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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 & Cafe,Bar

호텔앤레스토랑 - 한 주의 피로감을 씻어내는 감사한 맛, 쿤쏨차이 김남성 셰프

 

국내 태국요리전문점으로 전국 50여개의 지점을 갖고 있는 생어거스틴의 창립멤버이자 뿌팟봉커리 메뉴로 생어거스틴을 단숨에 상위권에 랭크시킨 김남성 셰프가 최근 태국요릿집 쿤쏨차이의 오너셰프로 신고식을 치렀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생어거스틴의 조리이사까지 달았지만 이래봬도 16년 동안 태국요리만 연구한 국내에서 손꼽히는 태국요리전문가이다. 지난해, 9년 동안 몸담아온 생어거스틴의 조리이사직을 내려놓고 택한 것은 그의 이름을 건 교대의 자그마한 요릿집 쿤쏨차이다. 지난 6월 교대역 인근으로 자리를 옮긴 쿤쏨차이에서 김남성 셰프를 만났다.

 

생어거스틴 조리이사직을 내려놓고 쿤쏨차이 오너 셰프로 화려하게 복귀하셨어요.

벌써부터 서초동 맛집으로 주목받고 있던데,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우선 쿤쏨차이에 대한 소개부터 해주세요.

쿤쏨차이는 김남성, 저의 페이스북 아이디예요. 쏨차이는 남성스러운 태국의 흔한 닉네임인데 여기에 Mr.라는 뜻의 쿤을 붙여 쿤쏨차이가 된 거죠. 입구에서 보셨겠지만 쿤쏨차이에는 타이레스토랑이라는 타이틀을 걸지 않았어요. 그동안 태국스러운 것을 찾아다녔다면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태국요리를 보여주고 싶거든요. 태국요리를 만드는 쿤쏨차이가 아닌 쿤쏨차이에서 만드는 태국요리를 하고 싶은 저의 열망이죠. 가령, 인도의 대표적인 요리인 탄두리 치킨에 태국의 소스 개념인 남찜과 남픽을 접목시켜 인도 요리를 태국화 시킨 것이에요. 탄두리 커리의 크리미한 느낌을 살려 코코넛 밀크를 활용한 닭다리살 바비큐 요리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쿤쏨차이에는 한국 사람들이 흔히 먹는 태국음식은 찾기 힘들지요. 정형화된 조합이 아닌 셰프의 정체성이 담긴 새로움을 추구하고 하고 있어요. 태국음식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되 셰프의 정체성을 강조한 음식 말이죠.      

 

태국식 이름은 '까우라우 느어'다. 일반적으로 쌀국수에서 면을 뺀 국물을 연상하면 되는데 여기에 밥을 곁들여 먹어 '쏨차이 국밥'이라고 지었다. 태국의 밀간장 베이스에 피쉬소스사 겸해진 짭조름한 맛이 특징이며 기호에 따라 각종 소스와 고명을 가미한다.태국식 이름은 '까우라우 느어'다. 일반적으로 쌀국수에서 면을 뺀 국물을 연상하면 되는데 여기에 밥을 곁들여 먹어 '쏨차이 국밥'이라고 지었다. 태국의 밀간장 베이스에 피쉬소스사 겸해진 짭조름한 맛이 특징이며 기호에 따라 각종 소스와 고명을 가미한다.

▲ 태국식 이름은 '까우라우 느어'다. 일반적으로 쌀국수에서 면을 뺀 국물을 연상하면 되는데 여기에 밥을 곁들여 먹어 '쏨차이 국밥'이라고 지었다. 태국의 밀간장 베이스에 피쉬소스사 겸해진 짭조름한 맛이 특징이며 기호에 따라 각종 소스와 고명을 가미한다.

 

생어거스틴에서 몸담은 9년이란 시간이 참 무겁네요.

쿤쏨차이를 오픈하면서도 도움이 많이 됐을 것 같아요.

