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노현 하쿠바 지역은 <호텔앤레스토랑>에도 여러 번 소개된 바 있는 일본의 산악지역이다. 핀율의 작품을 전 객실에서 즐길 수 있는 ‘하우스 오브 핀율’, 오너 가족들이 농사를 지으며 고객에게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리조트 인 야마이치’가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겨울철 스키를 위해 하쿠바를 찾는 고객들을 위한 곳이고, 후자는 겨울 한 철에만 반짝 하는 형태를 벗어나 사계절 영업을 해보자 하는 시도로 만들어진 곳이다. 그런데 최근 이곳이 봄부터 가을까지 새롭게 활기를 되찾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주목 받는 캠핑 브랜드, 스노우피크(Snow Peak)에서 주민들의 진심어린 요청에 화답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이야기가 궁금했다.
하쿠바 주민들의 바램과 스노우 피크의 화답
나가노현 하쿠바(長野県白馬). 일본의 알프스, 스키의 성지, 일본의 지붕 등 이곳을 수식하는 말들은 주로 겨울철 눈 내린 경치를 연상 시키는 것들이며, 당연히 이 지역은 겨울에 국내외 스키어가 몰려들어 활기가 넘친다. 하지만 봄부터 가을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녹음이 완연하고 매력적인 전원 풍경이 펼쳐지는 하쿠바이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고, 뻐꾸기의 울음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다. 하쿠바의 마을 주민들은 농사를 짓는 경우를 제외하면 스키 시즌이 끝남과 동시에 대부분 외지로 돈을 벌러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하쿠바 마을 지자체의 오랜 과제는 겨울 벌어 한해를 살아가는 주민들 삶의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7년 일부 주민들이 지자체와 함께 개발을 도모하기 위해 한 기업의 사장에게 편지를 썼다. 그 대상은 바로 스노우피크(Snow Peak)의 야마이 토오루(山井太)사장이었다. 스노우피크는 캠핑에서 사용하는 텐트를 비롯한 아웃 도어 용품을 생산하는 회사다. 특히 스노우피크가 생산하는 세련된 디자인과 고품질의 제품은 아웃도어 팬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아 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의류사업에도 진출해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아웃 도어 브랜드 중 하나로 성장했고, 한국을 비롯한 해외 진출 시도도 성공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스노우피크의 야마이 사장에게 하쿠바의 주민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이 지역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고민해 주기를 청한 것이다. 야마이 사장은 스스로도 하쿠바를 찾을 때마다 느끼고 있던 자연환경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었기에 주민들의 절절한 호소에 응했다. 지역 주민들과 협업을 통해 하쿠바 마을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콘셉트는 ‘마운틴 리조트’
야마이 사장은 이 프로젝트를 지역재생 컨설턴트의 경험을 가진 코바야시 유(小林悠)에게 맡겼다. 코바야시는 하쿠바가 워낙 스키로 유명한 지역이긴 하지만 그 외에도 숨겨진 매력이 많은 곳이라는 점을 파악했다. 코바야시의 눈에 하쿠바는 사계절 내내 자연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이 풍부한 곳이었다. 아직 이런 부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제까지는 단점이었지만,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이제부터 새로운 매력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발상에 근거해서 탄생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바로 ‘스노우피크 랜드 스테이션 하쿠바(Snow Peak LANDSTATION HAKUBA)’다. 스노우피크는 ‘마운틴 리조트’라는 콘셉트 아래 리조트 시설의 설계를 일본의 대표 건축가인 쿠마켄고에게 의뢰했다. 쿠마켄고는 하쿠바의 체험형 복합시설을 설계하는데 있어서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자연으로의 회귀 본능을 구현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그리고 이러한 콘셉트를 위해 하쿠바를 둘러싼 산의 경치를 어디서나 볼 수 있게 하고, 눈이 사라진 자연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도록 유리와 나무를 최대한 많이 활용해 디자인했다. 그리고 전체의 공간을 스노우피크가 기획한 콘셉트에 맞게 세가지 구성으로 만들어 냈다.
첫째, 지역의 주민들이 자유롭게 관광객과 교류할 수 있는 마르쉐 구역, 두 번째로는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손쉽게 캠프를 체험할 수 있는 야외 놀이 구역, 세 번째로는 쿠마켄고와 스노우피크가 공동으로 개발한 숙박시설인 트레일러 하우스 주바코(JYUBAKO) 구역으로 만들었다.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첫 번째 마르쉐 구역에는 미슐랭에서 별 세개를 받은 ‘카구라자카 이시카와(神楽坂石川)’의 이시카와히데키 세프가 감수한 레스토랑 ‘셋보우(雪峰)’가 있다. 레스토랑 셋보우에서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점심 외에도 저녁에는 단품 요리와 코스 요리가 제공된다. 요리에 사용되는 식재료는 이시카와 세프가 직접 하쿠바 지역의 생산자들과 협의해서 조달한 제철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일본 요리의 정신을 담은 전채 요리와 용암석에서 구운 그릴 요리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명품 요리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숙박시설에 숙박하는 고객들을 위해서 세프가 고안한 특제 BBQ 메뉴가 제공돼 숙박객들은 야외에서 BBQ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이 구역에는 먹거리뿐만 아니라 관광객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다양한 숍들이 들어서 있다. 풍부한 캠핑 용품과 패션 인테리어 숍들이 입점돼 있어 하쿠바 자연의 느낌에 맞는 다양한 아이템들을 만날 수 있다.
