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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 & Cafe,Bar

호텔앤레스토랑 - Viña Quebrada de Macul

와인과 관련된 질병으로 가장 파괴적이고 광범위한 질병이 ‘포도나무의 흑사병’으로 불리는 ‘필록세라(Phylloxera)’다. 그런데 전 세계에 퍼진 이 병충해가 미치지 못한 유일한 국가가 있으니, 바로 칠레다. 그만큼 국토가 특수한 지형 요건으로 고립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칠레에도 코로나19는 상륙했으니, 21세기의 이 골치 아픈 바이러스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해결한 묘안을 칠레 와인을 마시며 풀어나 볼까?


고품격 칠레 와인의 태동 ‘DOMUS AUREA’

칠레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지형 조건을 갖고 있다. 동쪽으로는 6000m가 넘는 만년설의 안데스 산맥, 서쪽으로는 광활한 태평양, 북쪽으론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 그리고 남쪽으로는 혹한의 빙하지대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 병충해가 침범할 수 없는 자연적인 보호막이 형성돼 있다. 19세기 후반에 전 세계를 강타한 이래 현재까지도 살아있는 위협인 무시무시한 필록세라 병충해도 칠레만큼은 침범하지 못했다. 물론 최근의 새로운 칠레 포도밭들은 예방 차원에서 접목(Grafting)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어쨌든, 이것이 자랑 아닌 자랑이 돼, 칠레 와인 생산자들이 자국 와인 마케팅에 가장 많이 활용하는 단골 이슈가 되고 있다.


칠레의 와인양조 역사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성찬주에 사용할 포도를 재배하던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칠레 와인이 질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때는 필록세라가 전 유럽을 강타하던 1880~1890년대로, 당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많은 양조업자들이 남미로 이주해 그들의 와인 양조 경력을 이어가게 된다. 이들의 탁월한 양조 기술은 포도 재배에 더 없는 천혜의 기후, 토양과 맞물려 결과적으로 칠레 와인의 질적 향상을 이뤄 놓았다. 1990년, 17년간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의 독재를 마감하면서 국제적인 자본과 기술의 대거 유입은 칠레 와인산업에 또 한 번의 르네상스를 가져왔다.

 

오늘날 칠레는 450년이 넘는 와인 생산 전통을 지닌 세계 5위의 와인 수출국이다. 자국에서 생산되는 와인 생산량 대비 수출 점유율로 보자면 칠레는 세계 1위의 ‘수출 주도형’ 와인생산국이다. 거대한 안데스 산맥을 배경으로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는 칠레의 와인산업은 불황을 모르고 있다. 칠레 와인이 이처럼 인기가 있는 것은 아마도 가격 대비 와인의 질이 뛰어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칠레 와인은 값에 비해 품질이 우수한 ‘밸류 와인(Value Wine)’의 보고라 일컬어지고 있다. 이처럼 20세기까지는 이른바 '가성비' 좋은 저가 와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면, 21세기 성공의 정상에는 칠레 와인의 자존심, 울트라 프리미엄(Ultra Premium)급 레드 와인들이 있다. 이번 호는 그 기폭제가 된 명품 칠레 와인과 그 와인을 만든 양조가에 관한 이야기다.

 

