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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el & Resort

호텔앤레스토랑 - 그 많던 지배인들은 어디로 갔나? 시니어 호텔리어의 내공, 그 끝의 클래식 럭셔리 서비스를 지향하다

 

“럭셔리 사업의 본질은 대중에게 욕망을 일으키고, 상품은 그중 소수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구찌, 발렌시아가, 생로랑 등 19개 명품브랜드를 경영하고 있는 케링그룹의 프랑수아 앙리 피노 회장의 지론이다. 럭셔리 브랜드는 대중의 잠재워진 욕망을 자극하되 브랜드 자체가 대중화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명품은 최상의 제품은 물론, 여기에 브랜드의 품위와 가치를 제공해야 하는데 이는 고객의 접점에 있는 직원의 서비스를 통해 이뤄진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럭셔리 서비스 역량은 ‘차별화된 서비스 정신’, ‘고객 소통 능력’, ‘숙련된 스킬’, 그리고 ‘업무에 대한 열정’이다. 언뜻 보면 일반적인 서비스 종사자들에게도 요구되는 사항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서비스에 럭셔리의 특별함은 모든 역량에 ‘내공’이라는 것이 바탕이 된다. 럭셔리 브랜드는 있지만 국내 호텔에서 제대로 된 럭셔리 서비스를 경험해본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내공, 그와 함께 연륜을 쌓아왔던 호텔리어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Hotel Issue 지면에서는 앞으로 시니어 호텔리어의 전문성을 재조명하기 위해 시리즈 기획을 연재한다. 이번 기획의 첫 테마는 ‘시니어 호텔리어의 럭셔리 서비스’다.

 

호텔 리츠 파리(사진 출처_ 부킹닷컴) / 플라자 호텔(사진 출처_ Travelandleisure)

 

럭셔리 서비스가 부족한 럭셔리 호텔들

 

희끗한 머리카락을 말끔히 빗어 넘긴 머리, 보는 이까지 편안하게 안내하는 여유, 그리고 한치 앞을 내다보는 서비스들. 해외 유명 럭셔리 호텔을 생각하면 첫 이미지다. 특히 코코샤넬이 생을 마칠 때까지 약 37년을 머물러 유명세를 탄 100년 역사의 ‘호텔 리츠 파리(Ritz Paris)’나 영화 나 홀로 집에 속 장소였던 뉴욕의 대표적 럭셔리 호텔 ‘플라자 호텔(Plaza Hotel New York City)’과 같이 명성을 날리고 있는 럭셔리 호텔이라면 더욱 연상되는 모습이다.

 

국내에도 세계적인 럭셔리 호텔 포트폴리오가 갖춰져 있다. JW 메리어트, 포시즌스, 안다즈, 파크하얏트, 콘래드, 인터컨티넨탈 등. 하지만 진정한 럭셔리 서비스가 부재하다는 업계의 목소리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국내에 클래식한 럭셔리가 부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럭셔리 브랜드 호텔들이 국내에 자리 잡은 자리 잡힌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귀띔하며 “여기에 럭셔리를 향유하는 연령대가 낮아져 ‘클래식’보다 ‘모던’한 럭셔리를 추구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러면서 기술이 발달, 군더더기 없는 편리한 서비스를 추구하면서 국내 럭셔리 서비스는 클래식함과 거리가 멀어지는 추세”라고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즉, 럭셔리 브랜드가 국내 럭셔리 소비층에 맞게 변형돼 왔다는 것. 그러나 문제는 호텔 서비스가 그렇게 정착되는 와중에 소비자들은 해외 경험이 많아지며 럭셔리 서비스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때문에 고객들은 모던한 럭셔리 하드웨어에서 클래식한 럭셔리 소프트웨어를 기대, 점점 더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 간의 갭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콘래드 호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팀 조현진 대리(이하 조 대리)는 “그동안 국내 특급호텔에서 제공해왔던 럭셔리 서비스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진정한 럭셔리를 모르는 채 간접경험으로 서비스에 대한 기대치만 높아져가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가이드를 제시해줘야 하는 것은 호텔”이라고 이야기하며 이어 “그동안 럭셔리 호텔이 특별함은 추구하면서 테크니컬한 퍼포먼스에만 집중한 채 정작 소비자의 심적 동요를 일으킬만한 하이퀄리티 서비스는 놓치고 있었다. 럭셔리 브랜드 호텔만이 제공할 수 있는 스페셜리티를 서비스에 담아 전달하지 못한다면 결국 비슷한 퀄리티의 수많은 호텔에 의해 쉽게 대체될 것”이라 우려했다.