제 인생에서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생어거스틴에 있을 때 대표님의 전폭적인 믿음과 지지가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경험을 쌓게 했어요. 소프트 크랩 농장을 견학하러 미얀마까지 갔을 정도로 벤치마킹과 식재료 탐방, 직원 채용 등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해외를 나갔으니까요. 쿤쏨차이의 모든 바탕이 생어거스틴에서 쌓아올린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네요.

 

많은 분들이 의아했을 텐데,

생어거스틴의 조리이사까지 오르고 굳이 어려운 길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29세 때 생어거스틴의 오픈 멤버이자 조리 실장으로 합류해 30대의 열정을 회사와 직원들, 음식에 모두 쏟아 부었어요. 30대의 끄트머리에 와서 이제는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40대는 이전과 다른 삶, 나를 위해 투자해보려고요. 생어거스틴에 있을 때 좋은 게 너무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있었어요. 새로운 계획을 꿈꾸기 위해 회사를 나오지 않고서는 보이지 않겠더라고요. 내 손과 몸을 쓰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것, 내가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 보이겠지...라는 생각으로 나왔어요. 또 실제로 그렇더라고요.

 

어떤 것이 보이던가요?

레스토랑에 대한 큰 그림이요. 태국음식을 카테고리 별로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을 만들고 있어요. 태국음식은 한 음으로 된 메뉴명이 많은데 뼈째 들어가는 음식인 랭, 구이 요리는 양, 커리는 깽, 샐러드는 얌 이런 식이죠. 쿤쏨차이의 대표 음식이 국밥인 랭인데 이게 자리 잡게 되면 이곳은 쿤쏨차이 랭으로 이름붙일 거예요. 이후 쿤쏨차이 양, 쿤쏨차이 깽, 쿤쏨차이 얌 등 다양한 콘셉트를 가진 쿤쏨차이가 생기지 않을까요? 메뉴에 대한 다양성과 깊이를 달리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편으로는 저희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셨는데 어르신들이 정년퇴직을 하고 기술 없이도 쉽게 창업할 수 있는 아이템을 생각해봤어요. 이제 쌀국수 시장도 포화상태에 이르러 다른 아이템을 찾아야 할 때라고 봐요. 불을 쓰는 요리 중에 가장 빨리 나올 수 있는 음식이 볶음요리지만 팬과 재료, 시간에 따라 편차가 큰 예민한 요리이기도 해요. 쿤쏨차이에는 볶음요리가 없어요. 음식의 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도 힘든데다가 매장도 지저분해지거든요. 고객 개인의 취향은 물론 요리하는 사람의 편의성까지 고려해 메뉴를 구성했어요. 특히 이 메뉴들은 레시피화하는 것이나 소스를 공장에서 뽑아내기도 쉬워 누구나 퀄리티를 유지하며 쉽게 운영할 수 있지요. 특화된 것이요? 바로 남찜과 남픽이죠.

 

여기서 태국의 맛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네요.

태국은 소스가 발달된 나라인데, 그래서 태국 음식은 실패가 없다고 생각해요. 설탕, 피시소스, 고추지, 간장 등 기호에 맞게 곁들일 수 있는 소스가 20~30개나 돼요. 한국음식의 고추장, 된장 간장처럼 특히 남찜과 남픽은 태국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초역할을 하는데 남찍과 남픽의 종류가 다양해 어떻게 섞이느냐가 맛을 좌우해요. 음.. 말하자면 남찜은 파전을 시키면 나오는 간장과 같은 역할의 찍어서 먹을 수 있는 소스예요. 남찜은 비빔밥에 고추장처럼 직접 섞어 먹을 수 있는 소스죠. 너무 다양해서 태국의 간을 말로 다 설명하기는 힘들어요. 백번 설명하는 것보다 먹어봐야 이해할 수 있는 맛이라고 해두죠.

