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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오영 작가는 수필집 <방망이를 깎던 노인>에서 조급한 세대에 사라져가는 전통과 장인정신을 그리워했다. 인스턴트 음식처럼 빨라진 세태가 놓치고 있는 느림의 중요성을 우리는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익숙해진 셰프라는 명칭은 십 수 년 이상 수련하며 실력을 갖춘 책임자급의 수장에게 붙여지는 이름이다. 오늘 날 셰프라는 직업은 넘쳐나는데 실력 있는 셰프를 찾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5월, 스승의 달을 맞아 더 셰프에서는 셰프의 삶을 사는 스승과 제자를 만났다. 셰프라는 직업이 몸에 짜 맞춘 수트처럼 잘 어울리는 두 사람. 배우고자하는 열망이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만들었고 나아가 마음으로 낳은 첫 아들이 셰프라는 이름에 걸맞은 실력가로 성장하는 모습을 응원했다. 이제는 나란히 눈을 맞추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조력자로서 삶의 지혜를 모은다. 


서승호 셰프와 이방원 셰프, 이 둘의 관계는 이 시대가 잊지 말아야 할 셰프상을 남겼다.

최초의 원테이블 레스토랑 라미띠에를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였고 지금은 세종시에서 팜투테이블을 실현해 ‘원테이블 레스토랑 서승호’, ‘비스트로 시옷’을 운영하고 있는 서승호 셰프다. 프렌치 1세대로 불리는 그에게 인터뷰를 위해 아끼는 제자를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1초의 망설임 없이 나온 이름이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파씨오네의 이방원 셰프다.


오랜만에 만난 둘은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20년 전 오늘이 마치 어제 일처럼 훤하게 떠올라 기억을 주고받았다. 미처 이야기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넌지시 내비치며 오늘의 일상이 새로운 추억이 되기를. 서로를 응원하며 이어진 인터뷰는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고 여유롭게 흩어져 바다를 이뤘다.

 

실력파 셰프님 두 분을 한 지면에 모시게 됐어요.

우선 두 분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부터 들어봐야겠네요.

 

이방원 식품회사에 다니다가 지방의 한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죠. 잡지에서 라미띠에가 오픈한 소식을 접하게 됐어요. 나도 저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한 선배가 전화번호를 손에 쥐어주면서 가서 면접을 보고오라고 했어요. 처음엔 그 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전화를 걸어 알아낸 서울의 한 주소지를 찾아 왔더니, 잡지에서 본 라미띠에가 바로 눈앞에 있더라고요.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에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큰 결심을 하셨네요.

 

이방원 지방의 호텔이다 보니 29살에 부주방장으로 있었지만 정작 윗사람이 없었어요. 저는 더 배울 나이인데 요리에 대한 갈망을 채울 수가 없었죠.

 

그래서 합격하셨어요?

 

이방원 떨어졌어요.


서승호 가족도 있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게 쉽지 않았을 거예요.


이방원 아녜요. 저는 오고 싶어 했는데 안받아주셨어요. 떨어진 뒤로도 매달 찾아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 꼭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여러 번 어필했죠. 


서승호 사실 받아주고 싶어도 그 당시 라미띠에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 1년을 기다려서 들어오곤 했어요. 삭발하고 찾아와 레스토랑 앞에 진을 친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서 셰프님 보시기에 이 셰프님은 어떤 분이세요?

 

서승호 이방원 셰프는 맛을 내는 재주가 있어 음식이 왜 이렇게 되는지 알아요. 라미띠에에서도 정말 열심히 했어요. 6개월을 더 연장해 2년 6개월 근무했죠. 이후에는 프랑스 파리로 가 미쉐린 레스토랑 두 곳에서 일을 배우면서 오랜 기간 파씨오네를 준비해 오픈한 거예요. 요즘 금수저와 흙수저를 비교하는 말이 많잖아요. 저는 많은 셰프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요. 과연 단맛, 쓴맛 다 봐가면서 스스로 개척해 선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아마 레스토랑 100개 중 5개도 안될걸요. 이방원 셰프는 그 과정을 다 겪어본 사람이에요.

