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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 & Cafe,Bar

호텔앤레스토랑 - 접시에 담아내는 한 폭의 디저트 페이스트리 셰프, 저스틴 리

 

식재료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접시에 담아 낼 수 있는 요리의 범위도 넓어지게 마련이다. 한정된 디저트라는 범주 안에서 식재료의 특성과 조합으로 완성시킨 플레이팅 디저트는 코스요리의 말미에 따르는 디저트를 넘어 요리의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플레이팅 디저트 분야를 개척한 제이엘 디저트 바, 저스틴 리 셰프의 이야기이다.

 

홍대나 이태원의 북적이는 거리가 아닌,

청담동의 한적한 골목에 디저트 숍이 있을 거라고 생각지 못했어요.

인테리어가 차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직접 하신건가요?

보시다시피 인테리어는 제가 직접 했어요. 그동안 일을 하면서 마음속에 디저트 숍을 위한 동선, 기물배치, 인테리어 등 웬만한 건 머릿속에 다 그려놨거든요. 전체적으로 그레이나 블랙이 많이 사용됐지만 개인적으로는 에메랄드 톤이 도는 블루를 좋아하는데요. 화장실에 한번 가보시면 반전이 있을 거예요.(화장실은 아담한 다락방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사방이 에메랄드 핸드 페인팅으로 꾸며져 있고 다림질된 천이 단정하게 씌워진 테이블 위에는 비즈 조명이 놓여있었는데, 비즈 장식 사이로 새어나오는 조명의 노란 불빛이 공간을 아늑하게 채우고 있었다.)

 

▲ JL 디저트 바의 시그니처 메뉴_ <토마토, 바질, 베리, 블랙올리브, 파마산치즈>_ 다양한 텍스처의 토마토와 베리, 바질, 고소한 파마산 치즈 아이스크림에 말린 블랙올리브로 감칠맛을 더했다.


디저트 숍을 열기 위해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을 접고 한국에 들어왔어요. 고급 디저트를 소비할 수 있는 중장년 고객을 타깃 고객으로 청담동에 자리 잡았지요.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한국에서는 디저트를 소비하는 층이 20~30대 젊은 고객들이더라고요. 외국에서는 디저트를 즐기는 중장년층 고객이 많이 있는데 미식 수준이 높아진 한국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으로 타겟팅 한 것이죠. 다음 업장은 젊은 고객들이 찾아오기 쉬운 그런 곳으로 할 생각이에요.  

 

제이엘 디저트 바를 오픈했을 때 한국에서 디저트 바는 생소했을 텐데요. 뉴질랜드에는 이런 게 많이 있나요?

한국에 온 지 2년 정도 지났지만 디저트 바는 여전히 생소한 분야지요. 뉴질랜드나 외국에서도 디저트 바 문화가 따로 있지 않아요. 굳이 따지자면 디저트가 있어도 요리가 메인이거나 바의 역할이 큰 것이지 디저트가 중심이 된 문화는 아녜요. 일반적으로 손님들이 음식을 먹으러 레스토랑을 방문하지 디저트를 먹으려고 방문하지는 않잖아요. 제이엘 디저트 바를 이런 시각으로 보면 주객이 전도 됐다고 봐야겠죠. 제이엘 디저트 바의 장점은 바에서 디저트를 만들면서 손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셰프가 주방에서 완성시킨 요리를 고객에게 설명하는 것과는 달라요. 디저트가 만들어지는 과정 하나하나를 눈으로 보고 맛이 어떤 조화를 이루는지 고객들이 생생하게 알고 먹을 수 있으니까요. 

 

제이엘 디저트 바는 페어링이 큰 특징 중 하나죠?

일반적으로 음식과 술을 마리아주 하는데 디저트만 떼어놓고 마리아주라니 독특하네요.

페어링할 때 특별한 기준이라도 있나요?

