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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el & Resort

호텔앤레스토랑 - 오월에 살어리랏다, 한국의 미와 모던함을 겸비한 공간

 

디딤돌을 딛고 올라 호텔의 시그니처 룸, ‘가든 하우스’에 들어섰다. 모던한 한옥 디자인, 높은 천장과 맞닿은 미닫이 파티션이 시선을 압도하려던 찰나, 한쪽 벽면에 블라인드를 올리자 거짓말처럼 눈앞에 담양이 펼쳐졌다. 창밖에 한 폭의 그림처럼 정렬한 대나무 숲, 그 앞에 정갈하게 놓인 돌과 장독대까지. 후텁지근한 초복의 한가운데에서 한시가 절로 나오는 풍경이 돋보이는 곳, ‘오월호텔’이다.

 

예술작품이 된 호텔
호텔이 작품이라고 불리는 곳은 우리나라, 더군다나 서울에 몇 곳이나 될까. 콘셉트로 살아남아야 하는 부티크 호텔은 태생적 특성상 모든 부분에 심혈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월호텔은 부티크 호텔이라는 개념마저 뛰어넘고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오픈 두 달 여가 됐을 무렵, 동양의 호텔을 찾고 있던 영국의 기자가 오월호텔에 반해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건축/디자인 매거진 <월페이퍼>였다.  

 
오월호텔의 박현숙 대표는 공신력 있는 <월페이퍼>에 실리고, 오랜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다. 긴 외국생활을 경험한 그는 세계적인 트렌드를 읽는 안목과 건축에 대한 일가견으로 역삼역 부근에 프렌치 살롱 스타일의 ‘마리’, 뉴욕 빈티지 스타일의 ‘사월’ 호텔을 열어 센세이션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이후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김백선 디자이너와 합심해 오월호텔의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됐다.


이렇듯 호텔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 올린 기저에는. 동양화가이자 공간 디자이너, 故 김백선이 있었다. ‘한국적 미감이 발현된 현대적 공간’을 제작한다는 평가를 받아온 아티스트로, 한남동 UN빌리지 빌라, 덴마크 주재 한국 대사관, 롯데 시그니엘 레지던스의 인테리어를 맡은 바 있다.


이탈리아의 명품 수전 브랜드 판티니는 그런 김백선의 예술성에 반해 세계 최초로 호텔에 납품했는데, 그곳이 오월이다. 객실의 모든 욕실에 장착돼 있는 수전은 판티니와 김백선이 협업한 <어바웃 워터> 컬렉션 제품이며, 오월의 정체성이자 김백선 예술의 정수가 담긴 작품이다. 벼루와 먹을 모티프로 제작한 정갈한 구조의 수전인데, 작가는 미처 완성작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오월호텔은 예술가의 마지막 숨결이 배인 유작으로 남았다.

 

 

정갈한 수평과 수직의 세계
로비에 들어서면 조명이 낮은 어두운 분위기 속에 거대한 격자 구조물이 리셉션 앞을 가로막고 있다. 그 앞의 워터오브제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이 공간이 수평과 수직의 공간이 될 것을 예고한다.


10층으로 이루어진 오월 호텔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프랑스식 건물 구조를 띈다. 끝자리 1, 3호실을 배정받는 투숙객은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객실과 만나지만, 2, 4번을 배정받으면 계단으로 반 층을 내려가야하는 식이다. 구조는 이국적이지만, 내부는 모던한 한옥 스타일의 객실이 자리 잡고 있어 현대판 헬레니즘양식을 구현한 듯 보인다. 동양과 서양, 가장 현대적인 것과 가장 전통적인 것이 어우러진 다양한 요소를 간결한 수평과 수직의 선들이 끌어안고 있다.

 

 

 

한국적 미와 모던함을 겸비한 공간
호텔은 총 32개의 감각적인 객실로 이루어져 있다. 타입은 크게 여섯 종류로 분류되는데, 객실별로 메인 컬러와 콘셉트가 다르다. 이 때문에, 오월 호텔은 재방문율이 특히 높다고 한다.

디폴트 형이라고 할 수 있는 ‘오리엔탈 하우스’는 이름처럼 동양적인 좌식 탁자와 방석, 베이스가 낮은 침대로 구성됐다. 이와 대치되는 ‘테라스 하우스’는 도쿄의 특급 료칸을 떠오르게하는 ‘ㄷ’자 형태의 특이한 구조. 들어가자마자 좌측이 룸, 우측이 욕실이며 가운데에 테라스가 자리 잡았다.