 

 

생어거스틴의 시그니처인 뿌팟봉커리는 셰프님의 인생메뉴일 텐데요. 어떻게 개발된 메뉴인가요?

뿌(게)팟봉(파우더)커리는 게가 들어간 파우더 커리라는 뜻이에요. 생어거스틴에 합류하기 전 동부이촌동의 타이레스토랑 스틱이라는 곳에 있을 때 개발한 메뉴지요. 당시 소프트쉘 크랩이 한국에 거의 없었는데 이것을 알게 되면서 초기에 절단 게를 사용해 메뉴를 내놓았어요. 쪄보기도 하고 볶기도 하고 모든 조리법을 다 써봤지만 튀겼을 때가 제일 맛있더라고요.

 

그 후에는 튀김에 맞는 소스를 만들어 내는 게 관건이었어요. 무칠 수 있으면서 찍어먹을 수 있을 질감으로 내줘야 얹은 듯, 부은 듯한 느낌을 살릴 수 있었죠. 며칠을 고민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해봐야지. 무릎을 탁 치며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그게 지금의 뿌팟봉커리가 됐어요. 태국 현지에서는 맛볼 수 없는 저만의 뿌팟봉커리죠.    

 

왜 하필 태국요리 인가요?

단숨에 셰프님을 사로잡을만한 매력적인 그 무엇이 궁금한데요.

그러게 말예요. 저희 어머니도 항상 저에게 묻곤 하는 말인데요. 군대 말년에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고추 먹기 벌칙이 나왔는데 그 때 나온 고추가 태국 고추였어요. 다른 어떤 요리도 아닌 태국 고추에 매료돼 시작한 게 벌써 16년이 됐네요. 전역하고 첫날부터 태국요리를 하겠다고 하니 어머니께서 은연중에 답변을 회피하시고는 이제 막 전역했으니 일단 좀 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3일째 되는 날 무작정 광화문에 있는 리틀타이에 가서 면접을 봤어요. 이력서를 자필로 한 자씩 정성껏 써서 행여 구겨질 새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갔을 정도로 절실했어요. 이력서는 내 마음가짐에 대한 첫 번째 표현이니까요. 태국요리의 매력이라고 하면 내 기호에 따라 맛을 조절할 수 있으니 매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실패 없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죠. 아.. 그 때 처음 먹어본 똠양꿍의 맛을 잊을 수 없어요. 너무 맛있어서 아침마다 두 그릇씩 먹고 일을 시작했다니까요. 주방 막내인 제가 별명이 부실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열심이었죠. 식재료 정리, 냉장고 청소까지 모든 식재료와 기물을 하나하나 꼼꼼히 챙겨가며 참 재미있게 일을 했어요.

 

언어 장벽을 극복하는 것부터 큰일이었을 텐데요.

6살 때 아버지가 나이지리아에서 근무하시게 되면서 외국생활을 3년 정도 했어요. 타지생활을 하며 여행도 많이 다녔던 탓에 외국의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편이죠. 게다가 저는 답답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이에요. 타이 레스토랑에 입사했는데 사수가 태국인이었던 거죠. 그 분은 한국어를, 저는 태국어를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어 소통에 답답함을 느끼게 되자 주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기물, 식재료 이름, 숫자, 단위까지 태국어로 뭐라고 부르는 지 묻고 받아 적어서 달달 외웠어요. 단어에서 점차 짧은 문장이 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국인과 태국인 직원 사이에 소통 창구가 돼 있는 것을 보니 신기하더라고요. 차 안에서도 틈만 나면 CD를 틀어놓고 들었어요. 지금은 태국 현지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외국어 수준은 된답니다.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개척한다는 것, 절대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그동안 힘들었던 경험은 없었나요?

