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은 관광 인프라 중에서도 종합 환대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업이다. 그러나 고객의 발이 닿지 않는다면 호텔은 그저 크고 화려한 건물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한 호텔은 어렴풋이 부유하고 있는 호텔 이미지 속 나름의 포지셔닝을 위해 온갖 마케팅과 PR 전략으로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공고히 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이 역시 고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저 고요 속의 외침에 불과할 뿐이다.
기업에서 자랑스럽게 내놓은 제품, 혹은 서비스의 가치는 이처럼 영업, 세일즈가 전제돼야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다. 시장에서 세일즈는 가치 교환을 이뤄내는 핵심적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발굴, 생성해내기도 하는 조물주다. 그러나 그만큼 창조적이어야 할 세일즈는 눈앞의 목표 달성에 매몰돼 역설적이게도 관성과 하던 대로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기업의 대표도, 마케팅 직원도 모르는 ‘고객의 실재’를 알고 있는 유일한 부서임에도 현장 업무라는 이유로 기업 전략에서 배제돼 온 세일즈. Hotel DNA 세 번째 편에서는 마케팅, PR에 이어, 무관심 속에 멈춰져있던 역동의 현장을 들여다봤다.
참고 문헌 세일즈 마스터(Sales Master)
한번 재고는 영원한 재고로 남는 호텔 서비스
호텔은 정해진 시설과 인력을 가지고 최고의 수입을 올려야 하는 사업이다. 한정된 시설을 최대한 활용, 수익의 극대화를 꾀해야 한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재고가 없다. 한번 재고는 영원히 재고로 남고, 이런 이유로 호텔 세일즈 담당자들은 매일 고객 수요를 창출해야 하기에, 한시도 시간을 낭비할 수 없는 긴장감 속에 생활한다.
영업의 사전적 정의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 또는 그런 행위’로 영업직은 기업의 이윤 창출과 직결되는 직무라 호텔을 포함한 모든 산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그만큼 가장 많은 직무 중 하나다. 마케팅이 100년이 넘는 전통의 학문이라면 세일즈는 인간이 거래를 시작하면서부터 생겨난 가장 오래된 직업으로 꼽힌다.
흔히 호텔에서는 세일즈와 마케팅을 통합한 부서가 많지만, 마케팅과 비교했을 때 세일즈는 엄연히 다른 영역에 속한다. 「세일즈 마스터」의 저자이자 한국영업혁신그룹(Korea Sales Institute)의 이장석 대표(이하 이 대표)는 “세일즈는 찾아 나서는 것인 반면 마케팅은 터트리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세일즈와 마케팅의 차이를 설명한다. 그는 “판매는 분명 영업활동이지만 ‘영업’이라는 용어의 뉘앙스가 생산자 중심, 제품 중심이라는 편견에 의해 ‘시장과 고객’ 중심의 의미로 ‘마케팅’이 판매의 자리를 대신했다. 특히 B2C 비즈니스에서 기업들은 마케팅과 전략을 담당한다. 최종소비자와의 영업 전선은 영업 파트너의 몫이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기업 입장에서는 영업보다 마케팅에 집중 투자를 해왔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세일즈 부서를 ‘판촉부’라고 부르는 호텔들도 있는데 판촉과 세일즈도 본질적인 접근부터가 다른 개념이다. ‘판매촉진(Sales Promotion)’이란 제품과 서비스의 구매, 혹은 판매를 증진시키기 위한 단기적 인센티브를 의미, 초점은 ‘단기적’이라는 기간 개념에 맞춰진다. 판매촉진의 종류로는 샘플, 쿠폰, 할인, 이벤트, 프로모션과 같이 일종의 유인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며, 단기적, 일회성으로 폭발적 성과를 이끌어 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아무리 성공적으로 수행된 판촉 전략도 장기화되면 보통의 제품 개념으로 바뀌게 되고, 그 효과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특징이 있다.
이처럼 세일즈는 마케팅, 판촉과는 다른 분명한 고유 영역을 가지고 있는 직무다. 호텔이 가지고 있는 재화와 서비스를 시장에서 파악한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게 적재적소에 전달, 이익을 창출하고, 고객의 실재를 파악해 이를 다시 호텔의 상품에 적용하는 것. 기업의 많은 부서 중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현장을 확인하며 소통하는 직무가 바로 세일즈다.
