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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 레스토랑 - 셰프, 맛있는 부티크 호텔을 꿈꾸다. Part of Hotel Project, BRUTUS 유성남 셰프




셰프, 맛있는 부티크 호텔을 꿈꾸다. 

Part of Hotel Project, BRUTUS 유성남 셰프




이태원 경리단 길을 지나자, 이제 막 벌건 해를 산 뒤로 넘기려는 비탈진 주택가를 등지고 언덕 초입의 삼거리가 보인다. 나지막한 담벼락 에 그려진 동심 가득한 벽화를 따라 오르다 보면 그 끄트머리에 유로피안 비스트로 ‘브루터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평화로움과 게으른 오 후가 발길을 잡는 곳. 인생의 희노애락을 안주삼아 한잔 기울였을 것 같은 와인 병이 유리벽 테라스에 소탈하게 진열돼 있는 이곳은 Part of Hotel Project의 첫 번째 프로젝트, ‘브루터스’의 주인장 유성남 셰프의 그루터기이다. 오래돼도 그리 오래지 않은 듯 4년 차 손 때 묻은 브루터스는 그가 이루고 싶은 작은 호텔, 그 시작이다. 


취재 노혜영 기자 | 사진 조무경 팀장



인테리어 디자이너, 인생의 반전 

내로라하는 대기업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5년을 지냈다. 혹독한 야근 과 술은 늘 곁에 두고 살았다. 하지만 평생직장인 줄 알았던 대기업 은 IMF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그간 믿고 쌓 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 사라지는 듯 했다. 인생의 긴 암흑기는 끝도 알 수 없었고 지금 당장 뭘 해야 하는지 조차 알 수 없이 시간은 흘렀 다. 극심한 스트레스 탓에 탈모가 오기도 했다. 정신을 차리고 평생직 장이라는 허상 대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 다. 그러던 중 정말 우연찮게 내가 요리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 하고는 고민 없이 전세금을 털어 호주로 떠났다. “산에 오르면 물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때가 있 어요. 요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기 전, 이 시기가 딱 제 인생의 물안 개 같았어요.”



파란 오이와 애호박, 대박 되다 

어머니는 파란 오이와 애호박 밭에 있는 꿈을 꾸시고 나를 낳으셨단 다. 채소밭 한가운데 있는 꿈이라니.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요리를 할 팔자였나 보다. 황해도 개성의 종갓집에서 태어나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할머니까지 계신 대가족에서 자랐다. 종갓집 주방일이 좀 많을 까. 김장철마다 4종류의 김치를 담그고 메주 띄우기, 장 담그기, 동짓 날 팥죽, 두부, 도토리묵, 인절미, 찹쌀떡 등 떡 빚는 것은 물론 조청 을 내려 한과를 만들기까지 종갓집의 부엌은 물기가 마를 날이 없었 다. 부엌에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손으로 척척 버무려 낸 음식을 손가 락으로 집어 입에 넣어주는 맛은 정말 꿀맛이었다. 남자는 부엌에 얼 씬도 말라는 핀잔도 들어가며 그저 음식 만드는 것을 구경하려고 부 엌의 문지방이 닳도록 따라 다녔는데 모르는 사이 요리는 내게 일상 이 돼 있었다.    


 

혈혈단신 20대의 마지막에서 경험한 쓴 잔 스물 아홉. 

거의 서른이 다 되어 요리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집 안의 반대가 심했다. 아버지는 한동안 전화도 받지 않으셨을 정도로 아들에게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반대를 무릅쓰고 전세금을 모두 털어 호주로 떠난 아들에게 집안에서는 단 한 푼도 보태주지 않았다. 혈혈 단신으로 호주의 르 꼬르동 블루에 등록했지만 비싼 등록금을 버텨내 기엔 역부족이었다.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일 하는 것은 물론 도시락도 만들어 팔고, 손수 김치도 담가 팔기도 했 지만 결국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요리사로 산다는 것 

