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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호텔업계는 유례없는 빠른 성장을 이뤄왔다. 앞선 해외편에서 서양 호텔산업의 역사에 대해 살펴봤는데  호텔산업의 근원지로 불리는 미국의 경우 1794년부터 시티호텔이 등장, 대체적으로 사교의 장으로서 호텔의 역할이 컸던 반면 한국은 이보다 100년 뒤쳐진 1889년부터 호텔산업이 정치·외교적인 목적에 의해 발달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짧은 시간동안 거침없는 성장을 해오며 각종 내·외부적인 변화에 의해 웃기도, 울기도 했던 한국 호텔업계. 업계 종사자이기에 더욱 흥미 있을 국내 호텔의 지난 이야기를 소개한다.

 

정치적 배경이 됐던 국내 호텔들의 효시

 

한국 역사에서 호텔이 갖는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해방 이전 호텔의 모습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1889년)에서부터 팔레호텔(1901년), 손탁호텔(1902년), 경성호텔의 전신인 경성철도호텔(1914년), 롯데호텔의 전신 반도호텔(1938년), 금수장호텔(1955년), 사보이호텔(1957년)이 오픈했으며, 각각의 호텔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지난 2017년 11월호에서 자세하게 소개한 바 있으므로 이번에는 당시 호텔이 정치, 역사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의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해방 이전의 한국에 세워진 근대 숙박시설인 여관과 호텔들은 모두 외국인에 의해 세워졌으며, 주 영업 대상도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과 외국인이었다. 국내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었던 대불호텔은 1883년 인천항의 개항이 배경이 돼 일본인 사업가 호리 리키타에 의해 개관했다. 당시 침대객실 11개, 다다미객실 240개의 약 250개 객실 규모로 오픈, 일본인은 물론 서양의 선교사와 외교사절, 사업가들이 주로 경성(서울)에 방문하는데 숙소가 여의치 않아 호텔이 설립됐다.

 

경성철도호텔 / 반도호텔

신미양요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글로리호텔’의 모티브가 됐던 손탁호텔은 ‘살롱정치’의 본거지였다. 왕실 소유의 땅에 사교장으로 사용하던 한식 건물을 헐고 지었던 손탁호텔에서 손탁은 명성황후에게 서양요리와 고종의 기호식품이었던 헤이즐넛 커피를 처음으로 소개, 외빈접대의 중차대한 일도 맡아 진행했다.


105년 역사의 조선호텔의 전신인 경성철도호텔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회의 장소로 이용됐던 곳이다. 항공여객수송수단이 없던 이 무렵 철도는 만주를 거쳐 시베리아 철도와 연결돼 유럽지역에 이르는 통로였다. 따라서 경성철도호텔은 유럽지역에서 방문하는 귀빈과 일본의 고급 관리 등 정제계의 거물들을 위한 숙소였다. 지배인은 총독부 고등관, 종업원은 총독부 철도국 관리로 당시 상당히 높은 신분의 인사들이었으며, 경성철도호텔에 방문하는 한국인 또한 서양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개화된 부유층 자제들이었다. 조선호텔 관계자는 “경성호텔은 우리나라 정치사의 중심이자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은 국내 호텔문화의 선도자였다.”면서 “또한 단순한 숙박 장소가 아닌 ‘문화 창조의 공간’으로 일제시대였던 1920년대부터 세계적인 첼리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를 초청해 공연을 가진 바 있으며, 마를린 먼로 등의 유명배우들이 투숙했던 호텔이었다.”고 전한다.

 

손탁호텔 / 오른쪽에서 두 번째 앙뜨와네트 손탁

반도호텔은 국내 최대 호텔체인인 롯데호텔의 전신으로 미국의 스타틀러호텔의 경영방식을 도입한 최초의 상용호텔(비즈니스호텔)이었다. 그러나 지하 1층, 지상 8층의 96개 객실의 호텔로 개관, 당시 동양에서 4위권에 드는 초호화 호텔로 한국의 ‘호텔왕’이 된다. 