아직까지 30년 전 패러다임에 멈춰있어
영업의 영역은 시대가 복잡해지고 고객의 성향이 세분화되는 반면 이를 충족시켜줄 대체재가 많아지면서 날로 고도화되고 있다. 좋은 품질의 제품이 있으면 소비자들이 알아서 찾아오던 시대는 이미 지난지 오래다. 아무리 고성능의 신제품일지라도 6개월 이내 비슷한 상품이 출시된다. 고객의 물음이 있는 곳에는 늘 정확한 답을 내놓는 기업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편의점에서 1000원에 판매하는 막걸리가 주점에서는 4000원에, 산 정상에서는 1만 원에 판매돼도 이를 기꺼이 소비하는 이들이 있다. 같은 제품을 편의점에서 팔지, 산 정상에서 팔지 결정하는 것은 영업 직원들의 전략적 사고, 시장과 고객에 대한 고민의 깊이에 달렸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제품이더라도 전략적 접근으로 제품의 가치를 최대한 높일 수 있는 영업은 이윤 창출의 기업 존재 의미를 찾아줄 수 있는 핵심 기능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흔히 ‘영업’이라고 하면 단기적 실적 추구, 사적인 인간관계, 요행과 불법을 일삼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다. 같은 말이지만 영업보다는 세일즈, 세일즈보다는 비즈니스라고 표현되길 원하는 실무자조차 영업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영업과 함께 기업의 핵심 기능인 생산은 자동화를 넘어 지능화되고 있다. 연구개발은 프로세스 표준화와 기술 결합에 의해 이미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고도화되고 있고, 관리 영역도 표준화되고 통합돼 경영의 효율성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영업은 아직까지 30년 전의 패러다임으로 바라보는 기업들이 많다.”고 지적하며 “공장 생산설비가 부식됐는데 그대로 사용하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고, 연구소 인력이 부족하고 기술력이 현저히 떨어지는데 방치하는 경영자도 없다. 그러나 영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해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너무나도 팽배하다.”고 꼬집는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영업에 관한 연구는 여러모로 아주 부족한 상태다. 경영학과에서 영업을 정식과목으로 채택한 대학은 찾아볼 수 없거니와 국내 경영 학술지에 실린 마케팅 관련 논문은 수 천 편인 것에 비해 영업 관련 논문은 고작 해봐야 수 십 편정도 뿐이라고 한다. 영업이 아무리 실무 영역이 라지만 학문적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으니, 영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어쩌면 필연적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흐리고 있던 영업의 본질은 무엇일까?
모든 문제는 관계에서부터 비롯돼
적극성, 설득력, 대인관계, 스트레스 내성, 인내심, 소통…. 세일즈인들이 갖춰야 할 대표적인 역량들이다. 성공적인 세일즈를 위해서는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기존의 고객과의 지속적이고 안정적 관계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관계지향적 영업(Relationship Selling)’이 주된 목표로 자리 잡혀 있었다. 여기서 관계지향적 영업은 단순 일회성의 거래가 아닌 고객과 서로 유익한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고객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고객에게 최고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관계지향적 영업에 대한 미국의 연구들은 ‘신뢰’나 ‘헌신’을 키워드로, 감성보다는 이성적 판단을 강조하며 전략적 접근법을 고민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반대의 전략적 접근을 실시해왔다. 혹자는 미국과 비슷한 관점에서 서양과 비교했을 때 동양의 관계를 정의할 수 있는 단어는 중국의 ‘꽌시(Guanxi)’라고 말한다. 중국어로 관계를 뜻하는 꽌시는 중국소설에 자주 나오는 ‘의(義)’의 다른 표현, 우리나라로 치면 ‘인맥’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중국에서는 꽌시가 없으면 어떤 비즈니스도 진척될 수 없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끈끈한 인간관계를 뜻한다. 표현에서 느껴지듯 이성적인 영역보다 감성적인 영역이 지배적인 관계다.