Ignacio Recabarren & DOMUS AUREA
오늘날 세계적 와인 산지가 된 칠레의 최고 각광받는 와인메이커 중 최고를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이냐시오 레까바렌 (Ignacio Recabarren)을 선택한다. 그는 일찍이 1986년 프랑스 ‘Gault Millau World Olympics’에서 그가 만든 1984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으로 우승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 후 30여 년간 가장 재능 있는 와인메이커로 칠레의 최고 양조장들에서 양조 컨설팅을 진행했고, <WINE> 매거진으로부터 “일생이 전설이 된 와인메커”로, <Decanter> 매거진으로부터는 “직업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과 조국애”를 칭송받았다. 외국 출신의 와인 양조의 영입 바람이 불던 1990년대 토종 양조가로서의 자존심을 지켰던 그는 화이트 와인을 만들 수 있는 명산지로서 서늘한 기후 지역 와인 산지인 카사블랑카 밸리(Casablanca Valley)를 발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칠레를 넘어 전체 신세계 와인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급 와인메이커로 성장한 레카바렌이 이제는 ‘숙성력 있는 세계적 수준의 단일 포도밭 테루아 와인’을 만들고자 하는 소망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이러한 염원을 품은 레카바렌이 주목한 포도밭이 있었으니, 바로 마이포 밸리 상류에 위치한 끌로 께브라다 데 마꿀(Clos Quebrada de Macul, 이하 CQM)이다. CQM 싱글 빈야드 밭은 당시 칠레에서는 경작하기 힘들고 수확량이 적은 경사지 언덕배기에 포도밭을 조성한 전례가 없던 시절인 1970년에 경사 언덕에 만들어진 밭이다. 이 밭의 80%는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이며 나머지 20%는 메를로와 쁘띠 베르도, 카베르네 프랑이 혼재돼있다. 그 후 20여 년간 이 밭의 포도는 곧 칠레 전역의 1급 와이너리에 가장 비싼 값에 팔려갔다. 그 가치를 인정한 구매자 중의 하나가 레카바렌이었고, 점점 나무 수령이 들어 포도의 품질이 좋아지자 여기에 고무된 포도밭 소유주 리카르도 페냐(Ricardo Pena) 형제와 와인메이커 이냐시오 레카바렌은 의기투합했다. 양쪽은 자사 소유 밭에서 직접 재배한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프랑스 샤또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려고 했으나, 처음에는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뉴욕의 국제 변호사이자 레카바렌과 페냐 가족 모두의 친구인 데이비드 윌리엄스(David Williams)의 등장으로, 그들은 빛나는 1996년 카베르네 소비뇽, ‘도무스 아우레아(DOMUS AUREA)’의 생산을 위한 위대한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할 수 있었다.

 

양조가 이냐시오 레카바렌

비냐 께브라다 데 마꿀 & 황금 궁전 ‘DOMUS AUREA’
만약 필자가 칠레 포도 재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공교롭게도 전술한 필록세라 병충해의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면 믿겠는가? 필록세라의 피해를 입지 않았기에 원뿌리 나무가 많은데, 이들은 수세를 억제하는 특성을 지닌 밑대목(Roorstock)을 갖지 않는다. 결국 칠레의 완벽한 기후 덕분에 포도나무는 잘 자라고, 너무 잘 자라 나무가 웃자라거나 수확량이 많게 돼 고급 와인을 만들 만한 품질 좋은 농축된 포도송이를 갖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약 25ha의 CQM 밭은 경사지에 있으며 돌밭으로 척박했다. 경사지 밭의 입지와 척박한 토양 조건이 천연적으로 수확률을 낮췄고, 이는 마이포 밸리 상류에 있는 매우 특별한 마꿀 계곡 지역 테루아의 특성을 매우 투명하게 보여 줄 수 있게 했다.

 

여기에 친환경 지속가능한 영농법과 비개입주의 와인 양조법으로 칠레 와인 산업의 신기원을 개척한 와인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해 <와인 스펙테이터> 매거진의 편집진 토마스 매튜(Thomas Matthews)는 1999년 5월호에서 “포도밭 관리에 있어서의 전례없는 관점 전환”이 께브라다 마꿀 양조장과 도무스 아우레아 와인의 성공의 비결이라고 묘사했다. 와인마스터 팀 앳킨(Tim Atkin MW)는 ‘2020 Chile Special Report’에서 레카바렌을 “최근 30년 내 최고의 칠레 와인메이커” 중 하나로 선정했다. 2003년, 레카베렌의 후임으로 장 파스칼 라카즈(Jean-Pascal Lacaze)가 상주 와인메이커로 도무스 아우레아 팀에 합류했으며, 또 다른 보르도 양조학자 파트릭 발레뜨(Patrick Valette)가 양조 컨설턴트로 힘을 보태고 있다.