 

 

여전히 열쇠를 찾는 프레지덴셜 스위트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은 여전히 열쇠로 문을 연다.” 호텔리어 공유 & 채용 플랫폼 호텔인네트워크의 이정한 대표(이하 이 대표)는 프레지댄셜 스위트 룸의 열쇠를 빗대어 호텔 럭셔리 서비스를 정의한다. 2020년 소비 트렌드로 밀레니얼이 ‘편리함’을 소비 기준으로 삼기 시작하며 ‘편리미엄(편리함+프리미엄)’이 떠오르고 있고, 호텔도 직원들의 단순 노동을 요하는 업무에 점점 키오스크, AI, IoT와 같은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표의 말처럼 럭셔리 호텔에서도 제일 상위 클래스를 자랑하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은 카드키를 사용하지 않는다. 열쇠보다 편리하고 보완성도 좋을 텐데 말이다.

 

럭셔리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에서 서비스를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요소’인 하드웨어와 지적 자산, 직원의 역량, 전문 지식과 같은 ‘비가시적인 요소’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가시적 요소는 쉽게 모방이 가능하지만 비가시적 요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인적자원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본질적으로 개개별 특성이 다른 사람에 의해 서비스가 생성, 전달되기 때문에 서비스의 품질을 균일하게 하지 못하는 ‘이질성’이 있고, 종업원의 서비스 생산과 고객의 서비스 소비가 동시에 이뤄지는 ‘비분리성’의 특성상 긴밀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매우 예민하고도 복합적인 상품이다. 그만큼 단순한 기술력으로 대체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콘래드 호텔 박경숙 인사총괄전무(이하 박 전무)는 “백화점에 가보면 루이비통이나 샤넬과 같은 브랜드에서 대기 고객을 일부러 줄 세워 기다리게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객은 휴먼 터치가 들어간 서비스에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것이다. 꼭 그 과정이 완벽해서 값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 닿았다는 것 자체로도 네임 벨류가 부여되는 것”이라면서 “이러한 차이를 이해한 것과 아닌 것의 럭셔리 서비스 방향은 그 끝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전한다.

 

 

내공 발휘가 어려운 국내 호텔들

 

결국 테크닉으로 배울 수 없는, 고객과의 상호작용에서 좌지우지되는 서비스 퀄리티는 다년간의 경험, 그리고 그 속에서 다져온 내공으로부터 발현된다. 이러한 이유로 해외 호텔에서는 오랜 경력의 베테랑 호텔리어들이 여전히 그들의 소임을 다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호텔은 호텔리어의 평균 연령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로 설정, 젊고 역동적인 기업을 지향하며 점점 근무자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에 대해 호텔인네트워크 이 대표는 “대부분의 특급호텔이 수익성이 낮은 F&B 비중이 많고, 높아져가는 인건비 부담으로 수익구조가 전체적으로 약하다는 점이 비교적 젊은 직원들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국내 호텔의 기능 성숙도가 계속해서 상승곡선을 타는 것이 아니라, 4~5년차 정도 되고 나면 그 수준을 넘어서는 서비스가 발현될 수 없게 제한돼 있기 때문에, 일정 연차가 지나고 나면 굳이 고연봉의 경력자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사회적 인식도 점점 젊은 직원들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곤 하지만 결국 사람의 손이 가장 많이 가는 것이 럭셔리다. 감성적인 부분을 노련하게 터치하는 서비스는 현장에서만이 체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70년대 The Mandarin 호텔(현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 시절 도어맨(사진 제공_ 송창훈)