우리나라도 이런 문화적 영향을 받았는지, 아니면 특유의 정(情) 문화가 영업에도 스며들었는지 국내 영업은 고객을 만나 고향이나 학벌을 묻고, 비공식적인 회식을 통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경향이 지속돼 왔다. 우리는 그동안 영업을 잘하려면 언변이 좋아야하고, 술을 잘 마시면서 셈이 좋아야 한다고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조건에는 함정이 있었다. 영업을 잘하려면 말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맥을 정확히 짚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답을 할 수 있게끔 좋은 질문을 던지는 ‘소통’을 잘해야 한다. 술을 잘 마시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일궈낼 줄 알아야 하고, 셈을 잘 따지는 것보다 내가 맡고 있는 시장과 고객에 대한 고민을 얼마만큼 하는지 ‘통찰력’을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감성중심의 관계는 쌓아 올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게다가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오는 정서적 스트레스도 고스란히 영업 담당자의 몫이다.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얻기 쉬운 것이 아니다보니 때로는 비윤리적인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면서 고객과 영업 직원 사이에는 갑을관계가 형성, 영업인들의 영역은 점점 인맥 위주의 영역으로 변질돼 갔다.
매너리즘에 빠져 멀어지는 전략적 사고
인맥 위주의 영업은 제품의 가치도, 직원들의 사기도, 기업의 이미지도 높이지 못한 채 불필요한 에너지만 소모하게 된다. 잘못된 관계지향적 영업은 시장에서 교환되는 가치가 제품에 있는 것이 아닌 인간관계에 머물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영업의 본질적 가치는 그렇게 가려져 있었다.
모든 기업은 고객을 위해 존재한다. 영업의 존재 이유 또한 고객에게 우리 서비스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함이다. 그리고 보다 더 높은 가치를 인정해줄 수 있는 고객을 찾는 것. 즉 영업의 본질은 시장과 고객, 가치에 기반을 둔다. 대인관계는 가치를 높이는데 윤활유 역할은 할 수 있으나 그 자체가 본질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 만나는 일’에만 몰두해온 영업인들은 반복된 일상 속에 발전 없는 매너리즘에 빠져 전략적 접근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 대표는 “한국 영업 담당자들이 쉽게 하는 이야기가 ‘우리는 다르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면 ‘내가 하는 영업은 내가 제일 잘 안다’는 말과도 같다. 이는 대부분의 영업인들이 가지고 있는 큰 착각과 모순”이라고 말하며 “영업을 한지 오래된 이들은 경력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스스로 영업을 잘하고 있다 착각하지만 그건 ‘하던 대로’의 영업을 잘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가장 쉽게 놓치는 것이 시장과 고객이라는 본질이다. 영업 컨설팅이나 교육을 하면서 기업들에게 항상 질문하는 것이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업을 운영해오며 알게 된 우리 기업의 고객은 어떤 고객인가? 그 고객들은 왜 우리 제품을 선택했나(Why me)? 아쉽게도 생각보다 제대로 답하는 기업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호텔이 영업을 10년 동안 해왔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10년 동안 호텔에 방문한 고객 정보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 호텔의 주방문 고객은 ‘가족단위 고객’이라든지 ‘20~30대 밀레니얼’이라는 답은 충분하지 못하다. 호텔은 CRM을 위한 멤버십 활용이나 고객 만족도 조사 등을 실시하고 있지만, 객실 청소 상태나 직원 친절도 수준의 척도만 가지고는 고객이 우리 호텔에서 해소하고자 했던 니즈와 새로 갖게 된 니즈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다. 결국 현장을 채우고 있는 실제 고객의 목소리는 영업 담당자만이 알 수 있고, 그동안 영업 담당자들이 신줏단지 모시듯 귀히 여기던 고객 정보는 이제 내부적으로 공유가 이뤄져야 한다.
섞여야 하지만 섞이지 못하는 세일즈와 마케팅
영업을 통해 얻는 고객 정보는 어느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호텔의 유일무이한 자산이다. 영업 직원은 담당 시장과 고객에 대한 기업의 총 책임자이자 최고 권위자다. 고객에 대한 상담은 물론, 호텔과 서비스에 대해 교육도 해야 하고,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각종 피드백을 수집해야 하는 인간관계의 전문가다. 세종대학교 호텔관광경영학과 정규엽 교수는 “영업은 여타의 판매촉진 전략과 비교할 때 개별적 접촉을 통한 최대의 융통성과 가장 빠르고 정확한 고객의 반응을 청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세일즈를 가장 잘하는 집단으로 꼽히는 기업은 미국 화장품 기업인 에이본(Avon)이다. 에이본의 가장 대표적 브랜드 이미지는 ‘여성 판매원’이다. 국내에서 찾는다면 대표 세일즈 전문가들은 1초에 30여 개씩 판매된다는 한국야쿠르트의 대표 브랜드 ‘야쿠르트 아주머니’”라고 이야기한다.
