔의 로비에 지역 장인 ‘도쿄 바이크(Tokyo Bike)’가 에이스 호텔만을 위해 특별 제작한 고객용 자전거가 비치돼 있다(그림 1). 이 로비는 무선인터넷이 가능하고 다양한 지역에서 관광 온 투숙객과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시며 개인 업무를 하기도 하고 신문을 읽으며 가까워질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다. 그런가 하면, ‘에이스 호텔 뉴욕’의 로비는 스타트업의 리더, 영화계 종사자, 베스트셀러 작가들과 패션계의 사람들이 작업실 겸 만남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은 낮에는 도서관과 미팅룸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공간이지만 저녁이면 힙한 클럽으로 변신하는 등 화제의 공간으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탔다(그림 2). 재즈의 도시이자 프랑스령이었던 까닭에 프랑스의 분위기가 건물과 도시 곳곳에 남아있는 뉴올리언스의 도시 문화를 반영하듯, ‘에이스 호텔 뉴올리언스’는 호텔 곳곳에 프렌치 데코의 디테일이 살아있으며, 이곳의 로비는 거의 매일 밤 무료 음악 공연장으로 변신한다(그림 3). 에이스 호텔의 케이스가 흥미로운 것은 호텔업에 종사하지 않았던 전혀 다른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창업자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열정, 그리고 명확한 목표를 갖고 호텔 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시애틀의 에이스 호텔이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고, 현재까지도 회자가 되는 이유는 전통적인 호텔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한 데에 있다. 먼저, 모든 프로젝트의 중심에 사람을 뒀다. 그들은 ‘테이스티 쇼’, ‘네버스탑’, ‘루디스’를 운영하면서 환대산업의 정신과 그들이 지향하는 비즈니스에 대한 정의도 명확하게 규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들은 그들의 삶과 철학을 접목시킨 라이프 스타일 호텔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그 결과,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방문하는 소통과 문화의 장으로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공간으로서의 호텔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둘째로, 무리하게 최고급을 지향하기보다 명확한 비전을 바탕으로 브랜드 컬래버레이션을 통한 그들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에이스 호텔의 명확한 목표는 ‘친구들이 편하게 머물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적은 예산으로 아직 개발되지 않은 오래된 건물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접목시키면서 그들의 삶 자체를 호텔에 표현한 것이다. 거리 예술가 친구들, 지역 장인들의 작품을 호텔 곳곳에 큐레이팅하며 호텔이자 전시장, 사교장의 역할을 하는 소셜 허브로서 지역 경제의 활력에 이바지했다. 이러한 정신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픈하는 지점마다 유명 업체 대신 지역 전문가, 장인, 예술가, 상인들과의 협업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연스레 호텔 전반에 도시의 특징과 개성이 드러나게 되고, 이것이 에이스 호텔이 만들어가는 컬렉션에 많은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정성연
브랜드 전략가
글 : 정성연 / 디자인 : 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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