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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 & Cafe,Bar

호텔앤레스토랑 - 뜻밖의 여정 ‘레체’

Prologue#

동장군의 기세가 지구촌을 뒤덮어 버렸습니다. 미국 남부 플로리다 주부터 북부 메인 주까지 동부 전역이 폭설과 한파로 얼어붙어 영하 20도, 체감온도는 영하 40도에서 최대 70도까지 이른다고 합니다. 연일 보도되는 사망자가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혹한은 유럽과 한국도 마찬 가지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지난 7일 북아프리카 알제리 서부 사하라 사막에 눈이 내렸다고 하는데요. 지난 40년간 2차례 눈이 내린 것으로 이례적인 일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북부지역에도 큰 눈이 내려 많은 관광객들의 발이 고립됐습니다. 겨울이란 계절적 특성을 감안하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예상 밖의 일들은 놀라움을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집밖을 나서면 고생이다’란 말이 실감나는 시기입니다.

 

Scene 1#

얼마 전에는 이런 뜻밖의 여정 때문에 이탈리아 남부의 고양이가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 남부 레체 시에 사는 얼룩 고양이는 평소에 상자 안에 들어가 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문제가 발생한 날도 이 고양이는 주인이 가져온 상자 안에 들락날락하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상자 안에 있는 걸 눈치 채지 못한 주인이 그대로 상자를 밀봉해 택배로 부치고 말았습니다. 결국 뜻밖의 여정을 떠나게 된 고양이는 이탈리아 남부 도시 레체에서 984km나 떨어진 북부 도시 비첸차까지 가게 됐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인 442km의 두 배가 넘는 거리를 나흘 동안 상자 속에서 지내게된 겁니다. 비첸차에서 택배를 건네받은 직원이 상자가 움직이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뜯어보면서 고양이는 극적으로 발견됐습니다. 다행히 고양이는 약간의 탈수 증세를 제외하고 건강상의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직원들은 곧바로 주소를 추적해 주인에게 연락을 취했고, 고양이는 무사히 주인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하네요.

 

Scene 2#

저는 오늘 레체의 고양이와는 다르지만 커피가 좋아서 따라가던 관성에서 시작한 제 커피 인생의 ‘뜻밖의 여정’ 레체를 소개 할까 합니다. 이탈리아의 남부로 가기 위한 열차를 타면 이탈리아의 남동부 해안을 따라 200km 정도 쉬지 않고 펼쳐지는 올리브 나무를 목격하게 됩니다. ‘매일같이 올리브 오일을 사용하고 올리브 열매를 좋아하는 이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란 의문을 가졌었는데 쉴 새 없이 펼쳐지는 파노라마는 그것이 가능하단 사실을 직관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레체는 바로크의 피렌체라 불릴 정도로 화려한 색채를 띠고 있었습니다. BC 12세기부터 시작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이곳은 로마시대를 비롯해 노르만 왕조의 지배를 받았던 15세기,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16~17세기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많은 모습으로 탈바꿈 됐습니다. ‘브론즈 빛으로 가득한 도시’란 수식어는 이곳을 몇 분만 걸어도 느낄 수 있습니다.

 

가난한 남부도시라는 선입견은 그것을 보고 느끼면서 죄책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정보의 오류가 빚어낸 껍데기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지역에는 미슐랭의 스타 셰프들도 애정을 아끼지 않는 레스토랑이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음식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았습니다.

 

 

 

Scene 3#

긴 장화 뒷 굽에 위치한 레체에서 50년 동안 가족의 가훈과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Quarta coffee를 방문했습니다. 서울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도시에 한국의 ‘동서식품’ 정도나 돼야 볼 수 있을 법한 산업형 머신을 갖춘 커피 공장이 있습니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스토리 월이 박물관처럼 전시돼 있습니다.

 