 

전설의 수문장, 콘래드에서 다시 데뷔하다

“그동안의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들었다. 언제나 최고를 바라보는 서비스…”, “한 분야의 최고가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름답다.”, “퇴사만 꿈꾸던 90년대 밀레니얼인데 우직하게 일하는 것이 때론 미련함으로 비춰지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작다고 생각되는 일에도 열심인 성실함에 대한 교훈을 살아오신 모습으로 몸소 보여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콘래드 호텔 도어맨으로 근무하고 있는 권문현 지배인(이하 권 지배인)을 향한 반응이다.

 

유튜브에 게재된 권 지배인의 이야기 ‘차 번호 350개까지 외웠던 전설의 수문장 권문현 지배인’은 지난해 9월 4일 게재 이후 조회 수 약 23만 회, 235개 댓글이 올라왔고, 여전히 그의 콘텐츠는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다. 대중이 그에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그가 1977년 조선호텔의 도어맨으로 시작해 현재까지 44년의 베테랑 경력을 지닌 이기 때문. 더욱 놀라운 점은 조선호텔에서만 36년, 동기 중에서 유일하게 정년을 맞이한 바로 그해 2013년에 콘래드 호텔에서 러브콜을 받았다는 것이다. 호텔업계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의 영입에 앞장선 콘래드 호텔 박 전무는 “호텔 오픈 당시 우리들의 슬로건은 ‘Grow together with Conrad Seoul’로 콘래드 크루를 꾸리는 과정에서 젊지만 잠재력을 가진 직원 채용에 주안점을 뒀었다. 그러나 조직 내 어느 정도 세대별 밸런스가 필요했고, 직원들 사이에서도 누군가 멘토링을 해줄 수 있는, 선임으로서 비전을 제시해주고 어른의 역할을 담당할 직원도 필요함을 느끼던 와중에 권문현 지배인을 추천받아 바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됐다.”고 채용 배경을 설명했다.

 

사진 출처_ 엠빅뉴스


INTERVIEW

 

“반평생을 함께 동고동락했던 호텔,

앞으로도 고객의 눈빛 세밀하게 읽어낼 것”

콘래드 서울 객실팀 권문현 지배인

 

Q. 호텔리어로서 44년의 경력을 쌓아왔다. 다시 호텔에 근무하게 된 소감은 어떤가?

지금이야 호텔리어가 되기 위한 체계적인 공부를 할 만큼 관련 학과도 생기고, 이를 위해 유학도 서슴지 않는 시대가 됐지만, 1977년 처음 호텔에 몸담았을 시절에는 ‘호텔리어’라는 직업도, 직업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높지 않았다. 호텔 종사자들에게도 호텔은 깨끗하고 쾌적한 근무지 정도였다. 밖에서 봤을 때는 그렇다. 도어맨은 그저 문을 열고 닫아주는 단순한 직업이라 생각하지만 그간 도어맨으로서 소위말해 ‘진상’ 고객부터 VIP까지, 다양한 손님들을 접하며 사람을 대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손님들을 보다 편하게 케어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눈치껏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노하우가 쌓이더라. 어떤 고객을 맞이할지 몰라 매일같이 조간신문을 찾아 읽기도 했다. 어느덧 호텔리어로서의 삶이 일상이 돼 있었다. 그러나 아직 일을 할 수 있음에도 정년을 맞이했고, 앞으로에 대한 고민이 있던 중 호텔로 다시 복귀할 수 있겠냐는 콘래드 호텔의 제안에는 망설일 것이 없었다.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게다가 내가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할 수 있는 일을 다시 맡게 돼 감사할 뿐이다.

 

Q. 최근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인식이 바뀌면서 고객들이 원하는 서비스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그동안 현업에서 체감해온 고객의 서비스 니즈 변화는 어떤지, 그에 따라 달라진 서비스 노하우가 있다면?