주류는 운영상 많은 도움이 돼요. 제가 몸담았던 클루니에서도 전체 매출의 60%가 와인이었을 정도로 주류의 비중을 무시할 없어요. 디저트도 하나의 요리처럼 술과 함께 하면 더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고요. 페어링은 다분히 주관에 따른 것이지만 고객들이 디저트를 즐기면서 저의 선택에 고개를 끄덕여주시면 재미를 느끼죠. 디저트 하면 단 술 위주로 매칭하잖아요. 하지만 정해진 공식은 없어요. 와인, 맥주, 위스키, 전통주 등 디저트와 페어링 할 수 있는 주류는 무궁무진하죠. 저는 단 술 보다는 오히려 드라이하거나 상큼, 향미가 느껴지는 술을 매칭하곤 해요. 페어링 포인트는 맛을 감산하는 것이 아닌, 주류와 디저트의 상호작용을 통해 최대한의 맛을 이끌어내는 것이지요. 가령 위스키를 들어보죠. 디저트를 만들 때 시나몬이나 오렌지 향을 살려서 페어링 할 겁니다. 반면 요리에서 신맛이 나는 재료를 빼는 대신 상큼한 와인을 매칭하는 것과 같은 조리법은 지양하지요. 저는 술을 즐겨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테이스팅 노트는 꼼꼼하게 챙겨봐요. 주류마다 테이스팅 노트에 캐릭터가 잘 표현돼 있거든요. 디저트에 많이 사용되는 초콜릿도 커피나 와인처럼 품종, 산지에 따라 맛이 달라요. 이렇듯 재료에 대한 이해와 그 기준에 따르려고 노력하다보면 힌트를 많이 얻게 돼요. 각각 먹어도 맛있지만 둘이 먹으면 더 맛있게! 이것이 저만의 페어링 기준이죠.

 

▲ 저스틴 리 셰프는 지난 4월 플레이팅 디저트 대회인 세계 발로나 초콜릿 대회에서 8대륙 가운데 아시아 예선 2위를 차지했다. 맛은 기본이고 청결도와 공정 과정, 플레이팅 등을 심사하며, 중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대표선수들과 겨뤄 당당히 2위를 지켰다.

 

트렌드를 이끄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것이 시도되지 않은 것이라면 더욱 말이죠. 한국에서 처음 디저트 바를 소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이곳에 오기 전에 제가 일하던 레스토랑은 ‘미얀’이라는, 뉴질랜드에서 유명한 디저트 숍이었어요. 클루니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레스토랑을 오픈한다기에 제안을 받아들여 일을 시작하게 됐고 지금도 뉴질랜드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지요. 그동안 디저트를 만들어오면서 항상 마음속에 디저트 바를 운영해보고 싶은 꿈과 밑그림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곳에서 디저트 바를 열자니 동료와 경쟁 구도가 되는 게 싫었고, 뉴질랜드로 여행을 오게 된 친동생의 제안으로 오랜 계획을 한국에서 실행하게 된 거죠. 한국에서 디저트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지만 디저트가 하나의 요리로서 제공되는 곳은 없어요. 플레이버는 특이하지만 스킬이 들어가 있는 것도 드물고요. 외형을 강조하거나 인기 있는 플레이버로 만들어진 흥미 위주의 디저트 말이죠. 저는 한국에 제대로 된 디저트 문화의 혁명을 불러오고 싶었어요. 제이엘 디저트 바가 그에 대한 매개체가 되길 바랍니다.

 

셰프님의 디저트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디저트와 다른 것 같아요. 초콜릿, 설탕, 크림, 버터 등 일반적인 디저트 재료가 아닌 된장, 채소, 라면 등 디저트의 재료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들로 디저트를 만드시잖아요. 

저의 베이스는 이탈리안 요리예요. 처음부터 페이스트리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죠.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배우면서 다양한 식재료를 접하게 됐고 재료 특성에 맞는 조리법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해요. 저의 디저트에 사용되는 재료의 폭이 넓다고 하는데, 모두 이때의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봐요. 식재료에 대한 폭넓은 이해 뿐 아니라 플레이팅까지도 셰프라면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디저트는 플레이팅보다 센터피스 위주로 꾸며내는 게 대부분이다 보니, 저의 경험이 페이스트리 셰프로서 특화된 강점이 됐어요. 저는 디저트를 하나의 요리라고 생각하며 만들고 있어요. 재료의 궁합도, 맛의 조화도, 주류와의 페어링도, 플레이팅도 하나의 요리로서 완벽할 수 있는 디저트를 만들지요.