 

이방원 저는 요즘도 새벽 5시에 가락시장을 찾아요. 시장에서 전해지는 에너지가 있거든요. 보고 듣고 맛보고 새벽시장에서 느껴지는 공기의 느낌까지도 요리의 영감이 돼요. 라미띠에 시절, 서 셰프님이 시장에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야지라고 늘 생각했어요. 물건을 주문해서 받는 것과 직접 가서 보는 것은 달라요. 같은 생선이라도 매일 다 같지 않거든요.

 

셰프님들이 유독 시장을 강조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서승호 시장에 가면 재료가 가진 계절감을 읽을 수 있어요. 갑자기 다른 채소가 나오기 시작하면 새로운 상상력이 발동하지요. 이 셰프가 같은 재료라도 맛이 다르다고 했는데 정말 맞는 말이에요. 같은 농부가 재배한 재료도 오늘과 어제의 맛이 다 달라요. 우리가 매일 먹는 쌀도 맛과 품질이 다 다르잖아요. 재료의 맛이 달라지니 요리의 균형을 조절하는 능력도 키워야 해요. 이것을 구별해 낼 줄 아는 것, 좋은 재료를 알아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셰프라고 생각해요.

 

 

서승호 셰프님에게서 어떤 영향력을 받았나요?

 

이방원 저는 요리를 하고 있었지만 포인트를 잡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어요. 서승호 셰프님은 재료에 따라 간결하면서도 맛을 내는 포인트가 있어요. 단순하지만 손님이 추구하는 방향에 본인의 색깔이 담긴 요리가 나오죠. 명쾌한 그 것을 닮고 싶었어요. 자기가 만족하기 위한 요리가 아니라 소통으로 손님을 만족시키는 것이죠. 또 호텔에서는 각 파트가 나뉘어 있어 부분적으로 배울 수밖에 없어요. 라미띠에에 와서 보니 전반적인 흐름을 알 수 있었죠. 홀, 주방, 전화, 주차까지. 모든 흐름을 파악하고 응대 하는 것은 비즈니스를 하는데 큰 경험이 됐어요. 그래서 파씨오네를 오픈했을 때에도 적은 인원으로 효율적인 운영을 할 수 있었어요. 혼자 남아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죠.

 


서승호 그 당시 요리사라고 하면 주방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어요. 라미띠에의 셰프들은 음식의 질을 높이는 것 뿐 아니라 레스토랑 운영, 장보기, 심지어는 주차까지도 만능으로 할 수 있었지요. 식사 도중 고객이 갑자기 닭을 먹고 싶어 하면 자전거를 타고 근처 백화점에 가서 닭을 구해왔어요. 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했죠.


이방원 맞아요. 저도 라미띠에에서 겨울에 자전거 타고 급히 재료 구하러 가다가 넘어져서 다 까진 기억이 떠오르네요.

 

라미띠에 시절,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하셨는데 왜 그리 엄하셨어요?


서승호 나쁜 감정은 없어요. 사람을 보고 한 게 아니라 음식을 보고 했기 때문이에요. 옳지 않은 음식은 나가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음식과 서비스의 정도에서 벗어나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죠.

 

정보를 얻는 방법도, 배우는 것도 상황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어요.

 

이방원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보니 배움의 소중함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레시피를 얻기 위해 책 한 권 구하기도 어렵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다르죠. 지식의 깊이보다 다양성만 추구하는 현상이 안타까워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여러 경로를 통해 식재료를 접하는 게 쉬워진데다가 고객들이 레스토랑을 찾아올 때도 이미 너무 많은 정보가 알려졌기 때문에 신비감이 없어졌어요. 영화로 따지자면 예고편이 길어 본편에 집중할 수 없는 현상과 같아요. 고객들은 뻔한 영화를 보고 나온 기분이 드는 거죠.

 

서승호 정보는 많지만 지식은 얇아져 오히려 가벼워진 느낌이에요. 정보를 수집하지만 너무 많은 탓에 수많은 음식 중 자신 것이 된 게 얼마 없지요. 깊이 파고들어 끊임없이 들어와 내 것이 돼 다시 나가야 해요. 요즘은 요리사의 역할이 줄고 있는 느낌마저 들어요. 햇반으로 초밥도 짓는다는데 햇반보다 못한 요리를 내는 요리사도 많아요. 요리사가 뭘 해줘야 한다는 게 쉽지 않을 만큼 모두가 다 셰프가 되는 세상이 됐지요. 셰프라는 이름의 올바른 권위는 다양한 견해와 관점에 따라 대중화됐고 본래의 뜻을 잃었어요.