결혼식장, 위스키바, 사교실 등은 세인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으며 엘리베이터걸도 배치하는 등 차별화된 서비스도 시행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국내 호텔들은 외교의 필요성으로 생겨났으며, 해방 이후에도 우리나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들이 국가적인 중책을 논하는 자리로 이용됐다. 또한 1945년 해방 이후 철도호텔과 반도호텔이 미군정에 의해 관리되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의해 교통부로 이관, 이후 두 호텔을 미군정 사무실로 사용한 대가로 300만 달러의 거금을 우리 정부에 지불한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초기의 호텔이 외화벌이에 큰 부분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1950년대_ ‘호텔정치’의 정점

 

6·25 전쟁 이후,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교통부는 한국 호텔들의 대대적인 수리와 보수공사를 진행했다. 특히 휴전 이후 많은 미군과 UN한국부흥단 의원들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관광사업에 대한 필요성이 인식되기도 해 호텔업계의 재도약의 시대가 도래했다. 또한 1954년, 관광사업 촉진을 위해 관광과가 설치, 이 시기에 최초의 민영호텔인 대원호텔과 지금의 그랜드 앰배서더호텔의 전신인 금수장 호텔이 개관했다.


특히 이 시기는 자유당 정권 시절로 ‘호텔정치’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반도호텔은 자유당 시절의 최고 황금기를 누렸는데 당시 자유당 2인자 이기붕은 반도호텔의 809호실을 전용실로 사용, 당무회의를 주재하는 등 호텔이 ‘작은 정부’가 되기도 해 반도호텔에 투숙하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1960년대_ 관광호텔 발전의 시작

 

1961년 8월에는 관광사업진흥법이 제정됐다. 이에 정부는 시설이 우수한 호텔을 관광호텔로 선정, 물심양면으로 행정적 지원을 함으로써 관광호텔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1961년에 관광호텔로 지정된 호텔로는 메트로호텔, 아스토리아호텔, 뉴코리아호텔, 사보이호텔, 그랜드호텔 등이다. 1962년에는 국제관광공사(현재의 한국관광공사)가 설립되면서 경성철도호텔과 반도호텔의 경영권을 인수했고 적극적으로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에는 당시 우리나라 호텔산업에 있어 최고의 현대적 건물로 명성을 떨친 워커힐호텔이 개관했다. 다양한 국제적 이슈도 있었는데, 한일국교의 정상화로 일본인 관광객이 급속히 증가했으며 1965년에는 PATA(Pacific Asia Travel Association, 태평양 지역 관광협회)의 국제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돼 호텔의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_ 민간 호텔운영의 서막

 

1970년대 초에는 큰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관광산업, 특히 호텔산업의 역사에 큰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바로 1970년 1월 17일, 국제관광공사에서 관광산업의 활성화라는 목표 아래 건설했던 ‘반도경성아케이드’가 불이 난 것. 당시 아케이드는 외국인과 상류층을 대상으로 했던 쇼핑 명소로, 외화획득을 목적으로 설립된 백화점인 만큼 품질과 고객 서비스면에서도 단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고, 박정희 대통령의 주요 시찰 지역 중 하나였다. 

주차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철거작업 중인 반도조선아케이드, 사진출처_ 경향신문

그러나 화재로 인해 아케이드 내 228개 점포가 전소했으며 10억 원대의 피해를 입었다. 특히 3개월 후인 4월 9일에는 경성호텔에서 아시아개발은행 총회가 열려 다수의 외국 관계자들이 방문할 예정이라 더욱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후 긴급복구를 위한 관계부처의 합동회의로 단기간 내에 완전복구가 이뤄지긴 했으나 박정희 대통령은 이후로 관광정책을 대대적으로 전환, 국제관광공사 소속이었던 반도호텔과 경성철도호텔을 민간에 매각한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경성철도호텔은 조선호텔로, 반도호텔은 롯데호텔로 운영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서울 프라자호텔, 하얏트호텔, 경주코오롱호텔, 서울가든호텔, 호텔신라 등의 대형호텔이 개관한다.

 

1980년~1990년대_ 호텔업계의 격변기

 

1980년대는 서울을 국제도시로 알림과 동시에 호텔 건설에 박차를 가했던 시기다. 1986년의 서울 아시안 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의 유치로 정부에서는 서울에만 약 3만 8000여 객실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는데, 1987년 말까지만 해도 전국의 호텔 객실은 약 2만 8000여실로 특히 서울은 채 5000실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이에 정부는 ‘86·88 숙박대책위원회’를 발족해 힐튼, 롯데호텔, 롯데호텔월드, 스위스그랜드호텔, 인터컨티넨탈호텔, 라마다르네상스호텔 등의 오픈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88 서울올림픽 폐막식 광경, 사진출처_ 경향신문

이후 올림픽개최의 성공으로 인해 서울이 국제도시로서의 반열에 들어서긴 했지만 급증하는 내국인의 해외여행으로 국제수지는 악화됐고, 관광산업을 사치산업으로 규정하게 됐다. 이에 호텔건설은 다소 침체된 경향을 보였으나 다시 대전 EXPO의 개최가 가시화되면서 국내 호텔 수는 전국 446개, 4만 5096실의 객실을 보유하게 됐다.