화장품 방문판매원, 야쿠르트 아주머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고객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모든 고객 정보를 꿰뚫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화장품 방문판매원들은 주부들의 인기 스타였다. 그가 방문하는 날이면 친한 동네 주부들은 삼삼오오 모여 몇 시간이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판매원과 함께 나눈다. 이런 디테일을 업계 리더들하고만 소통하는 최고 경영자와 리더, 그리고 자료와 회의를 통해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마케팅 담당자들은 알 길이 없다.
세일즈와 마케팅의 영역이 섞일 듯 섞이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일즈와 마케팅은 근본적으로 가치 있는 고객을 유치, 이들과의 관계를 잘 이어가는데 공통의 목표를 두고 있음에도, 마케팅은 그들이 고상하게 계획한 마케팅 전략을 영업이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고 비난하고, 영업은 마케팅이 현장에서 직면한 실질적인 과제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무시한다. 영업직원은 항상 시장 니즈에 대응할 수 있는 제품, 경쟁력 있는 솔루션이 없다고 불평하고, 회사의 전략을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이는 영업을 통해 얻어진 실질 고객정보들이 내부적으로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당연한 괴리다.
세일즈도 전략적 사고 필요해
그동안 영업 직원이 수집한 고객정보는 해당 직원들의 갖은 노력으로 일궈낸 자산과도 같은 것이었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고, 달성해야 할 목표와 달성한 목표가 정량적으로 파악 가능한 특성상 실적과 연결되는 고객정보는 전장에서 싸울 수 있는 무기와도 같았다. 여기에 그동안 다른 영역에 비해 영업부서는 업무 표준화가 더디게 이뤄져 영업 담당자 개인이 개인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기록만 남아있을 뿐, 내부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매뉴얼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영업을 통해 무수히 쌓아 온 고객정보들은 여기저기 흩뿌려진 상태였고, 그마저도 영업직원이 그만두게 되면 공중 분해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영업 활동이 기업에서 제 위치를 찾으려면 영업도 전략적 사고를 바탕으로 전사적 영업 기획이 이뤄져야 한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영업 담당자들은 스스로 전략과 미래는 자신의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매일 현장에서 변화하는 시장, 끊임없는 새로운 고객과 니즈를 보면서도 그냥 지나쳐온 것이다. 시장 분석이나 전략은 결코 거창한 주제가 아니다. 고객의 고민, 고객과 경쟁사의 동향이 모이면 시장의 움직임이 되고, 시장 분석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 방안과 선제적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다름 아닌 전략”이라고 설파한다.
30년 전의 영업과 현재의 영업이 모두 시장과 고객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불변하는 사실이지만, 3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것은 고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에 비해 영업에 특화된 전문 인력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알아야 할 정보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가는데 점점 고객을 만날 수 있는 창구는 좁아지고 있다. 그동안 혼자 스스로 해오던 영업은 계속해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는 영업도 계획부터 실행, 결과까지 모두 공유, 보다 본질적으로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회귀해야 한다.
전략적 호텔 세일즈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_ The Pierre
2017년 41~43층에 있는 16개 객실이 4400만 달러에 팔리며 화제를 모았던 미국 뉴욕시에 있는 호화 호텔인 The Pierre는 매우 고가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공표요금(Rack Rate)으로 100% 객실점유율을 기록하는 일수가 1년에 100일에 이른다. The Pierre는 이에 부응해 단체 고객의 비율을 10% 미만으로 조정하는 판매부 전략을 세웠다. 따라서 비수기에는 매일 최대 단체 객실 할당 비율을 정하고, 변경 시에는 Sales Director의 허가를 받는 정책을 도입했다.
또한 뉴욕시 월스트리트에만 의존했던 FIT 어카운트의 전략을 수정해 LA의 여행사들과 협력, 미국 서부 시장을 개척했으며, 일본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해외 어카운트를 높은 객실 요금을 제시하며 공략했다. 판매부 매니저들은 포시즌스 출신 매니저를 대상으로 네 단계의 고용 전 인터뷰를 통해 고용했다. 그 결과, 재투숙률 65%, 30% 이상의 고객이 Rack Rate 지불 등 ADR이 10% 이상, 객실 점유율이 70~80% 이상 제고되는 성과를 거뒀다.
