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는 곳과 생각하는 곳은 다르다. 그녀의 삶에서 커피가 얼마나 낭만적인 시간을 갖게 했는지, 혼자 있는 시간을 얼마나 풍족하게 해 줬는지 온몸을 감싸 안으면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는 반려견과 함께 살고, 나는 커피와 산다.”라고 말하던 그녀는 깊고 풍부한 향미를 뿜어내는 커피가 그녀의 아침을 시작하게 하고 밤을 마무리하게 하는 정서를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의 커피는 조금은 사치스러웠다.
처음 만난 날.
내면을 들여다보듯 그는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한참 동안 쳐다보는 시선을 불편해 하는 모습이 보이자 엷은 미소와 함께 굵은 베이스톤으로 “어떤 것을 볼 때 정말로 그것을 알고자 한다면 오랫동안 바라봐야 한다는 존 모피트의 말이 생각나서요.” 그 한마디에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가 아는 남자 중에 가장 멋진 남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를 소개한 최원장의 말이었다. 이런 자리가 어색해 최원장과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기보다는 가끔 긍정적인 미소만 지었다.
“이곳은 제주도에서 매일 공수돼 오는 해산물로만 요리해서 횟감으로 신선하고 바다향이 그대로 느껴지죠?, 음식도 정말 맛있네요.”
언제나 고상하고 우아한 단어를 사용하는 최원장은 먹는 것 앞에서는 연신 맛있다는 말과 식탐으로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비싼 음식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코스로 나오는 해산물 요리는 2시간 이상을 충분히 먹고도 남았다.
“가시는 방향이 같으니 모셔다 드리세요.”라는 말과 함께 최원장이 그에게 굳이 먼저 그녀와 함께 출발하라는 보내는 수신호에, 못이긴 척 그는 그녀를 태워 출발했다.
“최원장과 공연관계로 미팅할 일이 가끔 있는데 멋진 분이 있다며 저녁을 함께하자고 전화해 나오게 됐습니다.”
“저도 공연사업에 도움이 될 분이라며 식사같이 하자는 전화에 나오게 됐어요. 누군가를 소개받고 그런 자리는 아니었는데...”
“가까운 곳이니 커피 한잔하고 가실래요?”
그가 이끈 늦은 밤 카페 안은 잔잔한 음악과 진한 커피향으로 가득했다.
“작은 카페인데 로스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향과 바디감이 좋은 커피의 향이 가득하네요.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공부를 조금 했습니다.”
조도가 낮은 간접조명과 차가운 그레이톤의 인테리어로 어두컴컴했던 일식당에 비해 주황불빛에서 네이비 컬러의 자켓과 노란색 셔츠를 입은 그 사람의 피부톤이 밝아 보였다.
“내일 아침 혼자 먹기 싫은데 함께 먹어 줄래요?”
스크램블에그와 몇 조각의 베이컨, 커피를 마시고 서먹한 브런치를 먹었다. 커피를 리필하려고 하자, 향이 좋은 커피가 있다며 룸으로 초대를 했다. 약간 들뜬 기분의 주말 오전, 그가 머무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커피를 준비하는 퍼포먼스는 조금 과장돼 보이고 예식을 치르는 듯 했지만 커피는 둘이 있는 공간을 깊고 풍성한 스모키향으로 가득 채웠다. 처음 한 모금에서 깊은 스모키향이 입안으로 퍼져 코를 지나 안개처럼 사라졌다.
“이 커피는 과테말라 산타모니카 커피입니다. 고급스럽고 에스닉한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우면서 풍만한 가슴을 가진 댄서의 바디감을 보여주고, 살사의 강렬한 리듬감 있는 열대과일 향을 느끼게 하며, 구리빛 피부같은 적절한 산도가 혀를 자극하는 듯 하네요.”
그의 표현력에 감탄하며 산타모니카 커피 향에 흠뻑 빠져드는, 충만한 아침을 만났다. 그날 내가 마신 커피는 단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다른 세계의 커피 맛이었다. 사랑에 빠졌는지, 커피에 매료된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고, 그 사람의 향이 곧 커피 같았다.
‘내가 오랫동안 마시며 철학을 얘기하고 탐닉한 커피에서 과연 무엇을 마셨는가? 내 마음의 평화는 삶의 봄을 만난 것일까?’ 그녀는 문득, 그녀 자신에게 물었다.
커피는 하루의 에너지라는 것을 느끼며, 언제나 그러하듯 커피 한 잔으로 긍정의 삶을 살고 눈부신 아침 햇살로 숨쉬었다.
‘그 사람의 에너지에 이끌려 내가 마신 커피의 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부드러움과 달콤함, 뜨거움과 쓴맛, 간결함과 럭셔리함까지 에너지로 바꾸는 힘을 가진 사람, 그 사람의 친절과 잔중함, 해박한 지식 모든 것은 에너지였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무지개빛 시간 속에서 커피는 새로운 시간으로 유혹했다.
“갑자기 생각나는 글이 있어요.”
커피를 마시며 그녀는 시를 쓰듯 읊조렸다. “사람들은 마스크로 봄을 가리고 있는데, 4월을 깨우는 봄비처럼, 설레임은 당신이 내게 준 감동, 내가 봄이 되고, 당신이 커피가 되면, 혼자하는 커피는 나를 쉬게 하고, 둘이 나누는 산타모니카 커피는 사랑을 노래하게 하네.”
“그럼 나도 생각나는 대로 한구절 말하겠습니다. 비 오는 날 커피는 첫사랑을 그리워하게 하고, 햇살 좋은 창가에서 마시는 커피는 연인의 키스를 부르게 하고, 해질녘 커피는 당신이 남긴 커피잔에 따뜻한 사랑을 리필하게 한다. 오늘 밤, 커피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저녁의 깊고 뜨거운 키스가 된다.”
공감 가는 말이었다.
브런치 타임이 길었던 두 사람은 계속 울려되는 전화기 벨소리에 놀라 다른 미팅을 위한 준비로 마음이 바빴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늦은 나이에 커피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저녁식사도 함께 하고 싶은데 괜찮으세요?” 그가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답했다.
“아침의 커피가 저녁에 키스를 부르네요.”
김성옥
동원대학교 호텔조리과 교수
kso5200@tongwon.ac.kr
글 : 김성옥 / 디자인 : 강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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