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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 & Cafe,Bar

호텔앤레스토랑 - Orso Nero

Prologue#

 


반가운 손님들이 한국에서 찾아왔습니다. 외국에서의 삶을 사는 제게 친구란 의미는 매우 소중합니다. 무엇보다 친구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가족처럼 따뜻한 사람들과 마주하는 시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Scene 1#


6월의 나폴리는 뜨거운 여름을 준비하고 있지만 저녁에는 시원한 바닷바람으로 여독을 달랩니다. 소렌토, 포지타노, 아말피, 폼페이의 유적은 남부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품고 있었습니다. 나폴리는 밀라노, 로마에 이은 3대 도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전히 골목에는 빨랫줄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서민적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작년 영국 대중지가 선정한 세계 10대 위험도시에 ‘나폴리’가 포함되자 이곳의 시민들은 불쾌함을 표현했습니다.

 

필자가 다니는 직장에도 3명의 나폴리 출신이 있는데, 누구보다 정감이 넘치고 근면 성실한 친구들이어서 그들의 도시가 ‘위험하다’라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더 선은 “이탈리아 내에서는 ‘지옥에 가라’는 말이 ‘나폴리에 가라’는 말과 동일할 만큼 나폴리의 악명은 높다.”고 했는데요, 나폴리의 시장 루이지 데 마지스트리스는 이에 대해 “거짓 뉴스이고, 나폴리에서 단 하루도 보내보지 못한 사람으로부터 얻은 정보에 근거한 피상적인 판단”이라며 “나폴리는 문제가 많은 곳이긴 하지만 더 선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꼽을 만한 도시는 아니다.”라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나폴리 시의회는 당시 ‘도시를 수호하라’라는 이름의 온라인 업무지원 센터를 발족, 나폴리를 신문이나 TV 등 대중 매체에서 근거 없이 왜곡하고 폄하하는 인물이나 단체에 대해 신고해줄 것을 시민들에게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저와 함께 이번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에게 나폴리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이들은 어떤 대답을 할까?’
속으로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직접 물었습니다.


“나폴리는 세계 10대 위험도시에 선정됐다는 기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


친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질문자체를 어이없어 했습니다. ‘세계 3대 아름다운 항구’와 ‘10대 위험도시’란 상반된 수식어를 갖게 된 나폴리. 물론 나쁜 선입견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 세계인이 부정할 수 없는 편견 역시 존재하죠. 전 세계에는 ‘나폴리 피자가 있고, 나폴리 피자가 아닌 피자가 있다.’는 말처럼 잊혀지지 않는 탁월한 맛이 있습니다.

 

 


자연의 토마토 향이 그대로 느껴지는 피자를 먹으며 친구들은 제게 농담을 건넸습니다. 나폴리에 있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는 외모라고 하면서 말이죠. 제 친척 중에 분명 아랍에서 건너온 분들이 계실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으로 출발한 ‘음모론’은 이내 대화의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어쩌다 보니 ‘벽란도’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이 당시에는 고려의 벽란도가 국제적인 무역항으로 크게 발전했다는 것을 근거로 말입니다. 실제로도 이곳은 수심이 깊어 배가 지나다니기 쉽고, 뱃길이 빨라 여진족, 거란족, 송나라, 아라비아, 페르시아의 상인들의 왕래가 빈번했고, 정착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꼬레아’라는 이름으로 서양에 크게 알려진 것도 이때부터라고 하네요. 서로의 다른 물품을 사고, 팔기 위해 뱃길을 통해 물처럼 흘러간 사람들이겠지요. 어느새 농담은 다큐가 되고 맙니다.

 

Scene 2#


오늘 소개하고 싶은 매장은 벽란도는 아닐지라도 다른 국적을 지닌 이들의 러브스토리가 만들어낸 커피숍 이야기입니다. 캐나다 남자와 이탈리아 여자의 로맨스 말이죠.


쇼핑의 거리 코르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도보로 5분 정도만 벗어나 골목길을 따라 가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커피숍 Orso nero가 있습니다.


곰 한 마리가 귀엽게 그려져 있고 오르소네로(Orso nero)란 간판이 유리창 위에 쓰여 진 간판의 뜻은 이탈리아어로 ‘흑곰’입니다. 이름에는 각 자의 스토리가 담겨있기 마련인데요. 오늘의 주인공 브랜트는 사실 캐나다 출신입니다.