올바른 조직 문화 통해 영업의 방향성 제시해야
영업의 성공은 분명 수치로 귀결된다. 하지만 수치가 곧 영업의 성패를 가르는 척도는 아니다. 현장에서는 최선을 다해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냈지만 어쩔 수 없이 목표한 바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고, 흔히 영업은 운칠기삼이라 이야기하는 것처럼 어쩌다 좋은 시기에 기회를 잡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영업은 목표달성에 의한 성과급제도가 당연시되는 직무다. 영업 담당자들이 단기적 목표에 급급해 장기적인 비전을 잃는 것은 비단 직원 개인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호텔로 발령난지 2년 정도 됐을 때 처음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박람회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때 해외 바이어들의 한국 호텔에 대한 니즈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한국에서 클라이언트를 만나도 거래가 성사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담당자도 계속 바뀌는 마당에 지속적으로 해외 세일즈를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더 어렵더라. 그런데 3번째 박람회를 참여했을 때 해외 출장의 비용과 시간대비 성과가 빨리 나타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채근하는 상사가 있었다. 매니지먼트 쪽에서도 이런 부분을 조금 믿고 기다려줄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신규 마켓 개발은 단기간 내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특급호텔 MICE 세일즈 매니저로부터 들은 하소연이었다.
영업이 빠른 시일 내 긍정적 성과를 얻으려면 영업 직원 이외에도 많은 부서의 도움과 인내가 필요하다. 영업 직원의 역할은 이 기간을 보다 빠르게 단축시킬 수 있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지, 거래의 성패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다. 직원 개인은 성과급 여하가 달라지니 영업의 성패에 연연할 수 있어도, 적어도 조직의 리더와 기업은 영업 과정의 인과관계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영업에 있어서 목표와 보상 자체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수단임은 틀림없다. 중요한 것은 목표와 보상을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공정성을 갖추는 것이다. 영업 직원에게 주어지는 목표는 시장과 고객 상황을 바탕으로 과거 영업 실적, 시장 성장률, 전략적 우선순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설정해야 하며, 목표 도달에 따른 보상으로는 인사고과가 아닌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영업의 목표 달성이 곧 고과 우수라는 잘못된 인식은 영업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한다면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영업은 기업입장에서 봤을 때 장기적인 레이스다. 단 한 명이라도 영업 담당자의 부주의는 전체 기업 이미지에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히기 충분하다. 따라서 리더는 목표에 달성하지 못했어도 과정이 옳았다면 언제든 그 고객은 다시 돌아올 수 있고, 목표에 달성했어도 과정이 옳지 못했다면 언제든 고객은 떠날 수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해, 성과보다 본질적인 영업 행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직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올바른 조직 문화를 위해 영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은 리더만이 할 수 있다.
언택트냐, 온택트냐, 컨택트냐
과연 코로나19로 새롭게 떠오른 세일즈 미션인가?
코로나19로 호텔 세일즈도 많은 애로사항이 생겼다. 특히 해외 인바운드 고객을 메인 어카운트(Account)로 하던 세일즈 매니저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직접 눈으로 보여주고 설명해도 어려운 것이 영업인데, 언택트와 온택트를 통해 세일즈를 하려니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새 OTA의 비중이 늘어나며 FIT 고객 세일즈는 대부분 채널을 통하다 보니 채널에 익숙하지 않은 매니저들은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전략으로 채널관리에 휘둘리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온라인 채널이 대세라고 해서 무조건 OTA에 많이 노출시키고 보자는 전략은 효과적인 영업 방식이 아니다. 전제돼야 하는 것은 고객이 찾는 우리의 서비스가 어떤 채널을 통해 노출됐을 때 고객의 접근이 쉬울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 채널이 OTA가 될 수도, 공식 홈페이지가 될 수도, 그도 아니면 대면 비즈니스가 될 수도 있는데 무조건 온라인 채널만 찾고 있는 것은 전략적 접근이 아니다.”고 설명한다.