1900년 대 초반에 사용된 수증기 방식의 머신으로부터 1940년 처음 개발돼 사용된 수동형 레버리지 머신, 그리고 오늘날의 에스프레소 머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볼거리가 이곳을 채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회사의 마당에 넓고 촘촘하게 자리 잡은 태양에너지 판넬과 높게 솟아있는 풍력발전기였습니다. 로스팅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최대한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이들의 철학이 담긴 설비였습니다. 유명한 도시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목격합니다. ‘뜻밖의 여정’ 이란 문구를 빌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를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이가 오늘의 주인공 에도와르도. 그는 이 회사의 3대 운영자입니다. 사실 그의 본업은 셰프였습니다. 영국과 밀라노, 프랑스의 미슐렝 레스토랑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요리사로 일했을 때, 아주 섬세한 맛을 잡아내는 훈련을 했던 부분의 경험을 최대한 살려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안내를 받아 공장 내부로 들어가니 250kg짜리 산업형 로스터기 4대가 동시에 일사분란하게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1배치에 1톤의 커피를 생산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커피 공장인 셈이지요. 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공간 옆에는 에도와르도가 소중히 여기는 5kg짜리 소형 로스터리가 전혀 다른 색깔로 자신만의 커피를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오로지 싱글오리진 커피와 스페셜티커피 라인을 차별화하는 것이지요. 페라리는 세계 최고급 스포츠카지만 커머셜한 자동차를 생산하는 피아트 브랜드 산하에서 제작되고 있다며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도 이와 비슷해. 대중을 대상으로 접근하기 편한 커피를 생산하지만, 그 무엇보다 특별한 커피도 동시에 만들어 내려고 해.” 하면서 당당하게 그들만의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 당찬 포부가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이유는 이들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의미 있는 프로젝트에서도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연간 4천 명의 어린아이들이 공장을 방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역사회와 협력해 만들었습니다. 이 부분은 에드와르도의 할머님께서 처음 열정을 갖고 시작을 하게 됐는데, 아이들은 좋은 커피가 생산되는 과정부터 그것이 만들어지는 공정을 눈으로 보고 컨퍼런스 룸에서 배우고, 커피를 만드는 과정도 실습을 통해서 체험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매년 4천 명의 커피 애호가가 탄생되는 셈이지요. 그것은 이들의 부모와 가정에서의 브랜드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게 됩니다. 아이들이 이곳을 방문한 후기를 그림일기 형식으로 보내온 것이 벽면에 전시가 돼 있었는데요, 집에 돌아가서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고 부모님과 이야기하고, 어떻게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지를 보내왔다고 합니다. 나비효과처럼 그것이 한 가정과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시나요?

 

Scene 4#

이들만의 서비스 역시도 차별화 돼 있는데요. 이렇게 큰규모임에도 불구하고 고객에게 최상의 신선한 품질을 제공하기 위해 과도한 재고를 가지고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류에 비용이 더 들지만 신선한 원재료를 지속적으로 배송하면서 고객과의 유대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갑니다.

 

뿐만 아니라 고객을 위해 정기적으로 무료세미나와 트레이닝을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방식의 아이디어를 타 회사에서 제안할 경우 많은 곳에서의 화답은 그 열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실성이 떨어진다. 시간 낭비’ 라며 돌아오기도 합니다. 유명인의 성공사례 같은 것이 나올 때면 그제서야 ‘그것은 좋은 아이디어였어’ 라며 호응을 하기도 하지요.

 

2008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의 f&b에 들어가 특별한 프로젝트를 컨설팅하기 위해 실무 담당자들을 만나서 프리젠테이션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매우 냉소적이고 조소 섞인 의견을 듣고 나와야 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 달 ‘뉴욕 타임즈’에 외식분야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새로운 시장에 대한 방향과 조언에 대한 부분이 소개되었는데, 제가 이야기했던 부분과 대부분 같은 내용의 전망이었죠. 비즈니스는 차치하더라도 개인의 한 사람으로 전투에 지고 전쟁에 이긴 기분 같은 묘한 통쾌함이 있었습니다.

 

10년 사이에 커피 산업은 400% 이상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습니다. 당시에 ‘커피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며 온갖 비관론을 쏟아내던 이들의 발언은 이제 과거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런 탓에 우리는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이뤄내야 합니다.

 

 

2018년 최저임금의 대폭적인 상승과 함께 무인 주문시스템, 자동 머신이 보다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스타벅스와 도토루와 같은 글로벌한 커피 브랜드들이 오래 전부터 바리스타의 손에서 탄생되는 보다 높은 품질을 포기하고 규모의 경제, 보다 일관된 품질의 평준화로 자동화를 선택하게 됐는지를 반면교사 삼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대안일 뿐 자동화가 모든 면에서 월등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전문가들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재미난 사실은 앞으로 이러한 현상이 올것을 대비해 2008년부터 자동이 가지는 품질의 한계를 뛰어넘고 비 숙련자가 범할 수 있는 오류를 없앤 시스템이 개발됐다는 사실인데요. 현재 독일과 스위스에서는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pilogue#

바리스타 자격증 100만 시대가 열렸습니다. ‘전 국민의 바리스타화’란 농담이 나올 정도로 커피열풍이 대한민국을 스치고 간 것 역시 사실입니다. 하지만 양적인 성장에 맞춰 질적인 성장 역시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습니다. 상생이 모범이겠지만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사회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색깔로 블루오션을 만들어낼지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레체와 같은 ‘뜻밖의 여정’ 과 마주할 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따뜻한 아이디어 같은 것들 말이죠. 계절적 또는 경제적 동장군이 찾아 올 때면 잠시 멈춰서 따뜻한 커피 한 잔, 그리고 시 한편으로 언 마음을 녹여보세요. 그러면 어느새 봄의 향기가 마음에 꽃가루를 날리고 있을 테니 말이죠.

 


 

 

한 잔의 커피 용혜원
하루에 한잔의 커피처럼
허락되는 삶을 향내를
음미하며 살고픈데
지나고 나면 어느새
음미하며 마셔버린
쓸쓸함이있다.
어느날인가 빈잔으로
준비될 떠남의 시간이
오겠지만 목마름에
늘 갈증이 남는다.
인생에 있어 하루 하루가
터져 나오는 꽃망울 처럼
얼마나 고귀한
시간들인가...
오늘도 김오르는
한잔의 커피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뜨겁게 마시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