조선호텔에 처음 입사했을 당시만 해도 호텔은 조선이 유일했다. 주 고객들은 교포나 외국인 관광객들, 그리고 단골 고객이 많았기 때문에 정겹게 다가가면 다들 친근하게 대해줬다. 당시 호텔에서 25년 동안이나 투숙했던 손님도 있었으니 말이다. 워낙 자주 마주치는 고객들이 많았기 때문에 오며가며 농담도 하고, 서로의 안부를 챙겨 묻기도 했다. 아무래도 호텔을 이용하는 고객층이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워낙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계층의 고객들이 호텔을 방문하기 때문에 이런 서비스가 다소 부담으로 다가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한 템포 물러나 고객의 성향을 먼저 파악하고 있다. 또한 이제는 더 이상 ‘손님은 왕’이라며 무조건적으로 ‘모시는’ 서비스보다 호텔리어 스스로의 가치를 드러내는 당당함이 또 하나의 중요한 자세가 돼, 그간 쌓아온 정보들을 더욱 아낌없이 제공하며 고객과도 수평적인 소통을 하고자 한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서비스는 갈수록 더욱 힘들어지고, 도와드리고 나서도 잘한 일이었는지 두려운 감도 있지만 이 또한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해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변화에 적응하려고 노력 중이다.

 

Q. 시대가 많이 흘렀다고는 해도 그간의 내공에서 우러나오는 서비스는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80년대 도어맨 시절에는 팀장의 지시 하에 호텔에 들어오는 주요 차량번호만 350대를 외웠다. 멀리서 번호판만 보더라도 고객이 파악이 되기 때문에 미리 해당 고객을 맞이할 준비가 되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신문을 읽을 땐 특히 인사동정란을 주의 깊게 봤는데, 실제로 대중들은 잘 알아보지 못하는 당시 장관을 맞이하게 돼 알아보고 먼저 인사하니 어떻게 알아봤느냐고 놀라더라. 조선호텔에서 오래 봐왔던 단골손님을 콘래드에서 다시 보기도 했다. 당시 함께 근무하고 있던 동료들이 대하기 어려워하던 고객이었는데 문제가 생겼다고 해 가보니 낯이 익은 고객이었다. 화를 내던 손님이 나를 보자 금세 반가운 얼굴로 표정이 바뀌더라(웃음). 그동안의 노력이 이렇게 발휘될 수 있어 보람될 따름이다. 그러면서 다시금 느끼는 점이 호텔리어로서 갖춰야 할 손님에 대한 관심과 배려,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Q.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소통은 어떻게 하고 있나? 젊은 주니어 직원들과 일하면서 느끼는 시너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동시간대 일하는 동료들이 아들보다 훨씬 어린 나이다. 그동안은 일하는 패턴에 있어 예전과 지금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요새 들어 언어적 세대 차이를 느끼고 있다(웃음). 그렇지만 어쨌든 함께 손발 맞춰야하는 동료이고, 동료이자 나의 고객이 될 수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어떤 생각과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가까이서 파악해보려 노력하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대차이가 난다해도 서로 존중과 배려 받고 싶어 하는 것은 다 똑같다. 특히 호텔리어로서 손님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면 동료와의 관계에서부터 다가가는 것이 또 한 가지의 노하우를 쌓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INTERVIEW

 

“럭셔리 서비스, 직원들이 역할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바탕 돼야 해”

콘래드 호텔 박경숙 인사총괄전무

 

Q. 정년퇴직한 직원을 다시 채용한 사례가 이례적이다. 권문현 지배인을 스카우트 하게 된 배경과 그 과정은 어땠나?

콘래드에서 퇴직한 직원을 재 채용한 사례가 권문현 지배인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 전에는 세일즈 파트에 하얏트호텔에서 정년을 보내고 온 지배인이 만 5년 정도 근무했고, 우리 호텔은 MICE에 특화된 호텔이기 때문에 F&B 방켓 부문에도 30년 동안 호텔에 근무했던 지배인을 스카우트했다. 권 지배인의 경우에는 사실 해당 부서에 인력이 필요한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주변에서 추천을 받아 4차례의 인터뷰 후 채용을 결정했다.