모든 비즈니스는 생애주기 동안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크고 작은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호텔은 코로나19로 모든 호텔이 생존의 기로에 놓였다. 인바운드 수요는 아예 제로가 돼 버렸고, 한정된 내국인 고객 속 새로운 니즈를 찾아야 한다. 변곡점을 지나고 나서도 호텔 시장은 어떻게든 이어가게 돼 있다. 단지 승자와 패자만이 남을 뿐이다. 언택트와 온택트, 컨택트는 사실 코로나19 이전 상황에도 혼재돼 있었던 영업의 수단이었다. 그 비중이 어느 쪽에 몰려있었냐는 차이일 뿐, 결국 중요한 것은 ‘가치’다.
영업인들이라면 신물이 나도록 들어봤을 시장, 고객, 가치지만, 결국 답은 기본에 충실할 때 구해진다. 대개 기업에는 세일즈 출신의 수장이 많다. 주인의식이 있고, 시장을 꿰뚫어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이들이기 때문이다. 호텔도 유난히 세일즈 출신의 총지배인이 많다. 오늘 팔지 않으면 재고로도 남지 않는 호텔 서비스기에 그만큼 세일즈가 호텔 운영에 있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국내 영업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은 것처럼, 영업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대한 책, 교육은 많아도 영업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들은 많지 않은 현실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헤매고 있을 이 시기에 발군이 돼 승자로 남게 될 호텔은 세일즈 본질에 대한 접근을 통해 스스로 답을 구하는 곳이 되지 않을까?
“세일즈, 기존의 관성에 의구심 품고
새로운 가치에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국영업혁신그룹 이장석 대표
Q. IBM 영업부를 시작으로 30여 년간 영업 일선에서 수많은 비즈니스와 영업 직원들을 지켜봐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경험한 국내 영업 생태계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영업은 기업 경영활동의 근간이다. 모든 기업이 영업 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뛰어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직원들의 동기부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영업 현장은 크게 바뀌고 있지 않다. 이는 영업의 본질을 망각한 채 결과에 올인하는 영업 직원, 그리고 그것을 당연시하고 결과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조직문화로부터 만들어진 기형적 영업 생태계였다. 그 이유로는 크게 영업의 본질을 꿰뚫는 ‘진정한’ 전문가가 없다는 점, 체계화된 영업 교육 계획을 가지고 집요하게 실행하는 기업이 없었다는 점, 교육이 진행돼도 현실과 동떨어진 방식으로 배워도 배운대로 실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Q. 코로나19로 많은 기업들이 변곡점을 맞이한 가운데 호텔도 영업에 대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된 것 같다.
호텔도 서비스업이지만 서비스가 실행되려면 먼저 영업이 이뤄져야 호텔로서의 가치를 갖을 수 있다. 아마 이번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호텔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호텔은 그동안 어떤 세일즈를 해왔었는지부터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이해하기 쉽게 비슷한 상황의 제주도를 예로 들면, 제주도는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날이 1년에 절반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성수기 때는 공항도, 호텔도 미어터지는 반면 비성수기 때는 썰렁하다. 그렇다면 제주도는 어떻게 하면 성수기 수요를 비성수기로 전환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거나, 도내 관광 활성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게다가 제주도는 강원도나 부산과 다르게 관광객이 진입하는 통로가 2개 항구와 1개 공항으로 명확하다. 즉 누가, 언제, 어떻게, 얼마나 머물다 가는지 확실한 고객 데이터가 있다. 그런데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이제 호텔은 비수기에 접어드는데, 성수기 때 넘치는 수요의 30%를 서비스로 쓰면서 이를 비수기 70% 수요로 전환시킬 수 있는 모델은 무엇일지와 같은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고객 유치를 위해 마일리지나 멤버십 혜택 등은 제공하면서 주말과 성수기, 연말에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하면 그 마일리지나 멤버십은 사실 고객을 위한 혜택이라고 할 수 없다. 호텔도 세일즈가 전장(시장)으로 가지고 나갈 무기(서비스)가 무엇인지, 전장의 상황에 맞춰 어떤 무기를 들고 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영업의 기본과 관련 스킬은 어느 영역에나 동일하지만, 영업 실행을 위한 프로세스와 접근법은 각 영역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그동안의 호텔은 세일즈를 한다기 보다 PR이나 마케팅, 프로모션을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Q. 그런 의미에서 호텔 세일즈가 바뀌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호텔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무형성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형태가 있는 제품보다 유동적이고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폭이 매우 넓다. 그러나 좋은 재료를 가지고 너무 한정된 범위 내에서 적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호텔뿐만 아니라 영업 직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타깃으로 할 시장과 고객을 기존의 시장과 고객에 한정시킨다는 것이다. 앞으로 진입해야 할 시장과 더 발굴해야 할 고객에 대한 고민을 하는 곳들이 별로 없다. 세일즈도 창의적이어야 한다. 전략은 마케팅 영역에서만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세일즈와 마케팅이 같이 고민해야 한다.
