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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앤레스토랑 - 해외서 주목받는 한식, 현장 경험 살린 한식 셰프 육성해야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해도 해외에 나갈 일이 있거나 한국을 방문한 셰프들을 인터뷰 할 때마다 한식에 얼마나 많은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됐는지, 경쟁력을 갖췄었는지, 이야기가 많아졌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에서는 한식을 알고 찾아온 외국인부터 젓가락 사용에 능숙하고 심지어 고추장을 찾는 현지 손님까지 등장한다. 특히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국에서 익숙한 브랜드의 간판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올 만큼 한식당의 수도 증가해 세계 속의 한식은 분명 이전과 달라졌다. 해외의 호텔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식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해외 호텔에서 한식 섹션을 만들고 한식을 배우기 위해 한국의 셰프를 초청한 프로모션과 쿠킹 클래스를 진행한다. 이처럼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식이지만 해외에서 한식 셰프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라는데, 그 어느 때보다도 한식의 선봉장이 필요한 때다.

 

국내 조리인력의 글로벌화, 변화의 서막

 

2000년대 초반부터 청년 해외 인턴십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특히 2000년대 전후로 조리과가 급증하면서 취업을 원하는 국내 호텔의 채용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져 심각한 불균형과 부작용을 낳았다. 이러한 취업난을 극복하고 스펙을 쌓기 위한 명분으로 해외 취업과 조리유학이 인기를 얻었고 청년들이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중동 등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2000년대 중 후반 해외에서 다양한 근무 경험과 지식을 축적한 젊은 셰프들이 귀국해 국내 외식 시장을 하나 둘 채워 나가하면서 프랜차이즈 일색이던 외식업 구도가 달라졌으며 미쉐린이 입성할 만큼 서울은 미식도시로 급성장하게 됐다. 당시 해외에서 활약하던 한국의 청년 셰프들은 그들이 익힌 프렌치나 이탈리안, 미국 요리를 경쟁력 삼아 귀국했는데 역으로 한식을 전하기 위해 나간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2~3년 전부터 한식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한식이 태동했으며 그 물결은 로드 숍과 호텔 식음업장의 구도를 바꿔놓았다. 미쉐린이 들어와 한식당에 별점을 쏟아냈고 해외의 다양한 요리를 접한 셰프들은 전공 분야를 떠나 자신의 색깔로 한식을 새롭게 단장해 모던 한식, 컨템포러리 한식, 사찰 음식, 전통 한식 등 다양한 빛을 담아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 같은 다변화 속에 국내 식문화의 수준은 높아졌으며 고객들은 개성을 갖춘 셰프의 맛집에 발길을 돌리면서 거대 프랜차이즈를 거느린 기업들은 안방을 내주고 해외로 눈길을 돌렸다. 그 동안 해외에서는 한식당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한식당을 찾아오는 외국인 고객의 수요도 많아졌다. 한식진흥원이 발표한 2017 글로벌 한식당 현황 조사를 보면, 전 세계에서 운영 중인 한식당은 2009년 86개국 9253곳에서 지난해 90개국 3만3499곳으로 262%라는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국가별로는 중국(1만5985개), 일본(9238개), 미국(3293개), 대만(858개), 베트남(528개), 캐나다(511개), 말레이시아(334개), 인도네시아(289개), 호주(252개), 태국(250개) 순으로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한식당이 포진됐다. 특히 8년간 한식당의 증가율은 대만(38배), 인도네시아(31배), 캐나다(12배), 중국(7배), 말레이시아(5배)에서 두드러졌다.

 

해외서 새롭게 각광받는 한식


영국과 미국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아이언 셰프 출신으로 넥스트 아이언 셰프의 심사위원으로 선정돼 주목을 받은 주디 주 셰프는 영국의 한식당 진주의 오너 셰프다. 주디 주 셰프는 방송에서 뿐만 아니라 진주에서 김치 블러드 메리, 소주 칵테일, 막걸리 파나코타, 고춧가루 브라우니 등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한식을 소개해 이슈가 됐다. 진주를 오픈할 당시만 해도 영국인들에게 한식은 생소한 음식이었고, 음식 평론가조차도 한식을 태국 음식과 비교할 정도로 한식에 대한 지식과 인지도가 매우 낮았다. 하지만 현재 주디 셰프가 체감하는 한식은 생각보다 훨씬 진하다. 한순간 반짝이는 인기가 아닌, 새로운 미식 트렌드로 자리 잡아 가고 있으며 영국의 셰프들 뿐 아니라 스웨덴, 불가리아 등 인근 유럽국가의 셰프들 까지도 소문을 듣고 찾아 올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진주는 영국에 이어 홍콩에 진출해 바 콘셉트를 접목한 한식을 선보여 흥행을 몰고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주디 주 셰프는 “한국이 아닌 곳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데 식재료 수급과 인력 문제가 가장 어렵다.”고 꼽았다. 특히 인력 수급 면에서는 “한식에 대한 경력을 가진 사람을 찾기 힘들 뿐 아니라 셰프로서 열정을 가진 사람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이직이 잦다.”고 전했다. 