 

국내에서 처음으로 플레이팅 디저트를 선보였는데 페이스트리 셰프가 되기 전에는 이탈리안 셰프를 꿈꾸셨다고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지만 그 보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군대에서 우연히 신문에 나온 이태원 프렌치 비스트로 기사를 읽으면서 요리가 하고 싶어졌지요. 당시 IMF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유학을 갈 형편은 안 되고 호텔에 취업해 설거지부터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전화번호부를 샅샅이 찾아가며 호텔이란 호텔에 다 전화해봤어요. 하지만 모두 대학 졸업이상 자격요건을 원하더라고요. 마침 부산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일마레에서 직원을 채용하고 있어서 이탈리안 요리를 시작하게 됐고, 이후 서울로 올라와 강남역의 푸친에서 피자, 디저트, 빵을 만들면서 한 차원 높은 요리를 배울 수 있었어요. 그 때까지만 해도 동네에서 맛있는 파스타 집을 운영하는 게 꿈이었죠. 낮에는 푸친에서 일하고 퇴근하면 또 새벽 3시까지 도산공원의 아마폴라델리라는 24시간 카페에서 케이크를 만들면서 꿈을 키워갔어요. 그리고 스물아홉이 되던 해에 외국에서 경험을 쌓고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것에 자극을 받아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지요. 한국에서 요리사로서 5년 이상의 경력이 있으니 뭘 해도 잘 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나이가 한참 어린 스물 한 살의 파트장이 저보다 더 요리를 잘하는 거예요. 레스토랑에 있는 프렌치 셰프로부터 넌 나이 서른에 언제 파트장이 될거냐는 핀잔과 함께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어요.

 

 

그럼 그 이후에 페이스트리 셰프가 되셨나요? 본격적으로 디저트를 시작하게 된 클루니에서?

네. 비자가 만료돼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가 이번에는 호주가 아닌 뉴질랜드로 떠났어요. 4달 동안 열심히 파인다이닝을 찾아다녔죠. 제대로 된 요리를 하고 싶었거든요. 뉴질랜드는 독특하게 미쉐린의 별점 대신 모자로 된 자기들만의 랭킹시스템을 갖고 있어요. 당시에 모자가 셋인 레스토랑이 단 4곳 뿐 이었는데 클루니가 그 중 하나죠. 클루니에서 일하고 싶어서 매일같이 찾아가 이력서를 내밀고 페이스북으로 오너에게 장문의 글을 보내기도 했어요. 그러던 중 “내가 너라면 인사권이 있는 셰프에게 찾아가보겠다.”는 오너의 조언을 듣고 셰프를 찾아갔어요. 그가 저를 보더니 대뜸 “네가 그 스토커야?”라며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를 줬어요. 좀처럼 빈자리가 나지 않는 곳인데 운명처럼 디저트 섹션에 딱 한자리 남아있더라고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재료와 플레이버의 조화... 클루니에서 접해본 디저트는 제게 첫 세상이었어요. 그동안 요리 하면서 익힌 제철 재료의 특징과 쓰임도 알고 있으니 페이스트리 셰프가 되면 경쟁력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뒤로 다른 섹션에 자리가 나도 디저트에 올인 했어요.  

  

뒤늦게 시작했는데도 타고난 감각이 있었나 봐요. 2015 안토니오 바쇼어 페이스트리 대회에서 우승하셨죠?

