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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 & Cafe,Bar

호텔앤레스토랑 - 예산에서의 영감

5년 전 ‘KBS 대식가들’이라는 로컬 식재료 프로그램에서 예산과 남원의 돼지고기를 비교한 적이 있었다. 한국 돼지고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어떠한 돼지고기라도 국산 돼지고기는 모두 좋다고 생각을 해서 부위별 맛에만 신경을 썼다. 돼지고기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된 때가 있었는데 바로 예산에 직접 가서 돼지를 키우는 환경을 보고 돼지고기를 보는 관점이 변하게 했다. 돼지고기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에 얘기하기로 하고 예산을 리서치하면서 이곳 주민들에게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곳이 예당저수지다. 근대시대 전 생활 터전은 저수지를 주변으로 발전이 이뤄졌다. 담수를 끌어와 논에 물을 대고 곡식을 키웠다. 즉 생활의 필수요소였다.


돼지고기와 사과
예산읍에 위치한 지돈가를 처음 방문했을 때 이런 시스템을 처음 접해서 깜짝 놀랐다. 예산은 사과가 유명한데 돼지 농장 옆 광활한 사과밭에서 사과를 키우고 빨갛게 무르익은 사과는 사료와 함께 교반기에 돌려 발효 시킨 뒤 돼지에게 먹인다. 사과로 만든 사료를 먹은 돼지의 분뇨는 자체 운영하는 분뇨차에 실어 다시 사과밭에 뿌려진다. 이렇게 친환경 농법(Eco-Friendly)이 예산의 지돈가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이러한 시스템을 만든 장본인에게 끊임없는 질문과 예산돼지의 장점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훗날 <Apple Fed Pork Jowl ‘Yesan Inspiration’ 2016>의 메뉴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 후 예산 지돈가를 몇 번을 더 방문해 돼지 축사와 자체 운영하는 고깃집, 사료가게도 방문했다. 고깃집 안에는 HACCP 시설을 갖춘 육가공 공장도 있었다. 돼지고기를 여러 부위로 정형하는 모습을 보고 떡갈비를 맛봤는데 뛰어날 정도로 맛이 좋았다. 다시 고깃집으로 돌아와 활활 타오르는 숯에 두툼한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맛보게 됐다. 다른 돼지고기와 달리 지방이 적고 촉촉하며 담백함이 좋았다. 더욱더 놀라웠던 것은 돼지고기 육회였다. 먹어보라며 핑크빛의 돼지 홍두깨살을 초장에 찍어 줬는데 자의반 타의반으로 근심 걱정 가득 안고 입안에 넣었다. 걱정과 달리 부드럽고 냄새 없이 맛있었다. 지돈가 돼지고기는 생식을 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먹는 것과 축사의 환경에 신경을 썼다. 그 이후 예산 돼지고기 지돈가에 대한 믿음이 생겨 줄곧 메뉴에 사용하게 됐다. 식재료의 믿음을 1부터 10까지 보여준 모범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어죽
예산하면 빠질 수 없는 음식이 어죽이라고 입을 모아 얘기를 하는데 안 가 볼 수가 없었다. 솔직히 내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몇 가지 있는데 민물고기는 지양하는 식재료다. 민물장어, 은어 외에는 흙냄새가 강해서 다루기가 힘든데 예당저수지 근처 즐비해있는 어죽을 먹어보기로 했다. 대흥식당이라는 곳에 가서 어죽과 민물새우 튀김을 시켜 맛을 봤다. 너무 뜨거워서 맛을 느끼기조차 힘들었지만 걸쭉한 텍스쳐와 약간 칼칼한 맛은 계속해서 입맛을 끌어당겼고 고소한 민물새우 튀김과 곁들이니 금상첨화였다. 어죽을 먹으며 들었던 생각은 환경이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주변 민물장어 집도 유명하다는데 예당저수지에서 삶의 터전이 시작됐듯 먹거리도 저수지에서 잡히는 민물고기와 농산품이 주룰 이뤘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었다. 참고로 예산은 내륙지방으로 바다가 없다. 사실 바다가 있었더라면 식탁이 더욱 풍부해졌을 것이다.


예산의 어죽에서 영감을 받은 메뉴들이 머릿속에서 속속들이 나왔다. ‘걸쭉하게 풀을 씌어 더욱 끈적한 맛과 농도를 내며 민물고기를 끓는 물에 팔팔 끓인 뒤 거칠게 체에 내려 시래기 등 각종 채소와 양념을 더한다. 또한 민물장어 구이에 단짠의 소스를 바르고 구워낸 뒤 끈적한 어죽소스를 더하면 좋겠다.’라는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올랐다. 