드라마 <파스타> 기억하세요? 마지막 장면을 보면 이선균 씨가 직원들을 대회장까지 인도한 뒤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이제 안에서부터는 너희들 몫이라는 그 말요. 제 상황이 딱 그 안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거든요. 모르는 게 있어도 물어볼 곳이 없는 거예요. 책을 봐도 이게 맞는지, 먹어보지도 않았는데 맛을 어떻게 표현할지 참 난감하더라고요. 그래서 적어도 일 년에 한 두 번은 꼭 태국을 방문했어요. 다행히 맛에 대한 기억력은 좋은 편이라서 재료를 잘 찾아내고 맛을 표현하려고 노력해요. 어느 날 지인에게 괴로움을 토로하는데 ‘너는 스승이 없었어도 네가 스승이 돼 줄 수는 있지 않냐’는 말에 생각의 전환이 됐어요.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은 삶이 되겠구나!

 

태국요리를 해보니, 한국요리와 비슷한 점은 없었나요?

혹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을 포인트를 찾았다거나 한 점이요.

우리나라 음식에도 깊은 신맛이 있죠. 묵은지의 산미, 삭힌 홍어의 톡 쏘는 신맛, 골뱅이 무침, 샐러드 등 반드시 식초가 아니더라도 재료에서 나오는 신맛에 익숙해요. 멸치 액젓 등 액젓 문화가 발달한 것도 그렇고 갈치속젓이나 밴댕이젓 등 생선이 통째로 들어간 젓갈은 태국의 빠라와 비슷해요. 고추를 좋아하는 것도 단짠에 열광하는 것도 모두 태국과 비슷하죠. 태국이 사탕수수 재배율 1위 인거 아세요? 태국에 가면 설탕의 종류가 매우 다양해요. 가공이 된 것, 되지 않은 것, 숟가락으로 수북이 떠서 먹어도 될 정도로 좋은 단맛을 가지고 있는 당이 많아요. 매콤새콤한 김치처럼 태국에는 솜땀이라는 김치가 있고 한국보다 묽고 염도는 높은 된장도 있어요. 한국처럼 식문화에서 일본의 영향을 받아 미원, 다시다 등의 파우더 조미료 문화도 전해졌답니다. 

 

셰프로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 걸어갈 길이 훨씬 더 많이 남았는데,

남들보다 일찍 성공을 맛봤다는 생각도 들어요.

성공이라는 단어는 아직 너무 부담스럽네요. 다만 남들이 볼 때 좋게 비춰졌던 것은 생어거스틴이라는 든든한 배경과 저를 지지해줬던 심지용 대표님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분의 사업 방식과 시기, 운, 좋은 인연까지 모두가 잘 맞았던 결과물인 것 같아요. 적어도 돈 버는 것을 성공의 목표로 삼고 싶지 않아요. 고객과 직원, 제 주위의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삶이 된다면 큰 만족이 되지 않을까요? 앞으로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이뤄내고 싶어요.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주방이 세팅된 윙카를 몰고 다니면서 봉사하는 거예요. 지금은 사업에 집중하느라 잠시 쉬고 있지만 언젠가는 윙카의 꿈을 실현할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봅니다.

 

▲ '쏨땀 마무엉', 일반적으로 쏨땀은 덜 익은 그린파파야로 만드는데 쿤쏨차이에서는 덜 익은 망고로 만들어 산미와 풋풋함이 느껴진다.

 

앞으로 남은 목표가 있다면 소개해주시죠.

저희 가게에는 메뉴판에 요리 사진이 없어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음식은 다 빠져있지요. 이곳은 태국요리의 새로움을 선보일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손님이 셰프에게 오늘은 어떤 메뉴가 맛있는지, 어떻게 먹을지를 물어주는, 셰프를 믿고 먹을 수 있는 그런 매장으로 이끌어가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태국음식을 새롭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연구하고 만들어 나갈 겁니다. 지난 토요일에 한 손님이 식사를 하시고는 이런 코멘트를 해주시더라고요.


“한 주의 피로감을 씻어내는 감사한 맛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