 

 

흑곰은 캐나다를 상징할 수 있는 동물 가운데 하납니다. 무서운 맹수지만 대중에겐 친근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친숙한 캐릭터지요. 캐나다 출신인 본인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트레이드 마크이기에 선택한 것입니다. 어쩌다 캐나다인 브랜트가 이탈리아의 밀라노에 카페를 오픈 하게 됐을까요? 아내 줄리아와의 러브스토리가 그 이유입니다. 그녀는 밀라노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입니다. 사실 이 연인은 십여 년 전 독일에서 처음 만났다고 회상합니다.


시간이 지나 서로의 존재가 잊혀 질 무렵, 5년 전 운명적 재회를 하게 된 것이죠. 그것은 사랑으로 피어나 마침내 부부로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Scene 3#


Orso nero는 1년 반 정도 된 신생 카페입니다. 하지만 ‘트렌드세터’의 안테나에 포착돼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곳입니다. 카페 안에 들어서면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바와 매장 벽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국가와 핀란드 디자인을 총칭하는 하나의 장르입니다. 1950년대부터 디자인 붐을 일으켰지만, 1960대 후반 화려한 것을 향한 디자인이 주류를 이루면서 끝을 맺습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에 전 세계는 사회적 관심이 화려한 것에서 검소하고 지속 가능한 것으로 옮겨가면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 재조명을 받게 됐다고 합니다. 카페의 디자인에도 이 커플의 철학이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심플과 건강이 테마입니다. 이 골목의 주변에는 젊고 생동감 있는 디자이너들, 외국인들이 이곳을 즐겨 찾습니다.

 

Orso nero는 쌩뚱맞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매장처럼 자연스럽습니다.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매장과는 다른 느낌의 매장에 거부감을 표시한 이들도 있었다고 하네요. 브렌트는 말합니다. “나는 절대로 이탈리아의 커피 문화를 파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사용하는 커피는 이탈리아 최고의 로스터에게서 스페셜티 커피를 공급받고 있고, 매일 아침 전통적인 카푸치노를 만들어서 제공하고 있다. 나는 이탈리아의 커피 문화를 존중하고, 거기에 우리만의 색깔을 연출하는 것이다.”

 


단기간에 카페가 유명해지면서 어디선가 등장한 낯선 외국인, 커피 마니아 등의 다양한 손님이 찾으면서 ‘에스프레소의 종류가 왜 다양하지 않느냐’, ‘커피의 추출방식이 잘못된 것 같다’, ‘투입량이 생각보다 적다’며 일장 훈수를 두고 사라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유명한 숍에 방문한 기념을 남기려고 셀카만 찍고, 커피는 마시는 흉내만 내고 사라지기도 한다는군요.

 

스페셜티 커피를 고집하기에 에스프레소의 품질은 탁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잔에 1.2유로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푸어오버 커피는 3유로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최고의 커피를 찾기 위해 처음에는 유명하다는 커피숍을 쫓아 다녔습니다. 밀라노, 피렌체, 로마, 토리노 등. 나중에는 이탈리아의 로스팅 챔피언인 가르델리의 커피를 만나게 되고, 이것을 공급받아 커피를 만들게 됩니다. 메뉴는 에스프레소, 푸어오버 , 카푸치노, 플랫화이트, 티, 모카, 아메리카노가 전부입니다. 단순하지만 품질에 집중하고 싶다는 나름의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차도 판매가 되고 있는데, 구색용으로 비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선하고 풍미 있는 차를 전달하려고 최상급 재료만을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이 특별한 음료들이  1500원부터 준비되고 조금 비싸다고 해도 3000원대 정도에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은 ‘커피의 천국’이란 단어를 실감케 해줍니다.


Scene 4#


아내 줄리아는 전문 파티셰입니다. 현재는 매장이 협소해 본인들이 추구하는 ‘신선하고 유니크한 베이커리’와 함께 커피를 제공할 수 없지만 추후 더 넓은 매장으로 이전하게 되면 아내의 재능이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외국에서의 경험을 십분 발휘해 이탈리아의 현지인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좋아할 수 있는 제품들을 만들어내고 싶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 8시에 문을 열고, 6시가 되면 매장은 문을 닫습니다. 휴식의 순간도 없이 열정을 쏟아내는 부부는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폐업이 트렌드인 시대에 살고 있지만 벽란도의 상인처럼 자신의 꿈을 향해 흘러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Epilogue #


곧 여름입니다. 무더위는 사람을 지치고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이럴 때면 에스프레소 더블샷에 바닐라 리큐르를 넣고 얼음과 함께 세차게 쉐이킹해서 만든 부드러운 거품이 입술을 적시고 달콤함과 함께 커피의 향이 여운을 남기는데요, ‘샤케라또’ 한 잔으로 무더위를 날려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