광시한우
광시한우거리는 식육식당으로 즐비하다. 예산이 한우로 유명하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서 더욱더 설레고 더 깊숙이 들어가고 싶었다. 알고 보면 예산은 바다만 없을 뿐 식재료가 굉장히 풍부했고 특히 육지에서 나는 것들은 전부 있었다. 예전에는 은행이 자리하고 있었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아 “예산에서 돈 자랑 하지 말라.”라는 얘기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광시면에 들어가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우로 시작해서 한우로 끝난다. 이렇게 거리가 형성된 지는 15년 정도 됐다고 한다. 초입에 들어가면 털보네 한우가 있는데 진짜 털보 아저씨가 정육을 하고 식당에서 고기를 판다. 반갑게 맞아주는 털보 아저씨에게 광시한우를 알고 싶다고 하니 4시간 이상 붙잡혀 정말 끝장을 보고 왔다.

광시가 유명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소를 키울 수 있는 환경에, 전라남도에서 올라가는 길목과 서해안에서 오는 길목에 광시면이 있어 한 명, 두 명 소고기에 불을 피우니 사람들이 몰려왔다는 것이다. 그럴싸한 스토리였다. 횡성도 스키 타는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면서 한우촌이 만들어진 것처럼 말이다. 털보 아저씨가 작업하고 있던 짝갈비가 궁금해서 발골 방법과 가격에 대해 자세히 물어봤고 홍성에 있는 도축장에 가는데 함께 가자고 해 도축장까지 가게 됐다. 날씨가 엄청 추운 날이었는데 리서치팀과 벌벌 떨면서 고생을 했다. 소 한마리의 스펙을 보며 좋은지 안 좋은지 판단한 뒤 도축장에 의뢰해 부위별로 해체를 부탁하는 시스템이었다. 직접 가지러 가서 트럭에 실은 뒤 다시 정육점으로 들고 와 부위별로 소분해체해 손님들에게 팔고 있었다. 여간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정육점이 끝나는 시간까지 옆에 붙어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며 최대한 정육업자의 생각을 이해해보기로 했다. 결국 무언가에 홀린 듯 한우 짝갈비를 사버렸다. 31kg 정도 되는 거대한 짝갈비인데 짝갈비에는 살치살, 늑간살, 양지살 같은 부위가 붙어있어 해체하는데 꽤나 숙련된 스킬이 필요했다. 일단 차에 싣고 다음 리서치 장소로 이동했다. 앎의 기쁨이 있는 하루였다.

예산국수
예산은 국수가 유명하다. 예산읍에 가면 국수와 국밥거리가 있는데 예산국수는 8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예산은 3국 축제로 유명한데 국화, 국수, 국밥이다. 예산의 국수가 유명하다고 해서 어떤 국수인지 맛을 보려 음식점을 찾아다녔지만 없었다. 지인에게 물어보니 예산은 국수라는 음식의 형태가 아닌 국수 면이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예산국수, 버들국수, 쌍송국수라는 곳을 가봤는데 신기하게 넓은 마당에 국수를 걸어놓고 말리고 있었다.


3, 4대가 이러한 방식을 고수하면서 대대로 이어지고 있었고 예산은 대지가 넓고 바람이 잘 통해서 자연건조를 한다고 했다. 우리 토종밀이 아닌 호주산을 사용한다고 했는데 이해가 됐다. 우리나라 식재료라고해서 모두 다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 나라가 가지고 있는 토양과 기후가 각자 다르기 때문에 컨디션에 가장 알맞은 재료가 있기 마련이다.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을 같은 방식으로 다른 곳에서 재배하더라도 같은 퀄리티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지리적 표시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국수는 다양한 색깔이 있었는데 갈색은 메밀이고 노란색은 치자이고 빨간색은 비트, 흰색은 밀가루로 만들었다. 노란색 치자가 식욕을 돋아 보여서 몇 묶음 사들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소고기 국밥과 황충길 명장의 옹기
위에서 얘기했듯이 광시면은 한우가 유명하고 예산읍은 국밥이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예산에서 만드는 질그릇인 예산 옹기가 유명하다. 이 셋의 조화는 예산 소고기 국밥이라는 텍스트로 완성이 된다. 예산읍으로 들어가면 국밥거리가 있다. 백종원 씨의 고향이기도 하고 입구에 들어서면 그를 볼 수 있다. 예산국수와 국밥집이 즐비해있는데 모두 원조라고 붙어있어 어디가 진짜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최대한 맑고 깨끗한 국밥을 하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사실 동물 내장과 소머리 국밥은 잘 못 먹기 때문이었다. 가게 이름은 까먹었지만 내가 잘 먹을 만한 곳으로 정했다. 