오월호텔에는 프라이빗 풀이 없다. 근본적으로 위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느낀 제작자들의 선택이며, 호텔의 방향에 부합한다고 여겼다. 대신 ‘아쿠아 하우스’에 가면 개인 야외 수영장을 배정받을 수 있다. 프라이빗 풀이지만 규모가 작지 않고, 석조로 지어진 테라스에는 세심하게 선 베드도 준비돼있다.


오월호텔의 시그니쳐 룸인 가든하우스는 긴 직사각형 구조의 방으로, 높은 천장과 맞닿은 미닫이문이 파티션으로 시선을 압도한다. 그리고 한쪽 벽면이 통유리로 제작되어 블라인드를 열면 거짓말처럼 눈앞에 담양이 펼쳐진다. 테라스 바깥 쪽 가든에 가로로 정렬된 대나무  숲 앞에 오랜시간 한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돌이 놓여있는데, 방을 옮겨 욕조까지 가도 풍경이 그대로 보인다. 담양의 분위기를 구현하기 위해 컨시어지들은 매일 같이 대나무의 예민한 컨디션을 관리하고 일부러 돌 위에 물을 뿌려 돌에 이끼가 생기도록 만든다고도 전했다. 

 

  

 

특별한 소프트웨어
호텔의 외관, 객실에 해당하는 시설이 하드웨어라면, 내부의 컨시어지나 서비스, 마케팅 같은 요소가 소프트웨어가 될 것이다. 오월호텔은 품격 있는 하드웨어에 걸 맞는 섬세한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있다.


컨시어지 8명에, 메이드 10명, 채 20명이 안 되는 오월호텔의 직원들은 서로를 직함이 아닌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 적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객실 하나 당 메이드 3명으로 사실 인력이 많은 편. 그래서 내부는 항상 청결한 상태로 유지된다, 또, 오월호텔의 직원들은 전부 30대로 구성됐다. 20대의 신선한 매력은 좋지만, 서비스에 대한 불안정함을 없애기 위한 총지배인의 선택. 각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30대 이상 직원들이 고객들 한명 한명에게 섬세한 맨투맨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케팅 또한 창의적인데, 유튜브 채널에 게재된 호텔의 바이럴영상은 전에 없던 시도로 화제를 모았다. 호텔 영상이라고 하면 객실이나 부대시설에 대한 정보제공을 하는 것이 보통인데, 감독, 배우를 고용해 단편영화처럼 제작한 것. 러브스토리를 담은 호텔의 바이럴영상은 유튜브 채널 ‘오월호텔’에서 만나볼 수 있다.

 

▲ (왼쪽부터) 한진규 부지배인, 김미현 주임, 이상우 총지배인

마지막으로, 오월호텔의 예술적 소우주, 갤러리 ‘메이 스페이스’는 방문객들에게 호텔 전체가  예술적 공간이라는 것을 함의한다. 건물 1층에 자리 잡고 있어 오월에 오는 모든 사람들은 이곳을 지나가야 하는데, 매달 전문 큐레이터가 엄선한 작가의 전시회를 연다. 한편, 11월에 이곳에서 고(故)김백선 디자이너의 기일에 맞추어 사진전이 열린다.

 

“오랜 시간 변함없이 한 자리에 머무르는 호텔이 되기를”
오월호텔 이상우 총지배인

 

 

지금까지의 이력이 어떻게 되나?
원래는 군 간부 출신의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전방 JSA에도 근무한 적이 있다. 그렇게 군 생활을 하다가 호텔 관련 업종에 근무하고 싶어 신안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과에 진학했다. 그 이후 호텔에 취업해 명동 퍼시픽, 서초동 소설호텔의 오픈 멤버이자 부지배인, 여기어때 프렌차이즈부 총괄지배인을 거쳐 이번에 오월호텔의 총지배인으로 부임하게 됐다.

 

프렌치 살롱 스타일의 ‘마리 호텔’, 뉴욕 빈티지의 ‘사월 호텔’에 이후, 오월호텔에 이르러  한국적 미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대표께서 외국에 자주 나가는데, 파리/밀라노 같은 도시를 가도 결국은 다시 오리엔탈리즘에 매료됐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은 지나치게 간결하고, 중국은 너무 화려했다. 그 중도에 있는 한국 고유의 멋이 가장 아름답다는 걸 깨닫고 그 중 담양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걸 디자인적으로 풀어낸 분이 평소에 친분이 두터웠던 고(故) 김백선 디자이너다.

 

호텔명이 ‘오월’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자매호텔인 ‘사월호텔’과 연속성을 부여한 것이다. 사월은 역삼동에서 부티크호텔로 센세이션을 일으켜 우리에게 의미가 깊어서다. 게다가 우리는 아미 월별로 ‘시월’까지 상표권을 구매해둔 상태다. 앞으로 호텔 브랜드를 론칭하고 싶다는 계획도 있는데, 시즌 별 시리즈 호텔이라는 개념으로 여겨 달라.

