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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 & Cafe,Bar

호텔앤레스토랑 - 우표 속에 담긴 홍차 생산국 이야기

 

 

우표는 1840년 영국에서 처음 발행된 이래 수많은 국가들이 우편요금의 납부 증표로서 사용됐다. 또한 전 세계로 배송되는 우편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우표이므로 세계 각국에서는 최고 수준의 도안과 인쇄술로 기념, 홍보, 자선 등 다양한 목적으로 발행된다.

 

이번 호에서는 그 우표에 담긴 홍차 생산국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인도양의 진주, 스리랑카

인도의 남동쪽 인도양에 위치해 ‘인도양의 진주’, ‘인도의 눈물’이라고도 하는 스리랑카. 18세기부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이 스리랑카는 1972년 지금의 국명으로 바뀌기 전에는 ‘실론(Ceylon)’이었다. 오늘날에도 티 시장에서는 스리랑카 홍차를 여전히 ‘실론티’라고도 많이 부른다.

 

이 스리랑카에서 홍차가 재배된 것은 1868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물 재배 전문가인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가 오늘날 캔디(Kandy) 지역에서 남동쪽으로 34km 떨어진 룰레콘데라(Loolecondera) 다원의 필드 넘버(Field No.) 7구역에서 차나무를 재배한 것이 그 시초다. 따라서 제임스 테일러는 스리랑카 티 산업의 개척자로서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부터 약 153년이 지난 지금 홍차산업은 차나무의 총 재배면적 약 20만 300ha, 티 총생산량 30만 120톤(FAO 2020년 12월 22일 기준)으로 성장해 스리랑카 전체 산업계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또 세계적으로도 홍차 생산 3위, 홍차 수출 2위의 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이와 같이 홍차 수출산업이 국내 산업계의 큰 수입원이 되면서 스리랑카에서는 국위 선양 및 홍차산업을 기념할 목적으로 홍차 산업 현장을 담은 우표들을 많이 발행했다. 예를 들면 티 박스가 항구에서 하역되는 모습, 다원에서 찻잎을 수확하는 여성의 모습, 국가 상징의 동물인 칼을 든 사자와 함께 다원을 묘사한 그림, 홍차 가공에 주로 사용되는 일아이엽의 찻잎 모습. 브로큰 등급의 홍차를 우린 모습 등이다.

 

제임스 테일러에 의해 올해로 153년을 맞은 지금 스리랑카는 세계 티 시장에서도 고품질, 고가격의 전략으로 세계 3대 홍차에 속하는 우바(UVA)와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홍차들을 다양한 고도의 지대에서 생산하고 있다. 

 

스리랑카 홍차 산업의 개척자인 제임스 테일러의 기념 우표(1967) / 차나무의 묘목 재배소의 모습(1992) / 홍차 가공에 주로 사용되는 일아이엽(一芽二葉)의 모습(1992) / 여성이 섬세한 손길로 찻잎을 수확하는 모습(1967) / 홍차가 담긴 티 박스를 하역하는 모습(1992) / 브로큰 등급의 CTC 홍차를 우린 모습(1992) / 국가의 상징 동물인 칼을 든 사자와 티캔, 그리고 다원의 모습(1967)

홍차 소비 1위국, 인도

인도에서 차나무가 처음 재배된 계기는 19세기 영국이 청나라와 아편전쟁(1840~1842년)을 치른 뒤 새로운 차나무의 재배지를 모색해 중국의 예속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국내에서 증가하는 홍차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아편전쟁의 원인이 된 아편도 인도산이었다. 영국이 중국과의 티 무역으로 인한 무역수지의 불균형으로 재정 적자에 시달리자 이를 해결할 목적으로 인도에서 값싼 아편을 구해 청나라에 팔고 다시 티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발발한 전쟁이 아편전쟁이었던 것이다.

 

 

영국의 홍차 식민 재배지였던 인도는 차나무 재배의 시험을 위한 각축장이었던 곳으로서 토착 식물인 아삼종뿐만 아니라 중국종의 차나무까지 오늘날 재배되고 있다. 오늘날 차나무의 재배면적 62만 8199ha, 티 생산량이 139만 톤(FAO 2020년 12월 기준)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 또한 홍차 생산 1위, 홍차 총소비량 1위의 대국으로서 전 세계의 티 산업계에서 끼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 부연하자면 국내에서 생산한 홍차를 자체 소비하고 남은 것을 포함해 별도의 수출용 홍차 등 해외로 수출된 양이 세계 5위권에 드는 엄청난 국가다.

 

인도에서는 히말라야 산지의 다르질링 지역의 87개 다원에서 생산되는 세계 3대 홍차인 다르질링 티, 북동부의 아삼 티, 남부의 닐기리 티 등 매우 다양한 등급의 티들이 생산돼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이와 같이 홍차산업은 인도 전체 산업계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다원에서 찻잎을 수확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우표에 담아 기념하고 있다.

 

티 산업의 신대륙, 아프리카중국이 원산지인 아프리카에 차나무가 처음 재배된 계기는 역시나 19세기 대영제국의 영향이 컸다. 오늘날 아프리카 대륙에서 홍차를 생산하는 거의 모든 나라는 영국의 식민지였고, 이때부터 차나무가 재배되면서 오늘날의 티 산업국으로서의 면모를 지니게 됐다.

 

- 홍차 수출 세계 1위의 케냐

 

아프리카 동부의 케냐는 1895년 영국의 식민지가 된 뒤 차나무의 재배가 시작됐고, 20세기 초 홍차의 생산에 집중해 오늘날에는 아프리카를 비롯해 세계 티 시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티 생산국이 됐다.