 

채용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물론 30년의 기간이 전부는 아니었다. 연차가 길다고 해서 모든 이가 노하우를 갖추고 있거나 통찰력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권 지배인은 큰 VIP를 의전해오며 쌓아온 경험과 서비스 노하우, 인사이트가 있었고 무엇보다 본인만의 서비스 철학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이 부분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럭셔리 서비스의 격차를 줄여보고자 하는 바람도 있어 함께하게 됐다.

 

Q. 시니어 직원의 채용으로 기대했던 바와 실제 호텔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무엇인가?

서비스는 상당히 고차원적인 상품을 파는 것이다. 고객의 심리를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특히 럭셔리 서비스를 바라는 고객들은 뭔가를 요구해서 얻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알아서 해주길 바라고 그러한 서비스에 기꺼이 소비한다. 반대로 찰나의 미스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어렵게 접근하면 한없이 복잡한 일인데 해답은 단순하다. ‘고객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주니어 호텔리어의 경력적 한계는 테크니컬한 퍼포먼스는 가능하지만 깊이 있는 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사람을 이해하는데 폭이 좁다보니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이 아직 익숙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해당 분야에 오랜 인사이트가 있고, 좋은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시니어 직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권 지배인의 서비스를 본 주니어 직원들이 처음에는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권 지배인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가 고객에 스며드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본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곁에 머무르고 있더라. 원래 보고 배우는 것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웃음).

 

Q. 아무래도 세대 차이가 많이 벌어지다 보니 함께 일하는 데 어려움이 뒤따를 것 같은데, 이에 대한 방향성은 어떻게 제시해주고 있는지 궁금하다.

리츠칼튼을 비롯한 많은 럭셔리 호텔의 골든룰이 있다. “Treat customer as you want to be treat.”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는 것이다. 고객이라서, 윗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상대방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존중할 뿐이다. 내부적으로 벌써부터 세대의 차이를 구분 짓는다면 이는 분명 외부 손님에게도 드러나게 된다. 손님을 같은 세대로 구분 지어 받을 순 없지 않나. 당장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덮어놓고 있을 문제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외부는 변하는데 내부가 변화하지 않으면 더 높은 성장은 힘들다.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 내부고객을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외부고객도 이해하게 되고, 이는 분명히 고객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세심한 서비스로 발현될 수 있을 것이라 계속해서 비전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렇게 호텔은 직원들의 동기를 부여해주고, 자신의 역할에 몰입할 수 있도록 상황을 조성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권문현 지배인과 같은 시니어 직원을 채용한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Q. 앞으로도 권 지배인과 같은 시니어 직원들을 채용할 계획이 있나? 시니어 채용에 주안점을 둬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물론이다. 시니어 채용은 우리 콘래드 서울의 팀에 합류해 서로 윈윈할 수 있고, 서비스 퀄리티 제고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면 늘 염두하고 있는 인사전략이다. 채용에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은 경험과 경력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다.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니어 직원들도 ‘인성’이다. 경력자는 많지만 ‘그저 그 자리에 있어 왔던’ 이들도 부지기수다.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경력자라면 오히려 다른 직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콘래드는 ‘Never just stay, Stay Inspired’의 슬로건을 지향하는 호텔이다. 오랜 내공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직업의식과 서비스 철학, 통찰력을 갖추고 있는 이들. 권문현 지배인과 같은 재야의 고수들과 함께 일하며 조직이 새로운 영감을 얻어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허무하게 사장되는 호텔리어의 전문성