 

프랑스 보르도 태생의 장 파스칼 라카즈는 프랑스 남부의 몽펠리에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곧 그의 표현에 의하면 “포도나무의 유혹에 굴복해” 포도주를 만드는 할아버지의 뒤를 따랐다고 한다. 그는 고향 생테밀리옹을 떠나 남미 우루과이에서도 와인을 만들었으며, 결국 칠레 마이포 밸리에 위치한 케브라다 데 마쿨 양조장에 합류해 18년째 께브라다 마꿀 농장의 와인을 책임지고 있다. 도무스 아우레아의 성공에 고무된 리카르도 페냐는 두 개의 양조장을 더 설립했다. 비나 파구아(Viña Pargua)와 비나 페나로렌(Viña Peñalolén)이다. 각각 ‘앙카 & 파르과(Anka&Pargua)’와 ‘페냐롤렌(Peñalolén)’을 생산한다. 이중 테루아를 달리하는 비냐 파르과는 산티아고 남부에 있는 23ha 규모의 농장이다. 이 포도밭은 1997년에 식재됐으며, 친환경 유기농으로 경작한다. 그룹의 와인메이커, Jean-Pascal Lacaze가 파르과의 양조를 총괄하며, 특별히 페냐 가족과 환경운동가 프란체스코 산타 크루스(Francisco Santa Cruz)가 함께 환경 보존과 자연 공존 기획에 헌신하고 있다. 이 중에서 한국에서는 도무스 아우레아와 그 세컨드 와인 알바 드 도무스(Albade Domus) 그리고 페날로렌 CS(Peñalolén CS)를 접할 수 있으니, 그 독특하고도 이국적인 레이블을 마셔보자.

 


도무스 아우레아
Domus Aurea

 

고개를 들면 안데스 산맥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이는 산발치에 자리 잡은 멋진 마꿀 테루아~! 마이포 강의 상류 유역에 자리잡은 경사지 25ha의 50년생 고목 밭에서 자란 최고의 포도가 ‘도무스 아우레아’를 만든다. 소출을 엄격히 통제해 헥타아르당 30hℓ 정도만 수학하니 포도의 농축도가 대단하다. 생산 초기에 이냐시오 레카바렌은 이밭은 다섯 구획으로 구분했다. 토양의 깊이와 자갈 함유도에 따라 크게 두 구획으로 나누고, 다시 그것을 높이에 따라 상부, 중부, 하부로 나눴다.
수확은 4월 10일경에 이뤄지며, 구획별로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별로 익은 상태에 따라 수확했으니, 수일에 걸쳐 수확이 마무리된다. 마치 프랑스 보르도 소떼른의 Chateau d’Yquem의 수확 모습을 연상시킨다.

 

하루 중에서도 포도가 가장 시원할 때인 새벽에만 수확한다. 아마도 이 ‘새벽’ 수확 모습 때문에 앞서 언급한 세컨드 와인인 ‘Alba de Domus’라는 브랜드 이름이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정성껏 수확을 하니, 포도 수확에만 15일이 걸린다고 한다(보통은 1~2일에 다 끝내버린다). 필자가 시음한 2017년 빈티지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 85%, 카베르네 프랑 10%, 쁘띠 베르도 5%의 블렌딩이었다. 메를로 없이 카베르네와 쁘띠 베르도만 사용했으니, 강한 뉘앙스의 깔끔한 표현이 기대된다. 양조장에서의 포도 선별 공정도 매우 인상적이다.

 

보통은 송이로부터 포도알을 털어 바로 압착해 발효조로 집어넣는데, 도무스 아우레아 공정에서는 이 포도 알만을 컨베리어 시스템에 다시 넣어 2차선별 공정을 거친다. 그만큼 완벽한 포도 알만을 선별한 것이다. 발효 과정은 개방형 발효조를 사용하며, 과일향을 주기 위한 스테인리스조 분량과 복합미를 주기 위한 오크조 분량을 분리해 양조한다. 한 달여에 걸친 껍질 침용 과정 후, 과하지 않게 미디엄 토우스팅된 새 프랑스 오크통에서 18~20개월 숙성시킨다. 오크통 중 80%만 새 오크통이고 나머지 20%는 중고통을 사용해서 와인 내의 과도한 오크 성분 투입을 절제시켰다. 알코올은 14.9%vol이다. 글라스에 따르니, 심원한 흑적색에 진보랏빛 뉘앙스가 선명하면서 화려한 색상이 농염하다.