 

주변 호텔과 비교해 어떤 경쟁력을 가지고 있나?
주변에 중소호텔들은 문을 닫고 특급 호텔 하나가 남았다. 화려하고 예쁘지만, 기성복을 입은 듯한 느낌이 들 거다. 누구나 돈만 있으면 갈 수 있다. 오월은 ‘나만 알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고, 비슷한 규모의 호텔보다는 가격을 높게 책정한 것도 사실이다. 초반에는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히 오픈 3개월 만에 주말 예약 점유율 100%를 달성했다.


나는 마케팅을 ‘기억장치’라고 일컫고 이부분에 힘을 썼다. 우리는 객실도 32개뿐이니,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맨투맨 서비스가 가능하다. 예를 들면, 스타일러를 가져다 놓고 여름에 땀에 젖은 옷이 있으면 세탁서비스도 해드린다. 향도 마찬가지다. 우디 계열의 향은 우리 시그니처 향이다. 어딜 가도 같은 향이 나서, 오월호텔의 향이라고 기억장치를 새겨주는 식이다.

 

현재 오월호텔에 어떤 고객들이 찾아오는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은 사월호텔의 고객 20%, 또 근처 강남 지역의 고객 일부, 그리고 SNS를 통한 고객 정도였다. 그렇지만 오픈 이후에는 타깃 고객층이 다 바뀌어버렸다. 한 예로, 어느 날은 롤스로이스가 하루에 세대씩 들어오는 거다. 알아봤더니, 롤스로이스 클럽이 있는데 해당 커뮤니티 내에서 회자돼 다들 찾아오게 된 것이다. 나만 아는 공간의 고객들, 소위 ‘그들만의 리그’에 속한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우리도 매번 놀라고 있다. 그 외에는 새로운 문화적 공간을 추구하는 고객들이 선호해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타깃 고객층이 내국인으로 설정돼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최근에 숙박업체 3600곳 가량이 폐업했다는 기사를 봤다. 우리나라 호텔이 무너지게 된 것은 FIT에 의존해 외부 리스크에 대비하지 못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대접받아야할 내수 고객을 소홀히 한 탓이다. 우리는 당장 장사가 덜 되고, 장수투숙이 없다고 해도 국내 고객에 신경 쓰기로 했다. 외국인 마케팅도 최소로 중국 웨이보에서만 진행 중이다. 국내 고객은 예약이 용이하도록 모든 채널에서 다 오픈해놓았지만, FIT는 직접 문의하도록 했다. 오히려 희소성이 생겨 역으로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고도 본다.

 

대기업들도 본격적으로 부티크 호텔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오월은 경쟁력이 있을 것인가?
대기업의 문제점은 정해진 매뉴얼과 수직적인 구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매뉴얼에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가 없으면 제공하지 못하는 식이다. 반면, 우리에게는 정해진 틀이 없다. 무엇보다 대표의 마인드가 열려있기 때문이다. 그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이 지배인 마음대로 하세요.”다. 지금도 뉴욕에 미술품 보러 가계신데, 밀라노/런던의 각지의 박람회는 놓치지 않고, 세계적인 트렌드에도 밝다. 그런 대표를 신뢰할 수 있고, 그 역시 직원들이 상상하는 모든 걸 구현하도록 서포트 해준다. 이런 기반 아래 우리 직원들이 제약 없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게 경쟁력이다.


한국 중소호텔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음식업계로 비유하자면 규모가 작지만, 확실한 콘셉트로 성공한 장진우 씨가 모델이 아닐까. 그의 식당에 가면 테이블은 여전히 15개뿐이다. 희소가치가 있는 거다. 중소호텔 역시 명확하게 타깃 고객층을 설정하고 그들이 오고 싶게끔 주도면밀하게 기획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타깃층이 아닌 사람도 오고 싶어 안달이 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중소호텔에게 가장 필요한 전략이다. 아무나 갈 수 없지만, 누구나 오고 싶은 호텔이 돼야한다.

 

앞으로 오월호텔이 어떻게 성장했으면 좋겠는지?
대표께서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그냥 그 자리에 있는 호텔이었으면 좋겠다고. 나 역시, 오월호텔이 한때의 트렌드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행을 좋아해서 예전부터 광주에 자주 가는데, 그때마다 마주치는 미용실이 하나 있다. 단지 미용실일 뿐이지만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마주치니, 이제는 하나의 상징물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오월호텔도 오랜 시간 변함없이 머물러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