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땅에 한식을 심다
영국의 아이언 셰프, 쥬디 주
쿠킹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언 셰프의 히로인, 쥬디 주 셰프가 한국을 찾았다.
<The Independent UK>가 선정한 런던 TOP 10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린 한식당 ‘진주Jinjuu’의 오너 셰프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시청 하는 TV 쿠킹쇼에 출연해 한국의 문화와 음식을 알리고 있는 쥬디 주 셰프의 한식 사랑을 지면에 담았다.
그가 진행하는 TV 쇼를 보고 한식을 한번도 접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한식에 관심을 갖고 한국에 대해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아닌 해외 무대에 한식을 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을터.
한식에 대한 애정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이 아닌 곳을 주 무대로 한식의 가능성을 전하고 있는 쥬디 주 셰프를 만났다.
취재 노혜영 기자ㅣ 사진 조무경 팀장ㅣ 취재 협조 광주요그룹 ㅣ촬영 장소 비채나
Korean Baby Back Ribs
HR 이번 방한 목적과 근황을 전해 달라.
현재 <Korean Food Made Simple, Season 3>을 준비하고 있다. 2014년 4월, 시즌 1을 시작으로 전 세계 15개국에서 방영되고 있는 한식 쿠킹 쇼다. 한국을 여행하거나 외국 에 있는 코리아타운을 둘러보며 접하는 식재료와 그로부터 얻은 영감을 가지고 스튜디오로 가서 레시피를 만들고 쿠킹 쇼를 선보인다. 외국인들에게 한식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집에서도 만들 수 있는 쉽고 간단한 요리를 소개하고 있다. 한국에는 본 프로그램과 관련해 비즈니스 트립과 홍보, 휴식도 할겸 방문했다.
HR 한식을 홍보하는데 있어서 TV 쇼의 역할이 어떻게 작 용했는지 궁금하다.
외국에서 한식을 하는 나에게 있어서 한식세계화는 중요한 문제이며 한식을 알리는것은 사명과도 같다. 내 팬들 중에 는 TV 쇼를 보고 한국을 알게돼 방문하거나 한식을 처음 경험하고, 직접 만들어본 뒤 그 경험을 공유하기도 한다.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온 한 팬 분은 쿠킹 쇼에서 본 요리를 직접 경험해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러 간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이처럼 TV 쇼를 접하고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메시지들을 접할 때마다 한식의 외교적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자부심으로 희열을 느낀다.
HR 쥬디 주 셰프를 스타 덤에 올린 프로그램이 아이언 셰프인가?
그렇다. 하지만 사실상 영국에서 아이언 셰프 시즌 1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아이언 셰프 Top4에 오른 이후, 미국의 아이언 셰프에 출연하면서 부터다. 그 당시 나는 영국에서 쿠킹 쇼에 출연 중이었는데, 영국 아이언 셰프 시즌 1에 출연하게 된 것은 큰 기회 였다. 미국의 아이언 셰프 제작진이 나를 눈여겨보고 있었고 오디션을 거쳐 미국의 아이언 셰프에 출연하게 됐다. 젓가락, 식기 등 사소한 소도구까지도 한국적인 것을 사용해 음식뿐 아니라 한국 문화를 소개하려고 노력해 많은 호평을 받았다. 영국의 아이언 셰프로 시작해 미국으로 건너가 <The Next Iron Chef—Superstar Chefs>의 심사위원으로 활약하기까지 셰프로서 나를 성장하게 한 프로그램이 바로 아이언 셰프다. 특히 역대 아이언 셰프 중 여성 셰프로는 두 번째라는 타이틀을 얻게 돼 더욱 의미가 깊다.
Korean Hanwoo Beef
HR 영국에 한식당 ‘진주’를 오픈하며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은데?
진주를 오픈할 당시 영국인들에게 한식의 인지도는 매우 낮았다. 한식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음식 평론가들이 한식을 태국 음식에 빗대어 라임을 운운하는 둥 제멋대로 평가했다. 처음에는 한식의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평론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평론가들이 아닌 고객들로 좌석이 채워지면서 점차 한식이 인지도를 얻었고 한식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경험자들의 리뷰로 입소문이 났다. 진주를 오픈하고 2년 안에 런던과 홍콩에 한식당 진주가 두 곳 더 생겼을 정도로 이제는 한식이 트렌드의 중심에 서게됐다.