 

향의 첫 느낌은 전형적인 커런트향이 체리향과 함께 진한 과일 내음을 풍기는데 완벽히 익어서 마치 시라 와인처럼 느껴지는 이국적인 터치가 있다. 글라스를 흔드니 달큰한 바닐라향과 향긋한 목재향, 크리미한 연유향이 피어오른다. 잠시 뒤 강한 향들이 가라앉을 무렵에 쌉싸래한 올리브 내음과 주니퍼, 로즈마리와 민트 허브, 흑연, 먼지와 같은 미네랄 표현이 정갈하고 우아하다. 입안에서는 잘익은 진한 과일 맛이 높은 산미와 조화를 이루고, 매끄러운 질감 속에, 엄격한 타닌과 힘찬 알코올, 짜임새 있는 구조감이 ‘입안에 건설된’ 멋드러운 ‘황금 궁전’을 느끼게 해 준다. 도무스 아우레아는 압도적이면서도 유연하고 단정하면서도 세련된 고품격 레드 와인이다. <디켄터> 매거진의 칠레 10대 와인에 선정됐으며, 2010년 이래 매 빈티지 와인은 RP 점수 95점 이상을 받고 있다.


역사학자인 필자는 브랜드명 ‘Domus Aurea’에서 고대 로마의 건축물을 떠올렸다. 서기 64년 폭군 네로 황제는 로마시에 불을 질러 도시의 절반을 태우고는 그 위에 자신의 호사스런 궁전을 짓고 그 이름을 ‘Domus Aurea 황금 궁전’이라 불렀다. 물론 지금은 폭군도 궁전도 사라졌고 그 폐허 위에 로마의 상징 콜롯세움이 서 있을 뿐이다. 필자는 유럽역사를 전공했기에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멀리 안데스 산맥의 정기를 받고 세워진 칠레는 자신들의 고대 문명인 ‘마푸(Mapuche)’ 문명과의 연관 속에서 이름과 레이블 디자인을 뽑아냈었을 것이다. 레이블의 고대인 모습은 원주민 아콩카과족 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은 칠레 출신의 예술가 벤야민 리라(Benjamin Lira, 1950~)의 수채화 작품이다. 그는 안데스의 고대 문명인 마푸체 문명에서 소재를 찾아 다채로운 작업으로 칠레 토속 문명을 되살리는 작품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비냐 께브라다 마꿀과 협업한 그의 와인 레이블 작업은 매우 오리지널하며 인상적인 것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Price 15만 원대

 

고대 로마 황금궁전의 유적

 


알바 데 도무스
Alba de Domus

 

