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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el & Resort

호텔앤레스토랑 - 아름다운 간판을 드립니다

 

취재 차 방문한 도쿄의 거리는 분주하지만 차분했다. 거리가 전하는 무언의 정돈됨이랄까. 연일 사람들로 북적이는 지하철역 앞, 오밀조밀 모여 있는 상점거리에서도 혼란스러운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 가지 눈에 들어오는 점은 바로 ‘간판’이다. 휘황찬란한 입간판 대신 일본어로 표기된 상호명이 상점의 머리 위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간혹 외국의 브랜드가 영어로 표기돼 있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과하지 않게’ 자신을 드러낼 뿐이다.

 

간판은 개체의 DNA를 명확하게 전달할 뿐 아니라 홍보 효과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유독 간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흔히 사람을 평가할 때 ‘간판이 좋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학벌이나 경력의 의미를 담아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로써 간판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곤 한다. 사람에게나 사물에게나 간판은 자신을 알리는 데 요긴하게 사용되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거리에 시선을 던져보면, 다양한 입간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누가 더 눈에 잘 띄는지 경쟁하는 것처럼 형형색색의 네온 싸인, 볼륨을 높인 음악과 조형물까지 가세해 거리를 점령하고 있다. 이곳이 한국인지 중국인지 미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외래어가 넘쳐나고, 인파에 간판이 주는 혼잡함까지 더해져 더욱 산만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정부는 한국옥외광고센터를 통해 2012년부터 간판개선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기금조성용 옥외광고사업 수익금으로 지금까지 전국 146개소에 280억 원을 지원했으며 오는 2020년 2월까지 총 115억 5200만 원을 들여 옥외광고물을 교체하고 환경을 개선할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도 사후관리의 허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외식업만 보더라도 한 자리에서 5년을 넘기지 못하고 수차례 업종이 바뀌는데, 무상으로 간판을 교체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니 사업의 실효성을 두고 왈가불가 하는 것이다. 

 

간판에는 상점의 정체성과 역사 뿐 아니라 지역과 거리의 문화도 융화돼 있어야 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것보다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로 의식을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아름다운 간판으로 바꿔 주는 것보다, 아름다운 거리 문화를 형성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인사동 거리가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데 인사동의 분위기를 담은 간판도 빼 놓을 수 없다. 나만 돋보이는 간판이 아닌, 거리의 감성에 대상의 정체성이 녹아 있는 간판이 더 기억에 오래남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