파크 하얏트 서울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팀 김도연 주임은 “지난해부터 해외 호텔에서 한식을 소개할 수 있는 셰프의 프로모션 요청이 증가했다. 얼마 전 총주방장이 선재스님으로부터 사찰음식을 배운 적이 있는데, 해외 호텔의 총주방장들로부터 사찰음식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고 할 정도로 한식이 이슈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크 하얏트 서울에서는 해외의 한식 프로모션 셰프로 더 라운지의 김희중 셰프가 대만에 초청됐다. 김 셰프는 8월에 대만을 찾아 김치와 발효음식을 소개하고 고객과 셰프들에게 쿠킹클래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식에 대한 니즈 증가, 한식을 관리할 수 있는 셰프의 부재


이처럼 해외의 호텔에서도 한식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한식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다. 가령 외국에서 한국의 조리법에 따라 김치를 담근다고 하자. 기후의 영향, 소금이나 기타 식재료의 종류에 따라 절임 시간과 투입되는 소금의 양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조리법만으로 제대로 된 김치가 완성될 수 있겠는가. 음식과 식재료,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결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돼 있다. 해외에서 어렵사리 한식 전문가를 찾더라도 의사소통 능력 떨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전 세계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아시아 요리의 비중은 중국, 일본, 태국, 인도요리 정도가 메인을 차지할 뿐 한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최근 한식이 건강식으로 각광받으며 한식에 대한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중동 최대의 리조트로 두바이에 위치한 아틀란티스 더 팜 호텔의 경우 뷔페에 한국음식 코너를 갖추고 불고기, 코리안 바비큐, 비빔밥, 김치찌개 등의 한국요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곳 뷔페 레스토랑에서 한식을 담당하며 스페셜리티 수셰프로 일하고 있는 김성훈 셰프는 “한식은 해외에서 굉장한 메리트가 된다.”면서도 “최근 호텔마다 한식에 대한 관심은 많아지고 있지만 호텔에서는 한식을 할 줄 아는 것을 넘어 메뉴를 개발하고 이를 호텔의 시스템에 맞게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실력은 있어도 언어가 통하지 않아 성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아쉬워했다.

 

 

▲ 주디 주 셰프의 한식레스토랑 진주에서 선보이는 메뉴_  Korean Hanwoo Beef / ▲ 주디 주 셰프의 한식레스토랑 진주에서 선보이는 메뉴_ Korean Quinoa_ Broccoli

 

해외 호텔 한식당의 외주화


태국 방콕 최대 규모의 5성 호텔인 방콕 메리어트 마르퀴스 퀸스파크에서는 37층의 자리에 오픈 초기부터 운영 노하우와 관리가 용이한 임대매장으로 컨템포러리 아시안 레스토랑 아키라백을 입점 시켰다. 이 호텔의 총주방장인 마이클 호건 셰프는 “아키라백의 요리는 한국적 요소가 가미된 일식, 나아가 아시안 요리로써 심플한 프리젠테이션과 정제된 멋이 인상적이다. 동서양의 음식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해 고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것이다.”라면서 기대감을 비쳤다. 아키라백 셰프는 “아키라백의 레스토랑은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동일한 콘셉트와 맛을 유지하며 이를 위해 아키라백의 메인 셰프들이 파견돼 직접 레스토랑을 관리한다. 아키라백은 한식보다 아시아 요리라는 큰 카테고리로 봐야 하지만 점차 아키라백의 한식을 선보이는 장으로 보폭을 넓혀갈 것이다.”라고 포부를 전했다. 앞선 사례처럼 해외 호텔에서 한식을 외주화 할 수도 있다. 문제는 레스토랑을 전문적으로 관리할 인력도 부족하지만 직원 트레이닝, 품질 관리, 메뉴 개발 등을 담당하는 콘트롤 타워의 부재다. 

 

▲ 가온_ 복달임코스 민어사슬적

 

정부가 운영하는 한식 교육, 취업 프로그램

정부는 해외로 빠져 나가는 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가중되는 취업난을 해소하고자 교육, 알선, 취업 등을 지원하는 콘트롤 타워의 역할을 대신했다. 특히 한식세계화의 일환으로 정부는 글로벌 한식 셰프를 양성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는데, 그 중 하나가 국내 최초의 한식학교인 국제한식조리학교이다. 재단법인 국제한식문화재단(이사장 이호인 전주대 총장) 산하에 있는 국제한식조리학교는 국제적 감각의 한식 스타 셰프를 양성하고자 정부 및 지자체가 지난 2012년에 설립했다. 이 학교는 정부로부터 외식산업 전문인력 양성기관, 외국인 한식조리 연수지원기관, 식생활 교육기관으로 지정됐으며 해외 한식당 종사자 교육, 국내외 한식강사 교육 등 한식 관련 국책사업 교육기관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식재단에서 지원하는 해외 한식인턴 사업은 해외 한식당, 호텔 등에 인턴지원을 통해 구직자에게 해외체류 경험을 통한 역량 강화 및 취업 기회를 부여하는 사업이다. 항공권과 함께 워킹홀리데이 비자 발급 유무에 따라 인턴 장려금을 최대 200만 원부터 300만 원까지 지급한다.