Q. 창의적인 전략수립을 위해 세일즈 매니저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
과거 관계지향적인 영업에서 벗어나 본질적 접근, 시장과 고객에 초점을 두고, 그동안 불필요하게 소모했던 시간과 에너지를 줄일 필요가 있다. 다른 호텔보다 차별화된 서비스와 콘텐츠 믹스를 제공한다면 고객은 관심을 갖게 돼 있다. 비즈니스는 갑이 을의 가치를 인정했을 때 성사가 빨라진다. 그렇다면 결국 가치를 어떻게 극대화 할 수 있을지, 기존의 영역이 아닌 새로운 영역에서의 고민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형의 객실, F&B, 연회장 등의 시설에 우리 호텔만의 차별점으로 서비스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세일즈 직원이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가장 둔해지는 것이 통찰력이다.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하는데, 기존에 들여다보고 있는 시장, 고객만 바라보고 있으니 애초에 답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Q. 결국 관계가 아닌 가치영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가치영업에서 주안점을 둬야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제품 전략이 명확하고 가치 주장이 논리적이더라도 고객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차별화된 가치는 성립되지 않음을 아는 것이다. 호텔은 직원에게 가치영업을 강조하기 전에 우리가 주장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차별화된 가치가 고객의 관점에서 수용되는지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고객으로부터 가치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영업이라고 강조하겠지만 그런 제품과 서비스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차별화된 가치와 전혀 상관없는 비즈니스는 걸러내 영업직원이 불필요한 곳에 시간을 쓰지 않도록 하고, 차별화된 가치가 받아들여지는 제품과 서비스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치중심 영업, 가격 응대 영업은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다’라는 주제가 아니다. 상호 배타적으로 보이지만 불변의 규정이 아니라 탄력적인 포지셔닝이 돼야 하는 전략 영역이다. 단 한 번의 계획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고객의 수용 여부, 경쟁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돼야 하는 전술이라는 것이다.
Q. 세일즈 담당자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영업 분위기 조성도 중요해 보인다.
조직의 문화나 분위기 조성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리고 이는 분명 호텔 최고경영자가 떠안아야 할 숙제다. 호텔의 리더가 과연 어떤 전략적 고민을 하고 의지를 보이고 있는지, 최고 의사결정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아무리 세일즈 매니저가 혼자 고군분투 한들, 타 부서와 협력이 안 되는데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겠나. 결국 이는 의지와 더불어 제도, 시스템이 구축돼야 하는 것이다. 리더의 열정이나 의지가 조직의 문화와 분위기를 바꾸고, 그렇게 형성된 전체적인 공감대가 세일즈 매니저들의 전략 추진의 힘이 된다.
영업, 세일즈는 결과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설계하고, 이를 이끌어내기 때문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이다. 자기가 어디에 속해있던 오너처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는 일이기에 매력적이다. 따라서 호텔의 많은 영업 직원들도 본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호텔 전사의 뜻이 모여 보다 창의적으로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재미를 위기 속에서 되찾을 수 있길 바란다.
회사를 살리는 영업 A to Z, 세일즈 마스터
기업의 부실 이유는 결국 영업의 부실에 있다. 오늘날 경영학의 눈부신 발전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영업 관리는 여전히 비과학적인 분야로 남아있다. 영업이 한 개인의 개인기나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묘기의 수준에 남겨두는 한 기업의 지속적 발전은 한계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이제 편법이 아닌 정석에 관심을 쏟을 때다. 본질을 망각한 채 결과에 올인하는 영업직원과 이를 당연시 여기고 눈앞의 성과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려는 기형적인 조직문화는 사라져야 한다. 「세일즈 마스터」는 영업의 본질을 이해하고 실행으로 연결하는 모든 것을 담았다.
저자 이장석 발행 진성북스 가격 1만 7500원
글 : 노아윤 / 디자인 : 강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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