대표 와인 ‘도무스 아우레아’의 세컨드 와인으로, 1998년부터 출시됐다. 브랜드명 ‘Alba’는 스페인어로 ‘희다(White)’라는 뜻이긴 한데, 파생적 개념으로 ‘새벽, 여명, 동틀 무렵’을 의미하기도 한다. 필자는 좀 더 멋있는 ‘새벽, 아침’의 의미로 받아들이려 한다. ‘Domus’는 라틴어로 ‘궁전, 저택, 집’을 의미한다. 포도밭은 도무스 아우레아 와인을 만든 밭과 같은 포도다. 다만, 세컨드 콘셉트대로, 새로 식재한 나무 포도나 2등 품질의 포도로 생산했을 것이다. 필자가 시음한 2014년 빈티지 ‘알바’는 카베르네 소비뇽 79%, 쁘띠 베르도 11%, 메를로 7%, 카베르네 프랑 3%를 블렌딩했다. 보르도 블렌딩이다. 잘 안 익는 쁘띠 베르도 품종을 10% 이상 사용한 것을 보면, 2014년 빈티지가 더운 해였으리라 짐작된다. 역시나... 알코올 도수가 무려 15.4%vol이나 된다. 당연히 가당을 하지는 않았겠기에, 천연 당도로 15%vol의 알코올을 뽑을 수 있는 기후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한 달 간의 장기 침용 후, 프랑스 오크통에서 18개월 숙성시켰으며, 필터 정제 없이 원액 그대로 입병했다. 글라스에 따르니 심원한 흑적색에 숙성이 약간 진행된 고동색 적갈색 뉘앙스가 부드럽게 보인다. 고유한 블랙 커런트, 유칼립투스 이미지가 블루베리의 이국적 풍미와 함께 은근한 조화를 보이는 과일향이 전반부를 리드한다면, 무게감 있는 감초와 동물향, 잎담배향이 구운 토스트 풍미와 함께 후반부를 장식한다. 넉넉한 볼륨감과 보들보들한 타닌, 풀바디 몸무게가 입안 가득 느껴지는 가운데, 씁쓸한 다크 초콜릿 여운을 남기며 마지막 한 모금이 사라진다. 미디엄 쿠킹된 티본스테이크 디시가 최고의 궁합~! 물론 숙성된 페코리노 치즈도 나쁘지 않을 듯 하며, 시가를 피며 마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와인이다.
2014년 빈티지는 RP점수 92점을 받았다. Price 8만 원대


페냐롤렌,
까베르네 소비뇽
Peñalolen,
Cabernet Sauvignon

 

칠레 와인 산지의 노른자위 지역인 마이포 밸리에서 생산된 포도를 엄선해 만들었다. 께브라다 마꿀 포도원의 노하우와 철학을 그대로 담아 매우 매력적인 가격대의 테이블 와인을 제공하는 것이 이 레인지 와인이다. 아니, 매력적인 가격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품질이 뛰어난 와인 브랜드다. 사실 3만 원대의 와인을 만들면서 4가지 품종을 공들여 블렌딩한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기본적인 복합미를 담을 수 있기에, 이러한 복잡한 블렌딩은 마꿀사의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가 시음한 2017년 빈티지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 75%, 카베르네 프랑 9%, 메를로 8%, 쁘띠 베르도 8%를 블렌딩했다. 알코올 도수는 14%vol이다. 자료를 보니, 32일간의 초장기 침용 추출 과정을 거쳤다고 적혀 있다. 한 달 이상 포도껍질과 함께 두고 색상과 페놀 성분을 뽑아낸 것이다. 여간 잘 익은 껍질이 아니라면 매우 거친느낌을 줄만도 한데, 이 와인은 야생적인 느낌은 있지만 거칠지는 않다. 개성과 세련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잘 잡은 셈이다. 브라보~!

 

양조된 와인은 12개월간 프랑스 오크통에서 안정된 숙성을 거쳐 총 8만 병이 생산됐다. 영롱한 짙은 루비색에 보랏빛 뉘앙스가 예쁜 색상이다. 향에서는 카베르네 특유의 블랙 커런트와 칠레스러운 흙내음, 유칼립투스 느낌이 강하나, 체리향과 바닐라, 초콜릿과 담배향도 복합미를 도와준다. 절제된 타닌과 질감이 유연한 미디엄 바디 와인으로 가격 대비 매우 세련되고 우아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다양한 향신료를 곁들인 꼬치구이나 소시지 바비큐에 추천하며, 후추나 고추 같은 향신료를 넣은 지중해 살루미와도 적절하겠다. 두 잔 만 마시면, 레이블의 근엄한 표정도 방긋 미소 지은 표정으로 바뀔 듯하다. Price 4만 원대

 

제공_ 동원와인플러스

 

손진호

중앙대학교 와인&미식인문학 교수

sonwine@daum.net


글 : 손진호 / 디자인 : 서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