한국에 돌아와 시간 당 3400원 하는 알바부터 시작했다. 주방에서 말단으로 시작하려니 나이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레스토랑에 면접 을 봐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마지막으로 받아준 곳은 예술의 전당 근처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더바도포The Bar-dopo’였는데 정말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루에 18시간에 달하는 노동 강도를 참아 내며 1 년 만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한국에서 2~3년간 박봉과 생활고에 허 덕이며 살았다. 최근 한국에서 셰프의 주가가 많이 오르기는 했지만 요리사에 대한 처우는 팍팍하기 그지없다. 몸은 몸대로 힘들고 따르 는 대가는 미미하지 않은가. 한 달에 120만 원 남짓한 돈을 쥐고서 월세 및 각종 공과금을 제하고 나면 손에 남는 것 없이 훌훌 빠져나 가기 일쑤지만 고된 노동도 마다 않고 열정으로 버티는 이 땅의 젊은 요리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 ‘사내가 눈물을 보이면 쓰나.’ 사나이 체면에 남들 앞에서 힘든 내색조차 할 수 없었지만, 내 요리를 좋아해주고 응 원해준 지금의 아내가 있어 그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낼 수 있었다. “사람을 그릇에 비유하곤 하죠. 인생은 내 분량의 그릇을 만드는 과 정인 것 같아요.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채울 수도 있지요.”



마인드가 바뀌면 인생도 변한다 

어쩌면 호주에서의 시간들은 요리하는 사람이 가져야할 삶의 가이드 라인을 바꿔 놨는지 모르겠다. 아등거리며 살았던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5시면 퇴근해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 저녁을 먹고 산책하고, 주말이면 공원에 나가 피크닉을 즐기면서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그들이 꽤나 인상 깊었다. 그리고 올바른 삶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한국은 감정 컨트 롤에 서툰 사회이다. 화, 짜증은 팍팍한 한국의 삶에 자연스러운 본성 이 돼버렸다. 평범한 한국 사람이던 그가 호주에 살며 낙천적인 성격 으로 변한 것은 셰프 인생의 전환기가 되지 않았을까.  



“한국에 돌아와 주방에서 일하며 화를 낸 건 딱 세 번뿐이에요. 

요리를 하고 있는 목적이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된다면 인생이 참 고달프지 않겠어요? 

요리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나누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껴요. 내

가 만든 음식을 고객이 맛있게 먹어주면 그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내가 즐기면서 요리할 때 먹는 사람도 그걸 느껴요.”   




7년 만에 갖게 된 타이틀 Head Chef. 그리고 브루터스           

2007년 1월. 압구정 씨네드 쉐프를 오픈하면서 처음으로 헤드 셰프 가 됐다. 프렌치를 전공했고 프렌치의 커리어도 쌓았지만 한국인의 정서는 이탈리안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탈리안 파인 다이닝 씨네드 쉐프에서 첫 헤드 셰프를 시작했다. 프렌치가 궁중요리라면 이탈리안은 가정식에 가깝다.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자식 으로 손맛의 대물림은 한국의 문화와도 많이 닮아 있었다. 이탈리안 요리의 기본이 되는 함께 나눌 수 있는 편안함. 훗날 브루터스의 탄생 을 알리는 시작이 됐다. 






Part of Hotel Project, 브루터스 BRUTUS 

유 셰프는 5년간 씨네드 쉐프를 이끌다가 클럽 옥타곤의 주방 설계 와 메뉴를 맡게 된다.(클럽 옥타곤은 2015년 EDM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매거진 DJ Mag에서 월드 랭킹 6위, 아시아 랭킹 1위에 오른 곳이다.) 여기에서 만난 인연을 통해 Part of Hotel Project라는 재 미있는 아이디어가 만들어졌다. 마케팅, 디자인, 소믈리에, 셰프 각 분야에 몸담고 있는 네 사람이 모여 부티크 호텔을 만들기 위한 프 로젝트를 시작한 것. 그 첫 단계가 바로 브루터스다. 레스토랑, 카 페 등 호텔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모아 하나의 호텔을 이루고자 한 게 Part of Hotel Project의 시작이다. 지금도 브루터스의 법인명은 Part of Hotel Project인데, 사업 규모가 작다보니 현재 모든 지분은 유 셰프가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푸드 마일리지를 줄인, 안전하고 건강한 재료 추구 