1990년대 후반에는 2002 한일월드컵, 부산아시안게임 유치가 확정, 앞으로의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관광숙박시설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이 2002년까지 한시법으로 제정돼 호텔 건축에 다시금 불을 지폈지만 이도 IMF를 맞아 얼마 지나지 못해 위축된다.

 

호텔앤레스토랑 매거진 통해 본 2000년대 호텔역사

 

IMF가 지나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호텔뿐만 아니라 전체 관광업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인천국제공항의 개관과 IMF 구제금융으로 인한 환율의 폭등으로 외래관광객의 입국을 증가시켰던 것. 당시 설립된 호텔로는 대표적으로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메리어트호텔, W서울 워커힐호텔, 파크하얏트, 메이필드호텔을 포함한 공항을 둘러싼 대형호텔들이다.


호텔앤레스토랑도 호텔과 관광산업의 발전에 따라 1991년 창간, 28년 동안 업계와 발맞춰 오며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아무래도 업계 전문지인만큼 호텔앤레스토랑 과월호에서는 당시 업계가 고민하고 있던, 이슈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2000년대 이후의 호텔 발자취에 대해서는 호텔앤레스토랑 게재됐던 재미난 기사들을 통해 확인해보자. 선정한 기사들은 그동안 업계에서 자주 회자됐던 사스나 메르스, 올림픽과 같은 굵직한 이슈들보다 현시대에 다시금 짚고 넘어가면 좋을 내용들로 구성했다.

1996년 7월호 / 1997년 9월호
1998년 7월호 / 1998년 10월호


“호텔업계 성희롱 위험수위 여전히 높다”


작년 한해 ‘미투’ 운동으로 인해 온 나라가 들썩거렸다. 정·재계는 물론 범사회적으로 권력으로 인한 성희롱, 성폭력에 항거, 직장 내 회식도 쉬쉬될 정도로 1년 내내 큰 이슈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호텔업계도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호텔업계 성희롱 상황이 점점 개선되고 있지만 전체의 절반이 훨씬 넘는 성희롱 발생빈도를 보이고 있어 예방이 시급하다.”는 문제제기와 함께 본지에서 진행한 특급호텔 여성종사자 132명을 대상의 설문조사에서 전체의 60.6%인 80명이 성희롱을 경험했다는 결과를 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99년 4월의 조사 수치(93%)보다는 낮아졌다는 뒷 문장. 2000년대 이전에는 호텔 내 성희롱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성희롱 유형 중에는 ‘음란한 농담이나 음담패설(72.7%)’, ‘외모에 대한 성적 평가나 비유(66.7%)’, ‘술자리 시중(54.5%)’이 주를 이뤘으며,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업계 특성상 직장 동료나 상사뿐만 아니라 고객들에 의한 성희롱도 발생빈도가 높았다. 그러나 호텔업계 종사자들은 성희롱을 당해도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확률이 낮게 나타나 이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특급호텔결혼식 금지법안, 자유의사무시 vs 위화감조성”

 

5월, 봄 웨딩시즌을 알리는 웨딩 페어들이 속속들이 열리며 결혼을 앞둔 예비신혼부부들이 분주한 시기가 왔다. 호텔 웨딩은 일생에 단 한번뿐인 결혼식을 보다 특별하게 만들 수 있어 많은 예비부부들의 로망이다. 이번 5월호 기획에서도 호텔 웨딩을 다뤘는데 사실 호텔 웨딩이 허용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2006년 초,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은 특급호텔 내 결혼식을 금지하는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특급호텔에서 진행하는 결혼식을 ‘허례허식’, ‘낭비’라고 봤기 때문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1999년 ‘허례허식행위 금지조항의 위헌 판결’로 인해 고급호텔을 중심으로 초호화 결혼식이 성행하면서 서울 시내 유명호텔의 경우 꽃 장식비용만으로도 1000만 원을 초과, 하객 1인당 음식비가 10만 원 이상 지출돼 하객 700명을 기준 결혼예식비가 1억 원에 이르는 등 허례의식과 사치가 심한 수준이었다. 또한 한국소비자보호원이 2003년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와 일반인 총 84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3.4%가 한국의 결혼문화가 ‘호화, 사치스럽다’고 답해 정부의 규제 강화에 불을 지폈다.