 

지금도 후배 제자들을 키우고 계시잖아요. 현 세대를 어떻게 보세요?

 

서승호 열정을 갖고 변화를 추구하는 세대죠. 한편으론 빠르게 판단하고 결론을 내요. ‘일을 다 배운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과연 내 것일까요? 맛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게 아니에요. 꾸준히 더 좋은 맛을 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무조건 바꾸려고 하지 않기를 바라요. 변화는 필요하지만 고객은 실험 대상이 아니잖아요. 실험적인 요리가 아닌 완벽에 가까운 요리를 내는 것이 셰프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손님에게 그 요리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음식이 될 수도 있어요.

 

다음 세대에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서승호 천천히, 쉼 없이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내 흔적을 남기면 누군가 따라올 수 있으니까요. 사람이든 일이든 꾸준히 실천하는 게 어려워요. 단순히 1년, 2년이 아니라 10년 15년 동안 꾸준히 시장을 다니면서 상인들을 만났지요. 그렇게 만난 상인들, 손님들, 직원들은 레스토랑이 생겨 지금까지 씨앗이 된 사람들입니다. 요즘 양식을 하는 제자들을 보면 맛을 낼 줄 몰라요. 그저 조합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죠. 먹어보지도 않고 음식을 내고 맛을 내는 것을 어려워해요. 우리나라 주방을 보면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모양만 갖춰 내놓을 뿐 맛은 확인하지 않지요. 그러니 맛은 없고 형태만 남을 수밖에요. 2~3년 된 열정으로 맛이 완성되는 게 아니에요. 열정이 아닌 내공이 필요한 거죠. 똑같은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어도 맛이 다 다르듯 20년은 돼야 비로소 맛을 내고 가르칠 수 있어요.

 


이방원 저는 취미생활로 틈틈이 바이올린을 연습하는데요. 1주일 간격으로 하루에 7시간 연습하는 것보다 매일 한 시간씩 일주일을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더라고요. 조금씩 매일 하다보면 몸에서 받아들이는 리듬이 생기는 거죠. 주방 일도 마찬가지예요. 1년이면 다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젊은 친구들이 많지만 아는 것과 체득해 내 것이 되는 것은 달라요. 2년 정도는 배워야 서서히 축적돼 내 몸에 리듬이 만들어져요. 주방일은 머리로만 이해하면 되는 게 아닌, 몸이 익숙해져 반응해야 하거든요. 조금씩 하더라도 일정하고 지속적으로. 매일 조금씩 쌓인 습관이 모여 지금의 제가 만들어진 거죠. 한 가지라도 그것을 체득해 기본의 기본을 알고 나면 무너지지 않아요. 조리사의 기본은 맛을 보는 거예요. 매일같이 하던 일인데 조금만 소홀해 기본이 무너지게 되면 반드시 탈이 나게 돼 있어요.  


서승호 그렇죠. 완벽할 수 없지만 완벽하려고 노력할 때 실수를 줄일 수 있는 겁니다.

 

Epilogue.         
인터뷰 도중 서승호 셰프가 이번에 다녀온 프랑스 여행담이 오갔다. 그가 다녀온 길, 시장, 사람, 레스토랑, 음식 등 다양한 이야기 속에 주 80시간을 근무하는 조건의‘카페 덩 쥬’이야기가 나오자 이방원 셰프의 눈이 반짝였다. 한 주 만이라도 스타쥬(Stage:실습생)를 하고 싶다는 그의 요청에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 그것도 실력 있는 오너 셰프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스타쥬에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80시간이라고요?” 되물은 기자의 질문에 그는 태연하게 답했다. “저는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80시간이면 얼마나 많이 배울 수 있겠어요?” 

 

파씨오네 룸에 걸린 그림


글 : 노혜영 / 디자인 : 임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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