2012년 11월에 오픈해 4년 넘게 한 자리를 지켜온 브루터스는 고 객의 90%가 단골 고객일 정도로 꾸준하다. 유로피언 비스트로로 자리 잡아 메뉴는 물론, 디자인 콘셉트를 잡는 것도 유 셰프가 직 접 팔을 걷어 붙였다. 어릴 때 입맛이 평생을 간다고 했다. 현대인의 질병인 성인병이 만연한 시대에 문제의 해답은 음식에서 찾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패스트푸드나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지게 되 면 성인이 돼서는 어떻겠는가. 유 셰프에게 좋은 재료로 만든 건강 한 음식을 식탁에 올리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의무가 됐다. 그렇기에 재료를 선별하는 것도 깐깐하다. 유기농 채소를 사용하고 모 든 요리에 MSG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데, 특히 시그니처 한우 암소 1++ 스테이크는 그가 고집하는 재료의 자부심이다. “한국은 트렌드가 너무 빨리 바뀌고 퀄리티보다 가성비에 더 초점 이 맞춰져 있어요. 고기는 식재료 중에서도 원가를 가장 많이 차지 하는 품목입니다. 고기 값은 속일 수가 없어요. 품질이 낮을수록 잡 냄새가 날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을 감추기 위해 각종 양념을 첨가할 수 밖에요. 한우만을 고집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에요. 이동 거리 가 길수록 유통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처리 과정이 필요해요. 질 소 포장마저도 인위적이잖아요. 좋은 재료는 본연의 맛으로도 훌 륭한 요리가 될 수 있어요. 요리는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데 건강한 음식보다 자극적이고 양 많고 화려한 음식에 열광하는 현상이 안 타까워요.”



골목상권 잠식한 대기업의 그늘         

유 셰프는 오너셰프로서 쓴 소리를 좀 해야겠다고 작심한 듯, 의미 있는 말을 이었다. 외국에 가면 오래된 호텔과 레스토랑이 많은 반 면, 유행에 민감한 우리나라는 과거의 유산을 이어가는 호텔과 레 스토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서양식 레스토랑은 3년 문턱을 넘기가 힘들고 치솟는 임대료에 쫓기 듯 내몰리며, 유행에 민감하지 않으 면 뒤처진다는 딱지가 붙고 만다. 오너 셰프가 많아져야 외식업의 뿌리가 깊어질 수 있지만 그러기에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신사동 가 로수길, 방배동 카페골목, 이태원 경리단길... 수없이 많은 골목 상권 을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매장이 잠식하면서 다양성과 아기자기함이 존재하던 예전의 모습은 점점 색을 잃고 획일화 되고 있지 않은가. “한국에 외식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존재해야 합니 다. 오너 셰프 레스토랑이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지요. 세월호, 메르 스 등의 사건이 터졌을 때 문 닫은 레스토랑이 생각보다 많을 정도 로 사정이 어려워요. 오너 셰프의 자존심은 괜한 말이 아닙니다. 음 식의 퀄리티에 대한 자신감이죠. 한국은 대기업들이 외식업에 너무 많이 뛰어들었어요. 원가 경쟁력이나 인력 수급에 있어서 대기업을 따라잡을 수 없죠. 이런 상황에서 작은 레스토랑들이 퀄리티 만으 로 대기업과 경쟁이 되겠어요? 결국 대기업에 의해 시장은 획일화 되고 다양성은 희미해지는 거죠. 유명한 골목들을 보세요. 처음엔 작은 레스토랑들이 옹기종기 모여 개성 있는 상권이었는데 대기업 이 잠식하면서 높은 임대료에 하루에도 수없이 간판이 바뀌는 재미 없는 동네가 되고 있잖아요.”  