여러 국밥집 중 한곳이었는데, 사실 ‘거기서 거기’라고 느껴질 만한 것이 모두 국밥을 팔고 있었다. 일행과 소고기 국밥을 시켰다. 반찬 하나에 소고기 국밥 달랑 한 그릇이 전부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을 유심히 관찰하며 속속들이 살폈다. 다만 이 국밥 하나가 예산의 전부를 보여준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만드는 사람마다의 특징이 있고 모두 다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소고기와 예산 옹기를 사용했다는 것은 일치했다. 일단 국물은 아주 맑았고 양지살을 천천히 삶아서 국물이 깨끗하며 감칠맛이 가득했다. 고기는 너무 부드러웠고 숙주와 부추는 국밥의 퀄리티를 한껏 끌어 줬다. 국물을 더 시켜서 다 먹고 나니 배가 많이 불렀다. 깔끔한 국밥의 맛을 잊지 않기로 했다. 국밥을 비우고 바로 예산 옹기를 보러 갔다. 사실 ‘옹기’라고 하면 우리에게 많이 익숙하고 어디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예산의 ‘옹기’라고 하니 뭔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흔한 양파를 그 산지에 가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산지의 매력은 이런 것에 있다. 황충길 명장의 전통 옹기는 3대로 이어지는데 지금은 황충길 명장의 아들인 황진영 전무가 기술을 이어받아 좀 더 실용적이고 시대에 걸 맞는 실용품으로서의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우리는 하나하나 살피면서 흔한 옹기그릇의 특별함을 찾으려 했고 친근한 질그릇의 토박함에 우리들도 더욱 순수해지는 듯했다. 예산의 질 좋은 황토는 옹기를 만들기에 적합했고 이곳의 식재료로 만드는 다양한 국물 스타일의 요리는 옹기의 탄생을 예고했을 것이라 추측해 봤다. 따뜻한 국물을 요리하고 싶어졌고 얼른 들고 가서 맛있는 밥도 짓고 싶어졌다. 황충길 명장은 직접 만나지 못해 아쉬웠지만 3대인 황진영 전무님과 긴 얘기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갈비
예산읍에 가면 70년 전통의 소복갈비라는 곳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즐겨 먹던 곳이라고 한다. 시골 음식점 치고는 가격이 꽤나 비쌌는데 그래서 더더욱 궁금했다. 소고기는 광시가 원채 유명하니 거기서 수급을 받고 갈비살을 얇게 펼쳐낸 뒤 달콤한 간장소스에 절인 갈빗살을 뜨거운 숯불에 구워내서 나오는 방식이었다. 오랜 노포식당이라 그런지 반찬도 맛있었고 숯불 향 가득한 부드러운 갈비가 맛있었다. 시간이 없어 리서치팀과 얼른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미황쌀
예산은 예당저수지를 중심으로 농업이 발달했는데 미황쌀은 쌀의 황제라는 뜻으로 저수지의 맑은 물과 예산지역의 황금벌판의 기름진 땅에서 삼광벼 품종을 재배한다. 예당평야는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대 중 하나로 예당저수지에 가면 왜 질 좋은 쌀과 최대 곡창지대인지 확인할 수 있다. 서울에서 수많은 스케줄과 쌓인 스트레스를 길 옆 예당저수지에 서있는 나무와 맑은 하늘을 보며 달랠 수 있었다. 함께 한 예산 지돈가 회장님은 상세한 설명과 함께 저수지 먼 곳을 살피며 만처럼 깊숙이 들어간 곳 뒤에 산이 있는 곳의 쌀이 훨씬 고급이라고 귀띔했다. 예산에 오래 산 사람들은 그곳의 쌀을 선호한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햇빛과 그늘이 교차하며 쌀이 더욱더 질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곳에 미생물이 더 많이 살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다음 리서치 때 가보기로 했다. 아무나 알지 못하는 정보를 듣고 식재료 보는 눈이 더 생긴듯해 기분이 좋았다. 

민물장어, 채소, 토마토, 꽈리고추 등
예산은 민물을 중심으로 한 농업과 식문화가 깊이 뿌리 박혀있음을 4번의 리서치 끝에 알 수 있었다. 저수지에 잡히는 민물장어로 누군가 음식을 해먹었을 것이고 지금은 예당저수지에서 잡힌 민물장어를 쓰지 않아도 주변에는 유명한 장어집으로 즐비하다. 물과 흙이라는 필수 요소가 다양한 채소와 식문화를 만들어냈다. 한길 건너서 보여지는 사과 과수원도 예산의 주수입원으로 농민들을 부유하게 만들었고 지리적표시제에 ‘사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도 예산이다. 


앞으로 지구온난화에 의해서 점점 윗지방에서도 재배가 이뤄진다고 하는데 예산의 맑은 물과 기름진 땅의 완벽한 밸런스는 끝이 없을 것이다. 예산을 오랜 시간 리서치하며 배운 것은 식재료를 위한 끊임없는 연구도 있겠지만 우주의 필수요소에 부합하고 순리에 따라 적응하며 보여주는 자연철학이 와닿았다. 좋은 셰프와 아버지의 경계에서 필요한 것들이 무언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순간이다. 

 


류태환

RYUNIQUE 오너 셰프

chef@ryunique.co.kr


글 : 류태환 / 디자인 : 강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