앞으로 밀레니얼 세대가 경영의 주축이 되는 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당연한 일이지만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그간의 노련함과 인사이트도 호텔에 꼭 필요한 인적 인프라다. 그러나 갈수록 낮아지는 호텔리어들의 평균 연령으로 50대만 돼도 슬슬 보이는 눈치는 결국 호텔이 아닌 다른 곳들에 시선이 멈추게 된다. 그나마 인터내셔널 호텔에 있었던 이들은 로컬로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그들의 전문성을 골프장이나 리조트, 외식업 쪽으로 전향하게 되고, 그도 아니면 20~30년의 경력을 묻어두고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호텔에서 25년간 근무한 한 퇴직자는 “그동안 호텔에서 배운 것이 많고 이를 활용할 여력이 남아있는데 젊은 직원들이 계속해서 들어오다 보니 이들의 진급도 문제가 있고, 시기상으로 물러나야 할 것 같은 미묘한 압박감이 들어 퇴직하게 됐다. 퇴직 이후 유사 숙박업종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는데 막상 주체가 돼 관리까지 해보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면서 “기능을 다한 것도 아니고 해외 호텔 사례만 보더라도 훨씬 고령의 수장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유독 나이에 제한을 많이 두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라고 이야기한다.

 

호텔과 함께 성장해온 지배인들의 경력 재조명돼야

이에 사장되는 호텔리어의 전문성을 다시 살릴 수 있도록 호텔리어 헬퍼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도 등장했다. 호텔리어 공유 & 채용 플랫폼 비즈니스로 작년 12월에 론칭한 ‘호텔인네트워크’는 한화그룹 더 플라자에서 28년을 근무하면서 기획부터 관리, 영업 및 마케팅 전반의 업무를 수행했던 이정한 대표가 실제 퇴임 이후 느꼈던 고충, 그리고 그가 현장에서 경험했던 효율적인 인력 운용에 대한 고민이 바탕이 돼 오픈했다. 기본적으로 호텔리어와 호텔, 그리고 관련 기업의 인력 채용과 운영에 대한 정보, 매칭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인데, 주력으로 하는 것은 ‘헬퍼 서비스’. 헬퍼 서비스의 주 골자는 주52시간의 도입으로 인력 운용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동시에 천정부지로 솟는 최저임금으로 인건비 부담이 큰 호텔에 정규직이 아닌 헬퍼 아르바이트를 고급인력으로 소개해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급인력이란 대체로 다년간의 경력을 통해 내공을 쌓아온 시니어 호텔리어들이다. 이 대표는 “연회 마케팅팀장으로 재직했을 당시에는 항상 바쁜 연회를 치르면서 어쩔 수 없이 진행할 수밖에 없는 아르바이트 운영이 비효율적이라고 느꼈다. 그런데 그 호텔리어 생활을 뒤로 한 채 나와 보니 퇴직한 호텔리어의 입장이 보이더라. 호텔인네트워크의 헬퍼 서비스는 호텔 인력 운용의 효율성과 은퇴한, 혹은 파트타임 일자리를 원하는 경력직 호텔리어의 전문성도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고 소개했다.

 

호텔 서비스의 차별화, 특히 럭셔리 서비스를 추구하는 호텔이라면 어느 호텔에서도 모방하기 힘든 우리만의 서비스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고객의 서비스 기대치는 높아지면 높아졌지 떨어질 일은 없다. 따라서 고객이 왜 이런 기대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왜’라는 물음과 함께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어떻게’를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 상태로 시간과 경험을 채운다면 자칫 ‘Hospitality’가 아닌 ‘Duty’가 중심이 되는 서비스가 돼버릴 것이다.

 

예전과 다르게 전문화된 교육을 받고 호텔에 입문하는 직원들은 늘었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라고 생각했던 권문현 지배인의 고객에 대한 배려, 요즘 젊은이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짬바(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오랜 경험과 경력에서 나오는 분위기를 뜻하는 신조어)’는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호텔과 함께 성장해온 지배인들의 경력이 다시금 재조명 돼, 클래식 럭셔리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갖게 되길 바란다.