산업인력공단에서는 2013년부터 K-Move 해외취업 사업을 시작했다. K-Move 사업은 한식분야에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해외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에게 맞춤형 훈련과 멘토링, 일자리 알선, 장려금으로 해외 취업을 지원하며 기업에서 요구하는 어학, 직무능력, 문화적응 등 맞춤형 연수과정 수료 후 취업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진다.

 

해외서 경쟁력 있는 한식 셰프 인프라 구축돼야


하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이 대부분 만 34세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 사업인데다가 호텔에서 원하는 관리자로 발탁되기엔 현장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해외에서는 학력보다 출신 레스토랑이나 유명한 스승에게서 배운 경력을 우선시하므로 학벌보다 경력을 쌓는 것이 유리하다. 따라서 국내 현장 경험을 쌓아 해외로 진출하는 한식 셰프가 많아져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글로벌 한식 셰프를 양성하기 위해서 무조건 해외로 보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정작 국내 한식당의 실상이 녹록치 않아 국내에서 한식을 배우려는 인재가 많아져야 함에도 한식을 기피하는 현상은 여전하다.


파크 하얏트 서울의 더 라운지 김희중 수셰프는 요리를 배우기 위해 호주의 하얏트 호텔에서 근무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지만 한국인으로서 한식의 본질을 찾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인으로서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요리는 한식이다. 해외에 한식을 우리 손으로 전파하려면 한국에서 한식을 배우려는 청년들이 많아져야 한다. 하지만  한식은 손이 많이 가고 서양 요리처럼 화려한 기교를 요하지 않아 기피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보텔 앰배서더 독산의 한식당 안뜨레를 총괄하는 김순희 셰프도 “한식이 이전과 비교해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다른 주방에 비해 일이 힘들고 처우는 열악해 이탈이 심하다. 호텔에 한식당이 사라진 과오를 재연하지 않고 한식이 롱런하려면 팀원들의 사명감과 단합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영국 한식당 진주의 오너셰프 주디 주 셰프는 한식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전 세계에서 중식, 일식, 태국음식은 대표적인 아시아 요리로 인정받지만 한식은 이처럼 쇼케이스 되지 못해 안타깝다. 한국인 스스로가 한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크고 작은 국가행사에서 한식을 담당하며 세계 속의 한식을 경험한 박대순 셰프는 “한식을 홍보하고 수출이 많아지면 뭣하나? 이를 활용하고 전파할 한식 셰프가 없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요리하는 사람의 손에서 한식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식 세계화는 뿌리가 중요하다. 이를 전하려면 한식 요리사가 많아져야 하는데 한국에서 한국요리의 기초를 바로 배울 수 있는 한식당이 많지 않다. 더욱이 한 때 호텔에 한식당이 대거 자취를 감추면서 호텔 한식의 20년 역사도 함께 묻혔다. 김 셰프는 특히 “국내 한식 교육은 대부분 조리법을 숙지하는 수준의 학원식 교육으로 1회성에 그칠 뿐이다. 중장기 플랜을 갖고 한식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한식당이 많아져야 한다. 따라서 적어도 서울의 호텔에 10개 이상의 한식당이 문을 열고, 체계화된 시스템을 토대로 현장 중심의 한식조리사가 육성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음식의 기초가 다져져 있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요리사가 생겨난 들 세계화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현장 중심의 한식 셰프 양성을 강조했다. 

 

▲ 아틀란티스 더 팜 두바이 김성훈 셰프가 뷔페레스토랑에서 선보인 한식

 

취업난이 극에 달하고 있다. 2018년 5월 고용동향을 살펴보면 숙박음식점업의 경우 취업자 수가 전년동월대비 4만 3000명 감소한(-1.9%) 225만 9000명이며 주당 평균 취업시간은 0.7시간 준 45.3시간으로 집계됐다. 내년 최저임금도 올해(7430원)보다 10.9% 인상된 8350원으로 확정되며 2년 연속 두 자릿수를 건너뛰었지만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 어렵게 됐으며 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고용시장이 위축될 전망이다. 마치 좁디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해외 인턴십이 봇물을 이루던 20년 전 상황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해외로 향하는 문이 조리사들에게 맹목적인 도피처가 되지 않길, 그들의 도구로써 한식이 사용될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