유성남 셰프는 꿈을 꾼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과거에서 현재까 지 색을 고스란히 지닌 부티크 호텔을 만들고 싶은 그림을 그린다. 서울을 떠난 어느 작은 동네, 산과 바다가 있는 곳이라면 더 좋겠 다. 아마 그 때는 호텔 안에 있을 브루터스에서 여전히 그를 찾는 손 님을 위해 요리할 것이다. Part of Hotel Project를 완성하는 그 날. 




Epilogue#

헉헉 대며 뛰었지만 한발 늦었다. 이미 촬영이 한창인 브루터스에 는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벌컥 문을 열었는데, 하마 터면 방해꾼이 될 뻔 했다. 포즈를 취하던 셰프는 초면에도 어색하 지 않을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유성남 셰프. 이미 몸짱 셰프로도 유명한 터라 카메라 앞에 선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로 스포츠 의류 화보 촬영을 다녀왔다니, 말 다했다. 본업이 셰프가 맞는 지 궁금하다면 셰프 나이프를 손에 쥔 그의 모습을 슬쩍 엿보 길. 요리를 할 때는 오직 요리 외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며 칼 앞에서는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촬영하던 유성남 셰프. 주방에서의 체력은 필수이므로 마라톤, 수영, 사이클, 웨이트 트레이닝 가릴 것 없이 하루 두 시간씩 운동으로 체력을 유지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게 요리를 하고 싶어서인 게다. 술과 음식과 사람. 이 셋의 조화가 완 벽하다면 그곳엔 브루터스, 유성남 셰프가 있을 것 같다. 
2017 




셰프의 애장품 



# 첫 직장 첫 월급으로 구입한 가방 1995년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받은 첫 월급으로 일본 출 장길에 구입한 가죽 가방.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 가졌던 초 심을 생각하며 지금까지도 서류가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 아버지의 결혼 시계 한국전쟁 때 월남하신 아버지가 남한에 정착하시면서 결혼 하실 때 어렵게 장만한 시계.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삶 을 거울삼아 간직하고 있다






유성남 셰프


2015.09~2015.12  채널A 구원의 밥상 요리전문가 패널 및                          

메인셰프 2015.07  베트남 국영 하노이 TV 한국홍보영상물 제작 

2015.05~현재  EBS 최고의 요리비결, KBS2TV 아침, MBC 기분좋은 날 요리패널 

2015.05  이데일리 캠핑요리대회 심사위원 

2015.05  푸드잡지 Essen 셰프 특집 인터뷰 외 다수 

2014.10~2015.05  EBS 최고의 선택 프로그램 진행 

2014.12  중국 베이징 U-town 내 레스토랑 및 클럽 컨설팅 

2014.03~현재  메뉴판닷컴 요리자문단 

2013.09~2016.05 MBC 찾아라 맛있는TV 맛 검증단 

2012.11~현재  Part of hotel Project ‘Brutus’ 레스토랑 오너 셰프 

2011.08~현재  인천문예전문학교 호텔조리, 푸드스타일, 파티플래너과 겸임교수 

2011.10~2012.10  Club&Restaurants Octagon 주방설계 및 컨설팅 

2012.08  프랑스 주방브랜드 르꾸르제&인스타일 10월호 쿠킹클래스 

2012~현재  Essen, 월간 외식경영, 에센, 에스콰이어, 갤러리아 아우디 매거진, 외 다수 

2007.01~2011.10  CJ CGV Cine de Chef Grand Open&Executive Chef 

2010.09  매거진 맨즈헬스 한국의 대표적 미중년 30명 선정 2011.04~현재  현대백화점(무역센터, 압구정, 킨텍스) 문화센터 쿠킹클래스 강의 

2009.08~2010.08  채널CGV 주말N영화 味 in Movie 메뉴 구성 및 최정윤님 공동 진행 

2007.09  SBS 이홍렬의 요리왕중왕전 추석특집 French 부문 출전 

2005.04~2006.05  8-steps French Bistro Consulting & Kitchen Master 

2004.06~2005.04  ‘Palais de Gaumont’ French Cuisine Restaurant Chef de Partie 

2004.05~2005.06  The Bar Dopo Italian Cuisine Bistro Chef 

2000.02~2002.04  Red Ochre Australian Restaurant Assistant Chef (AU Adela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