HR 셰프의 길로 들어서기까지 굳이 한식이 아니어도 기회가 많았을 것 같다. 더욱이 주 무대가 한국이 아니라면 제약도 많았을텐데 왜 한식을 선택 했나?
나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부모님이 물려주신 모국으로 한국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한다. 따라서 한국의 문화, 음식을 자랑스러워하며 늘 가깝게 두고 자랐고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은 줄곧 나를 지탱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한식을 소개하고 싶어 레스토랑을 찾아도 일식, 중식, 태국식 등 아시아 레스토랑 일색에서 괜찮은 한식당 하나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쩌다 발견한 한식당은 밝은 조명에 시끄러운 분위기, 식재료의 다양성이 부족했으며 MSG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저가의 이미지로 현지인들과 융화되지 못한 채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자존심도 상했지만, 한국의 좋은 문화를 담은 제대로 된 한식당을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 짜릿하고 도전하게 만드는 일 아닌가? 힘은 들지만 보람이 더 크다.
HR ‘진주’는 <The Independent UK>의 ‘런던에서 꼭 가봐야 할 레스토랑 TOP 10’에 이름을 올렸을 뿐 아니라 평론가들로부터 한식을 패셔너블하게 만들었다고 호평을 받았다. 진주에서 선보이는 한식은 어떤지 궁금하다.
진주에서는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즐긴다. 김밥, 비빔밥, 반찬 등 전형적인 한식 메뉴도 있지만 호떡, 고춧가루 브라우니, 스팸 칵테일, 화요 칵테일, 소주 칵테일, 김치 블러드 메리, 막걸리 파나코타 등 생각지 못한 메뉴들도 선보이고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편하게 자주 올 수 있는 캐주얼 파인 다이닝이다. 런던에는 Soho와 Mayfair에 2곳을 운영하고 있고 홍콩 Lan Kwai Fong에 1곳의 진주가 더 있다. 런던 매장은 스웨덴 불가리아 등 인근 유럽 국가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할 정도로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다. 홍콩은 매듭이나 용 문양 등으로 인테리어에 현지색을 더했 으며 파티문화가 발달한 현지 문화를 반영해 파티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도록 디제잉과 다양한 칵테일을 한식과 함께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인 고객도 늘어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Korean Quinoa_ Broccoli
HR 요리에 대한 영감을 어디에서 얻는가?
평소 여행을 즐기는데, 많이 경험하고 음식을 맛보면서 요리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이렇게 다양한 요리와 식재료를 접하다 보면 이 재료들을 외국으로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에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요리에 대한 새로운 발상으로 귀결되곤 한다. 가령 불고기 스타일의 고기에 치즈를 곁들인 치즈 스테이크 필링(미국에서는 샌드 위치 토핑으로 많이 쓰인다.)을 만두소로 만들어 만두를 빚는 것이다. 이 메뉴는 한식과 미국식의 오묘한 조화로 인기 메뉴로 등극했다.
HR 한국은 4계절 중 가을이라서 여느때보다 식탁이 풍성하다. 한국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식재료가 있는가?
한국에 올 때마다 새로운 것을 맛보는 재미와 놀라움이 있다. 이번에는 송이, 감, 전어가 인상 깊었다. 특히 풍미가 깊은 송이를 이용해 만두 요리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송이 만두를 송로버섯 위에 올리면 향기로운 요리가 완성될 것 같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산과 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다양한 식재료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다양성 덕분에 한국인들은 식재료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한국에서 다양한 음식이 발달할 수 있는 요인이 된 것 같다.
HR 런던은 최정상급의 셰프들의 레스토랑이 즐비한, 세계에서 손꼽 히는 미식도시이다. 눈에 띄는 트렌드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전반적으로 한식이 각광받고 있다. 셰프들 뿐 아니라 일반 고객들도 한식을 궁금해하고 먹어보고 싶어 하지만 제대로 된 한식당이 많지 않아 아쉽다.