 

차나무의 재배면적 26만 9400ha, 티 총생산량이 45만 8850톤(FAO 2020년 12월 기준)으로서 스리랑카 티산업보다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중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의 티 생산국이자 세계 1위의 홍차 수출국으로 그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대표적인 산지로는 밀리마(Millima), 마리닌(Marinyn), 캉가이타(Kangaita)가 있으며, 그중 캉가이타 홍차는 매우 유명하다. 홍차의 대부분은 CTC 방식이며, 일부 고급 시장을 겨냥해 오서독스 방식으로 생산도 한다. 더 나아가서 홍차 외에도 백차, 녹차까지도 생산하고 있어 케냐의 티산업계는 그 규모가 더욱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케냐에서도 홍차산업에 전체 산업계에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국위 선양 및 기념적인 성격으로 우표를 발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그림은 다원에서 찻잎을 수확하는 모습들이다.

 

- 아프리카 최초 티 생산국, 말라위

 

말라위는 1892년 영국의 식민지가 된 뒤로 오늘날까지 그 생산량은 적지만 꾸준히 홍차를 생산하고 있다. 이 말라위는 차나무의 재배면적이 1만 8100ha, 티 총생산량이 4만 9586톤(FAO 2020년 12월 기준)으로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리고 말라위산 홍차는 소비자들에게도 다소 생소하지만, 유럽의 티 블렌딩업계에서는 블렌딩의 재료 티로서 더 잘 알려져 있다. 말라위의 다원들은 대부분 유럽의 외국계 기업의 소유이지만 티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무시를 못 할 정도다. 이 말라위에서도 다원에서 찻잎을 수확하는 모습을 우표에 담아 소개하고 있다. 홍차 생산국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아프리카 최초 차나무 재배지, 르완다

 

르완다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차나무가 가장 일찍 재배된 나라다. 1878년 차나무가 처음 재배됐고, 1916년 영국이 아닌 벨기에의 식민지가 된 뒤 1920년대에는 인도에서 아삼종의 차나무를 이식해 오늘날까지 홍차산업을 이어가고 있다.

 

차나무의 재배면적 2만 225ha, 티 총생산량 3만 1537톤(2020년 12월 기준) 정도로 소규모다. 그렇지만 자국의 독립 기념 우표에 찻잎과 차꽃, 차씨를 함게 묘사한 도안을 그려 넣어 홍차 생산국임으로 상징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 킬리만자로의 티 산지, 탄자니아

 

흔히 아프리카의 커피 생산국으로도 더 유명한 탄자니아. 하지만 이 탄자니아도 19세기 독일의 식민지,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차나무를 재배해 홍차를 생산했다. 탄자니아는 킬리만자로산의 화산지대, 탕가니카호수의 인근에 드넓은 다원에서 찻잎을 수확해 홍차를 생산하고 있다. 물론 아라비카 커피의 재배로도 유명한 나라다.

 

차나무의 재배 면적 3만 320ha, 티 총생산량 6만 3104톤(FAO 2020년 12월 기준)으로 말라위보다는 티산업의 규모가 약간 더 크다. 탄자니아도 아프리카의 홍차 생산국으로 자국을 알리기 위해 우표에 다원에서 찻잎을 수확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려 넣고 있다. 다원은 비교적 완만한 평야에서 드넓게 펼쳐진 모습이다.

 

- 옛 벤다(현 남아프리카공화국)

 

옛 벤다공화국은 1979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독립했지만, 1994년에 다시 남아공에 흡수 통합됐던 국가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세기 초에 영국의 식민지를 겪으면서 오늘날에도 꾸준히 차나무를 재배하고 홍차를 생산하고 있지만, 티 생산량이 2020년 기준 1352톤으로 그 규모가 극히 작다. 그러나 1979년 남아공으로부터 독립할 당시에 자주 국가로서의 위상을 드날리는 차원에서 우표의 발행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이 우표들에는 홍차 생산국임을 만방에 알리기 위해 차나무의 묘목, CTC 가공 방식, 위조 과정 등의 모습을 수록했다.

 

벤다_ CTC가공방식 / 벤다_ 묘목관리 /  벤다_ 위조 / 벤다_ 채엽

그 밖의 나라들

 

- 모리셔스

모리셔는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마다가스카르섬의 동부 인도양에 위치한 조그만 도서국가다. 이토록 작은 섬나라도 1814년 영국의 식민지가 됐던 역사가 있으며, 또한 차나무를 재배하고 홍차를 생산하고 있다. 물론 그 규모는 매우 작다. 차나무의 재배 면적 656ha, 티 총생산량은 1583톤(2020년 12월 기준) 정도에 불과했지만 홍차 생산국으로서의 자부심은 대단해 우표에도 홍차산업계의 모습을 담아 발행하고 있다.

 

모리셔스_ 홍차 / 모리셔스_ 다원 / 모리셔스_ 다원

- 그루지아(현 조지아)

조지아는 러시아와 터키 사이에 위치해 흑해에 접해 있는 국가로서 옛 소련에서 독립한 신생국가기도 하다. 홍차 소비 대국이자 사모바르로 유명한 러시아와 세계 1인당 티 소비량 1위국인 터키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이 조지아에서도 홍차를 생산하고 있는데, 재배 면적 1904ha, 티 총생산량은 2000톤으로서 그 규모가 작다. 그러나 홍차 생산국으로서 우표에 여느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찻잎을 수확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정승호

한국 티소믈리에 연구원 원장. 사단법인 한국 티 협회 회장

shawn@teasommelier.kr

 

글 : 정승호 / 디자인 : 서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