클루니에서 디저트 파트를 담당한지 일 년 정도 됐을 때 유명 페이스트리 셰프인 안토니오 바쇼어가 마이애미에 오픈할 레스토랑의 채용 특전을 놓고 안토니오 바쇼어 페이스트리 대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고 플레이팅 디저트라는 매력이 크게 다가왔어요. 그동안 요리하면서 플레이팅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허브나 플레이버를 자유롭게 사용해서 플레이팅이 가능한 디저트를 만들었다는 데 큰 점수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다수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셨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청담동의 앨리스 바와 함께한 콜라보레이션이 기억에 남아요. 칵테일의 플레이버는 무궁무진하지요. 제이엘 디저트 바의 메뉴에 매칭한 칵테일, 앨리스 바의 칵테일에 매칭한 디저트. 이 조합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칵테일과 디저트는 향을 우려내기도 하고 조합하는 방법, 사용하는 가니시 등 닮은 점이 많아 같은 장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려웠던 콜라보레이션은 전통주예요. 단술 위주로 선택의 범위가 좁았기 때문에 페어링하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된장을 캐러멜로 표현하는 등 음식적인 이야기로 풀어냈어요.

 

디저트를 눈으로 먹는 요리라고 하죠.

한국에서도 디저트에 대한 인기가 높아졌어요. 디저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맛이죠. 디저트의 꽃을 초콜릿이라고 해요. 초콜릿도 카카오 함량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그 종류도 세분화 돼 있어요. 일단 맛을 정하면 이어서 과일과 초콜릿, 견과류를 정하고 허브, 향신료의 조합을 더해 디저트를 완성해요. 이제는 요리에서 분자요리가 인기를 얻던 시기는 지났다고 봐요. 오히려 디저트 분야에 활발히 적용되고 있지요. 저는 재료의 여러 형태를 조합해 맛의 조화를 이뤄내려고 해요. 가령 딸기를 폼, 젤리, 소르베, 아이스크림 등으로 형태를 변형시키고 이러한 10~15개의 조합을 접시에 옮겨 하나의 메뉴를 완성하지요. 하나의 메뉴에도 동결건조과일, 크림, 파나코타, 레몬 밤 허브, 오트밀 크럼블, 브라우니, 위스키 등 맛과 식감이 각기 다른 재료가 조합돼 청량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 여름시즌메뉴_ <참외, 메론, 오렐리스 초콜릿, 그뤼에르 치즈, 마누카꿀, 잣, 감초, 딜>_ 참외, 메론, 딜로 만든 동그란 모양의 소르베에 그뤼에르 치즈 크림이 채워져 있고 오렐리스라는 유기농 설탕으로 만든 초콜릿 크림과 스펀지, 잣 클럼블, 감초 바닐라 크림, 마누카꿀에 절인 참외로 구성됐다.

 

한국에서는 가치소비가 부각되고 있어요.

디저트도 여기에 한 몫을 하고요.

젊은 고객을 중심으로 디저트 소비가 증가했는데 한국의 디저트가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하나요?

한국에 디저트 문화가 제대로 정착하는데 앞으로 40년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해요. 디저트 문화가 정착했다는 것은 식문화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저는 디저트 문화 형성의 기준을 디저트에 대한 주관적인 맛이라고 생각해요. 초콜릿 하나를 먹더라도 진득한 맛을 원하는지 가벼운 맛을 원하는지 주관적인 맛의 차이가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20대 고객들이 주관적인 맛을 찾아 디저트 숍을 방문하지만 디저트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고령층에서도 자연스럽게 디저트 소비가 이뤄지고 있어요. 지금의 디저트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20대가 소비를 주도하는 40년 후 즈음엔 한국도 디저트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이 무엇인지 질문 드릴게요.

기회가 닿는다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디저트 세미나에서 시연할 생각이에요. 플레이팅 디저트를 많이 알리면서 저의 역량을 넓혀나가고 싶거든요. 가깝게는 분자요리의 재료를 만드는 스페인의 ‘소사’라는 회사와 중국에서의 디저트 시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시연하게 되는 거라 기대도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 싱가포르에 디저트 바를 하나 오픈하고 싶어요.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허브로서 전 세계의 호텔과 레스토랑이 모이는 가슴 뛰는 곳이에요. 새로운 음식에 대해 개방되어 있는 이곳에서 제 이름을 건 디저트 바를 여는 게 저의 큰 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