HR 한국에서 보는 한식과 외국에서 보는 한식에는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쥬디 주 셰프가 바라보는 한식의 성장 가능성은 어떤가?
여전히 한식의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큰 가운데, 한식이 세계화되려면 한식이 본토를 떠나 각국에서 많은 변화를 겪어야 한다. 미국에서 맛보는 중식이나 일식이 오히려 자국으로 역수출 될 수 있었던 데 는 변화의 흐름을 타고 대중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롤이 미국에서 크게 유행했지만 정작 일본에는 없었던 음식인 것처럼 말이다. 한식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한식을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외국인들이 100% 한국 전통음식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음식은 변하기 마련이며 외국인들이 한국 식재료를 맛보는 것 자체가 이미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번은 내가 TV 쿠킹 쇼에 출연해 전을 만든 적이 있다. 전은 으레 간장에 찍어먹기 마련인데, 한 시청자는 새우와 게살로 해물전을 만들어 간장 대신 케첩에 찍어 먹어도 맛있더라고 전했다. 김치도 많이 먹어봐야 김치라는 단어를 알게 되고 한식을, 더 나아가 한국을 인식하게 되지 않겠는가?
HR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지금의 나는 계획에 의해 이뤄진게 아니다. 요리를 배워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던 내가 아이언 셰프가 됐고, 런던에서 이렇게 오래 머물게 될 줄도 몰랐다.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 미래의 열쇠라고 생각한다.
Epilogue
내 인생의 롤 모델을 떠올렸던 기억쯤은 누구나 간직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밤잠을 설쳐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그 대상을 그려보지 않았 을까? 외국에서 한국인 셰프는 만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롤 모델로 삼을 만큼 내로라 할 한식 셰프는 찾기 힘들다. 그 대상이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어느 날, 한국계 미국인인 딸이 엄마에게 할로윈 의상으로 쥬디 주 셰프의 셰프 복장을 하고 싶다고 했다. TV 속에서 만나왔던 그녀를 닮고 싶기 때문이라고. 인생에서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축복이다. 한 사람의 팬으로서, 쥬디 주 셰프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응원과 기대를 거는 이유다.
Chef. 쥬디 주
쥬디 주 셰프는 4년간 미국 쿠킹 채널과 푸드 네트워크 의 TV 시리즈 <Korean Food Made Simple>의 호스트로 활약하며 한국과 서울의 음식 문화를 알리는데 힘썼 다. <Korean Food Made Simple>은 미국, 호주, 유럽, 중 국, 동아시아에 방영된 유일한 한식 쿠킹쇼로 시즌 3 방영을 앞두고 있으며 2016년 5월에는 <Korean Food Made Simple>을 요리책으로도 출간해 영국과 미국에서 큰 호 응을 받았다.
또한 그녀는 2015년 1월, 런던 소호에 한식당 ‘진주’를 오픈하고 2015년 12월에는 홍콩에, 2016년 10월 런던 메이페어에 문을 열어 총 3곳에서 레스토랑을 운 영하고 있다. ‘진주’는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한식 레스토랑으로 떠오르며 <The Independent UK>의 ‘런던에서 꼭 방문해야 할 레스토랑 10’에 선정됐고, <Bloomberg News>의 음식 비평가 리차드 바인스Richard Vines로부터 “한식을 패셔너블하게 만들었다.”며 극찬을 받은 바 있다. <Iron Chef UK>에서 Top 4에 오른 쥬디 주 셰프는 이후 <Iron Chef America>, <Kitchen Inferno>, <The Best Thing I Ever Ate>, <The Best Thing I Ever Made>, <Guy Fieri’s Grocery Games> 등의 요리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며 방송인으로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개발 중인 한식 양념과 소스는 내년에 정식 론칭할 계획이다.
광주요그룹(광주요, 화요, 가온 소사이어티)과 쥬디 주 셰프는 영국에서 프리미엄 증류주 화요를 활용한 칵테일 행사를 개최하는 등 함께 인연을 이어가며 함께 다양한 한식 문화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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