물론 한국관광협회와 호텔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일부 유명 연예인 또는 저명인사의 결혼예식비와 같은 부분적 자료만을 가지고 침소봉대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는 한 호텔업 관계자는 “법이 정해지다보니 업계의 반발이 심해도 고위공직자들부터 특급호텔 예식을 꺼리게 돼 호텔의 예식사업이 힘들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서비스드 레지던스 영업 불법판정,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분쟁”

 

지난 2월호에 공유민박업안의 시행을 목전에 두고 공유민박업에 대한 기사를 썼다. 그렇지 않아도 뻗어난 가지가 많아 골머리를 썩고 있는 숙박업계인데 여기에 공유민박업까지 늘린다니, 호텔업계를 포함한 여타의 숙박업계들의 반발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2010년, 현재 생활숙박업으로 운영되고 있는 서비스드 레지던스업도 영업 불법으로 판정돼 존립여부가 불투명했었던 사건이 있었다.

 

서비스드 레지던스가 영업 논란에 휘말리게 된 것은 한국관광호텔업협회가 레지던스 업체들을 검찰에 고발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관광호텔업협회 측의 주장은 “부동산임대업을 간판으로 내걸고 숙박영업을 하는 레지던스가 현재 관광호텔시장의 30% 이상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으로, 레지던스 업계가 불법 영업으로 기존 호텔업계를 위협한다는 주장이다. 이후 검찰은 레지던스 운영업체 10곳과 대표이사 등을 건축법, 공중위생관리법 및 학교보건법 위반으로 기소, 2008년 6월 26일 서울지법에서 레지던스업체에게 벌금 700만 원 형을 부여했다. 이후 레지던스측은 “국제적인 흐름과 현 레지던스시장의 규모를 반영치 못한 처사”라며 즉각 항소했지만 서울지법은 이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호텔업협회는 레지던스협회에게 가족호텔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으나 레지던스 측은 이를 거부, 호텔과 성격이 다른 레지던스를 하나의 새로운 업종으로 봐 달라 주장했다.


당시 기사를 보니 얼마 전 공유민박업 도입을 다룬 기사와 골자가 비슷하다. 기존 숙박업계와 시장의 요구에 의해 생겨난 숙박업계의 갑론을박, 새로운 숙박업계의 구조, 이에 대해 기존 숙박업계가 대응해야 할 내용 등이다.


“미디어 속 호텔과 호텔리어, 드라마 ‘호텔킹’ 호텔 이미지에 새바람 불어올까?”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남자친구’에서 주인공 차수현의 직업이 동화호텔 대표로 그려졌는데 동화호텔의 배경지가 속초 롯데호텔로 드러나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또한 지난 해 ‘효리네 민박’, ‘달팽이 호텔’에 이어 ‘파자마 프렌즈’, ‘스페인하숙’까지 각종 숙박예능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동안 호텔리어와 호텔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은 많았지만 예능 진출까지 이루면서 호텔 PPL의 영역이 넓어진 것.

2014년에도 배우 이동욱과 이다해가 주인공이 된 호텔 드라마 ‘호텔킹’이 방영됐다. 호텔킹의 제작지원은 강원도와 알펜시아 리조트의 모회사인 강원도 개발공사가 MOU를 통해 공동지원, 드라마의 주 무대인 알펜시아 리조트는 드라마 촬영 전 강원도의 대표 리조트 및 호텔로서 제작지원을 통해 알펜시아의 사계절을 알리는 홍보에 적극 나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촬영 특성상 시간대와 동선을 조정하고 호텔 내 업장과의 협업과정에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고, 기존 호텔이용 고객과의 마찰을 줄이기 힘들어 기대했던 것보다 홍보 효과가 크지 못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었다. 또한 호텔과 호텔리어의 이면보다 화려하고 정돈된 모습만 보여 본질적으로 호텔리어들의 프로페셔널함을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굵직한 사건 외에도 호텔업계에는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다. 337권 중에 모든 내용을 조망할 수는 없어 현 호텔업계와 관련이 있는 내용을 위주로 돌아봤다. 과거를 돌아보면 해답이 보인다는 말이 있듯, 현재까지도 내용만 다를 뿐 업계에는 비슷한 상황들이 일어나고 있어 다시 한 번 과거를 짚는 일은 중요해 보인다. 앞으로도 호텔앤레스토랑은 호텔업계의 역사와 함께 할 것이다. 다시 꺼내 읽어도 알찬 호텔앤레스토랑의 기사를 꼭꼭 씹어보자. 


글 : 노아윤 / 디자인 : 임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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