두 번째로, 야외 놀이 구역의 핵심은 캠핑과 사이클링이다. 특히 사이클링의 경우에 하쿠바 마을의 곳곳을 누비며 자연을 만끽하고 지연의 생산자들과 직접 교류하면서 하쿠바의 토산품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전동자전거가 제공되는데 고객이 최대한 사이클링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한 사려 깊은 배려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세 번째로, 숙박공간으로 만들어진 모바일 하우스인 ‘주바코’에 대해서 살펴보자. 주바코는 침실과 연결돼 있는 100㎡의 나무 데크가 자연 속에 어우러져 만들어진 포레스트 하우스다. ‘상자집’이라는 주바코의 뜻처럼 스위트 객실형태지만 아담하고 포근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주바코 내에는 싱글 침대 2개, 라운지 테이블과 의자, 미니 바, 커피세트, 행거, 선반, 충전용 콘센트, 와이파이, 레인보우 스토브, 샤워실 겸 화장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어메니티로는 수건, 잠옷, 칫솔, 슬리퍼, 거울, 살충제 등이 있는데, 특히 곰 퇴치용 스프레이는 이곳이 얼마나 깊은 자연 속에 위치해 있는지 알 수 있는 독특한 아이템이다. 곰을 비롯한 자연과 야생 동물들의 위험 요소로 인해 10세 미만 어린이는 숙박할 수 없고, 애완동물 역시 숙박은 안된다. 따라서 이곳은 자연을 벗삼아 코지한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성인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주바코 이외의 숙박공간으로는 ‘텐트룸’이 있다. 대자연을 느낄 수 있는 잔디밭에서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는 이 숙박 공간은 스노우피크가 특별히 개발한 특별 사양의 텐트(약 50㎡)로 주바코와 동일한 설비를 갖추고 있다. 숙박시설인 주바코와 텐트룸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의 숙박시설을 평가하는 기준이나 가치에 속박되지 않고 자신들이 납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흔히 일반적인 호텔과 리조트 호텔의 평가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객실 수, 객실의 크기, 객실 내 설비와 디자인, 호텔 내의 이용시설 그리고 호스피탈리티의 수준 등의 요소이다. 하지만 스노우피크 랜드 스테이션 하쿠바는 이와 같은 평가 기준을 일절 고려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제공하는 숙박 공간의 가치를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객실이 360° 끝없이 펼쳐진 웅대한 자연에 둘러 싸여 있을 것’, ‘창문에서 바라보는 경치에 인공 건축물이 들어가지 않을 것’, ‘그 지역의 제철 식재료를 듬뿍 사용한 아름다운 요리를 제공할 것’, 그리고 ‘하쿠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제공하는 따뜻한 서비스’까지 네 가지 요소다. 때문에 기존의 글램핑 시설 혹은 마운틴 리조트 호텔 그 어느 것도 모방하지 않았고, 묵묵히 자신들이 세운 가치 요소에 맞춰 숙박 공간을 만들었다.
코로나 상황과 뜻밖의 기회
작년 7월, 스노우피크 랜드 스테이션 하쿠바가 오픈할 당시만 해도 많은 우려가 따랐던 것이 사실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관광객이 줄고 하쿠바를 찾는 관광객의 70% 이상이 외국인 스키어였던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기존의 고객이 전무한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걱정과는 정반대였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었다. 아무 준비 없이 와도 하루 동안 캠핑이 가능하다는 편리함, 매력적인 하쿠바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은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이곳을 찾는 세대는 사이클링과 온천을 즐기는 젊은 층, 빈손으로 와서 당일 캠핑을 즐기는 가족 층, 그리고 캠핑 오피스 형태로 워케이션을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는 단체까지 그야말로 다양하다.
스노우피크 랜드 스테이션 하쿠바의 등장 이후 하쿠바의 마을 주민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고 있다. 스키장이 끝나면 다른 지역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났던 사람들이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지게 됐기 때문이다. 스키장에 쌓인 눈만 소중한 줄 알았는데, 그 밑에서 피어난 꽃도 잎도 다 보물이었던 것이었다.
전복선
Tokyo Correspondent
jbsjbs798@gmail.com
글 : 전복선 / 디자인 : 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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