INTERVIEW

 

“베테랑 지배인들의 내공,

꾸준히 호텔에서 발휘할 수 있도록”

호텔인네트워크 이정한 대표

 

Q. 호텔인네트워크에서 헬퍼 서비스를 주력으로 내세우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먼저 호텔리어만을 위한 전문적인 호텔 채용 사이트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전문성’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던 차에 호텔에서 직접 인력을 운용해보던 때가 떠올랐다. 호텔은 특성상 연회 행사가 많고, F&B 서비스에는 늘 일손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용역업체에 인력을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당일 근무 전체 직원 중 20%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주 인력으로 대체하는데, 대부분 호텔리어 서비스에 대한 이해보다 단순 서비스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서비스 퀄리티가 균일하지 못하다는 고민을 늘 안고 있었다. 물론 행사의 중요도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 수준을 업체에 요구하기는 하지만 호텔에서 행사가 열리는 성수기는 대개 비슷하고, 주로 대학생 인력이 많기 때문에 이들의 고정적인 스케줄에 의해 수급의 변수가 많았다. 그래서 호텔에서는 서비스에 능숙한 베테랑 직원은 별도로 관리하기도 한다. 인력 운용의 손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고민이 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호텔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다년간의 경험으로 고객을 대하는 것이 몸에 익은 헬퍼라면? 특별한 기능 없이 단순 서빙을 하는데 높은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 아르바이트생보다 헬퍼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훨씬 고효율로 고차원적인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라는 결론에 닿아 이를 주력으로 삼게 됐다.

 

Q. 상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일 텐데 오히려 인건비에 부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당연히 모든 인력을 헬퍼로 대체하기는 무리다. 1~2명의 베테랑 헬퍼를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단순히 개인당 인건비로 보자면 더 많은 비용이 들겠지만 서비스에 능숙한 한 명의 헬퍼가 커버하는 다른 아르바이트의 수는 2~3배가 될 것이다. 실제로 일부 특급호텔에서는 큰 행사가 있을 때 전직 호텔리어들을 파트타이머로 고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중추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다. 행사로 호텔을 방문하는 고객들은 지금 나에게 서비스하는 이 직원이 정규직 직원인지, 아르바이트 직원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다 같은 직원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숙련되지 않은 이들로 인해 호텔의 이미지가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서비스의 중심을 잡아주는 베테랑 헬퍼를 적극 활용한다면 전체적인 서비스 분위기도 확 달라질 것이라 확신한다.

 

Q. 그렇다면 경력직 호텔리어의 전문성은 어떻게 파악할 수 있나?

우선 호텔의 경력이 있는 구직자만 이력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한 구직자의 이력서는 구인 호텔이 이들의 전문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정보만 골라볼 수 있도록 자체 플랫폼을 구성하고, 호텔인네트워크에서 헬퍼의 경력이 쌓이면 이들을 채용했었던 호텔의 추천 제도를 통해 헬퍼의 기여도가 평가될 수 있는 제도도 고려 중이다. 또한 현업에서 오랫동안 벗어나 있었던 이들이 있다면 보수교육도 실시하고자 하는 계획도 있다.

 

Q. 헬퍼 서비스를 통해 호텔은 어떤 서비스를 고객에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호텔에 IT 서비스가 접목되고, 보다 클래식보다 모던함을 추구하며 호텔의 인적 서비스가 단순화돼 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럭셔리 서비스가 가야 할 방향은 그래도 직원들의 세심한 셰도우 서비스다. 요즘 고객은 호텔리어들이 자신을 케어하고 있다는 느낌을 직접적으로 받으면 이를 부담스러워한다. 티 내지 않고 보이지 않게 케어하는 서비스. 당장 내 앞에 있는 고객뿐만 아니라 전체 홀에 시선을 둘 수 있는 여유. 이런 럭셔리 서비스는 노련함에서 비롯되기에 헬퍼들이 그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 헬퍼 서비스는 연회나 웨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객실, 판촉, 마케팅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아르바이트시장이 저가로 자리 잡혔지만 구직자의 전문성을 파악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면 아르바이트도 또 하나의 럭셔리 비즈니스가 될 것이다. 여러모로 인적 인프라에 고민이 많은 호텔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에 호텔인네트워크가 매개가 돼 호텔은 고민을 덜고, 지배인들의 전문성은 계속 갈고 닦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글 : 노아윤 / 디자인 : 강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