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5일, 국가교통부가 8년간 논란이 돼 왔던 생활형 숙박시설의 주거화에 대해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숙박시설이지만 아파트와 같은 주거시설로 악용되며 각종 규제를 피하고, 부동산 투기와 난개발을 부추겨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그동안 ‘주거’ 목적으로 사용해왔던 생활형 숙박시설을 그의 태생인 장기체류형 ‘숙박시설’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갑작스레 숙박업으로 전환된 시설에 숙박업계의 새로운 돌풍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시장의 크기가 급격히 커졌으며, 취사가 가능한 생활숙박업의 파이가 커짐에 따라 숙박업계의 또 다른 경쟁 구도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위탁운영사들의 수요도 급증, 무늬만 운영사인 업체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며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언젠가부터 변했는지 모를 숙박업계의 돌연변이, 생활형 숙박시설. 대체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서비스드 레지던스에서 시작된 생활형 숙박시설
국내에서 레지던스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곳은 그랜드 힐튼호텔로 호텔 입구에 별도 건물에 레지던스를 운영하고 있다. 또 세계적인 레지던스 체인인 오크우드와 프레이 저 스위츠 등이 국내에 상륙하면서 국내 레지던스의 수준을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사스와 테러 등으로 국내 관광시장은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호텔업계는 외국인 관광객 입국이 크게 감소하면서 사상 최악의 경영실적을 내는 등 호텔 위기론까지 대두되는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예측하지 못했던 위기 상황으로 호텔들은 나름대로 방안을 모색했지만 그냥 텅 빈 객실을 넋을 잃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처참한 호텔업계에 찬물까지 끼얹는 일이 생겨 호텔들은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지난 2001년 말부터 외국인 장기체류형 아파트 개념인 레지던스(Serviced Apartment) 시장이 급신장하면서 호텔업계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초기에 레지던스 업체들은 기존 호텔들이 독점해오던 외국인 장기체류객들의숙박시장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지금은 단기체류객 시장까지 넘보고 있어 호텔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 2004년 4월호 「호텔업계 위협하는 일반숙박업과 ‘레지던스’」 中
생활형 숙박시설이라 불리며 각종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서비스드 레지던스(이하 레지던스). 현재의 생활형 숙박시설의 변이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내 레지던스의 도입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정착 과정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내 레지던스를 처음 선보인 호텔은 스위스그랜드호텔이다. 1988년 스위스그랜드호텔은 오픈과 동시에 호텔 건물 외에 한국에 오래 머무는 외국인 장기체류자를 겨냥한 레지던스를 처음으로 건설했다. 호텔과 다름없는 서비스는 제공하되 내 집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주거공간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였다. 스위스그랜드호텔의 레지던스는 보증금 등 전세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장기체류자들에게 호텔보다 저렴하면서도 비슷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다는 점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90년대 중반까지 평균 객실 점유율이 90%를 넘을 정도였다고. 이후 레지던스의 가능성을 본 호텔 브랜드, 오크우드와 프레이저 스위츠가 각각 2002년 2월과 4월에 오픈, 임대주택의 안정성을 제공하면서도 일반 호텔에서 누릴 수있는 모든 편의 시설과 각종 서비스를 어필하며 시장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오크우드와 프레이저 스위츠의 경우 소유와 경영이 분리, 각각 미국과 싱가포르의 호텔 체인에 위탁경영을 맡기는 전형적인 호텔 운영방식을 따르는데, 똑같이 소유와 경영은 분리돼 있지만 소유주가 분양에 의한 개별 수 분양자들인 ‘한국형 레지던스’가 등장한 것이다. 당시 오픈한 국내 자생 레지던스 브랜드는 휴먼터치빌과 코아텔, 코업, 도미인 서울, 바비엥, M쉐르빌이 대표적이다. 한국형 레지던스는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주상복합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투자자들에게 분양, 동시에 운영을 위탁받아 수익을 돌려주는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에 ‘외국인 장기체류형 아파트’ 개념이었던 서비스드 레지던스의 본질이 부동산 투자의 개념으로 확장되면서 레지던스의 의미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분양형호텔의 전신, 한국형 레지던스
레지던스가 호텔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높은 것은 초기 투자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레지던스 업체들은 건축 이전에 분양을 통해 건설자금은 물론 수익금을 챙기기 때문에 레지던스라는 타이틀은 결국 분양을 위한 위장술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레지던스 업계의 반응은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 한 관계자에 따르면 “레지던스는 관광진흥법에 의한 호텔업도 공중위생법에 의한 숙박업도 아닌 단순히 부동산임대업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객실이나 아파트를 임대해 사용할 수 있다. 호텔업계에서 말하는 불법숙박업이나 호텔업 운영이라는 주장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또 그는 “레지던스를 보는 시각에 따라 숙박업이나 호텔업으로 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당연히 부동산임대업이기 때문에 불법을 운운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불쾌감을 내비췄다.
- 2004년 4월호 「호텔업계 위협하는 일반숙박업과 ‘레지던스’」 中
오크우드나 프레이저 스위츠가 들어왔던 레지던스 성장 초기만해도 호텔업계는 레지던스를 호텔과 아파트 사이의 틈새시장으로 간주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분양을 기반으로 한 레지던스가 속속 들어서면서 호텔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객실을 제공, 호텔 장기투숙객들의 이탈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레지던스 업체들이 호텔과 같이 전문판촉팀까지 운영하면서 낮은 가격에 취사시설까지 갖춘 장점을 적극적으로 어필한 것이다. 하지만 떠났던 고객들이 레지던스의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고 곧 호텔로 회귀했고, 이에 레지던스 업체들이 기존 타깃이었던 장기투숙객뿐만 아니라 단기투숙객까지 타깃 범위를 넓히면서 호텔과의 갈등이 심화됐다. 여기에 레지던스 업체의 가격 덤핑으로 호텔 요금이 덩달아 낮아져 채산성까지 악화되자 호텔은 “레지던스는 분양을 위한 위장술에 불과하다.”며 이들의 영업이 임대업이면서 숙박업 형태를 띠고 있는 불법 영업이라고 지적했다. 레지던스 불법설이 나돌자 오크우드 측은 기존 레지던스를 관광 진흥법에 대조해봤을 때 ‘가족호텔업’과 운영 형태가 가장 유사하다고 판단, 가족호텔업으로 전환해 운영했고, 프레이저 스위츠 역시 가족호텔업 신청을 추진해 불법 운영과는 선을 그었다. 이는 두 곳 모두 건물소유주가 법인이거나 개인이었기 때문에 업종 전환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각 객실을 분양해버린 국내 자생 브랜드들은 소유주들의 의견을 단일화하기에 어려움이 따라 그대로 부동산임대업으로서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레지던스’는 분양을 기반으로 한 국내 자생 브랜드만 남게 됐다. 현재 생활형 숙박시설이라고 부르는 서비스드 레지던스가 분양을 기반으로 기형적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첫 단추가 여기서 꿰진 것이다. 한편 레지던스 운영의 잡음이 계속되자 당시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는 레지던스가 호텔이나 숙박업에 가깝다고 여겼으나, 부동산임대업으로 등록돼 있는 타 부처 업무에 간섭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도 유권해석을 내리지 못하고 관할 시나 구청으로 레지던스 문
제를 떠넘기면서 생활형 숙박시설 탄생의 토대가 마련됐다.
글 : 노아윤 / 디자인 : 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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