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12월 21일 새벽 4시경,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알파인 호텔(Alpine Motel Apartments)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3층 42개 객실인 호텔 화재로 6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을 당했다. 화재속도가 너무 빨라서 2~3층 투숙객들은 창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 내리면서 부상을 당하기도 했는데, 만삭의 임산부도 있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이 더했다.
그로부터 불과 몇 시간 후인 12월 22일 새벽 5시경, 이번에는 우리나라 광주의 한 모텔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소식이 들려왔다. 2명이 숨지는 등 모두 3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연이은 숙박시설 화재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일상생활과 밀접한 이들 시설에 대한 위험관리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숙박시설 이용객의 대부분은 건물구조에 익숙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음주나 해방감 등으로 인해 화재 등 비상상황에 무방비인 경우가 많다. 또한 화재사고가 발생할 경우, 종업원의 신속한 안내방송과 소방기관 신고는 물론 피난유도 등 신속한 소방 활동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
우리나라 숙박시설에서 갖춰야 하는 대표적인 비상대응계획과 훈련은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소방안전관리자가 작성하는 소방계획서와 소방대피훈련을 들 수 있다.
국내 숙박시설 화재사고 사례
흔히들 간단하게 숙박시설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숙박시설의 종류는 대단히 많다. 호텔, 모텔, 여관, 여인숙 등은 물론, 최근 들어서는 호스텔, 아파트, BnB, 홀리데이파크, 홈스테이, 팜스테이, 캠핑장 등 다양한 형태의 숙박시설들이 영업하고 있다. 최근 들어 발생한 대표적인 숙박시설 화재사고는 다음과 같다.
호텔 2020년 1월 26일 오전 4시경 서울 M호텔 지하 1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투숙객과 호텔직원 37명이 병원으로 이송됐고, 600여 명이 대피했다. 1월 31일 저녁 6시경에는 서울 W호텔 주차장에서 주차 중이던 승용차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나, 인명피해 없이 20여 분만에 진화됐다.
펜션 2019년 7월 18일 오전 3시경에는 경북 포항시의 한 펜션에서 발생한 화재로 1명이 병원 이송됐다. 2020년 1월 25일 오후 7시경 동해시의 한 펜션에서 발생한 가스폭발 화재사고로, 사망자 5명 등 모두 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모텔 2019년 7월 7일 새벽 4시경 서울의 한 모텔에서 발생한 화재로 투숙객 100여 명이 급히 대피했고, 인명피해 없이 3시간 만에 진화됐다. 11월 29일 오전 9시경 전북 전주의 한 모텔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나 인명피해 없이 30분 만에 진화됐다.
여관 2019년 11월 19일 오후 11시경 인천의 한 여관에서 발생한 화재로 투숙객 22명이 긴급 대피했으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12월 4일, 오후 2시경 아산시 한 여관에서 발생한 화재로 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숙박시설 방화사건 2019년 4월 25일 충북 청주시의 한 여관방에서 60대 여성이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질렀으나 인명피해 없이 진화됐다. 이미 방화죄로 징역 2년을 복역한 후 출소 12일 만에 다시 방화를 한 것이었다. 12월 22일 0시경 광주의 한 모텔에서 정신이상자로 추정되는 30대 남성이 불을 질러서 사망 3명을 포함, 모두 3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5시간 만에 진화됐다.
숙박시설 화재사고 발생 현황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전국에서는 모두 1784건의 숙박시설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2014년 345건, 2015년 350건, 2016년 352건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던 화재건수가 2017년에는 320건으로 감소하면서 나아지는가 싶었지만, 다시 2018년에 417건으로 급증하면서 관계당국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총 1784건의 화재 가운데 수도권에서만 모두 614건의 화재가 발생했는데, 이는 전체 화재의 34.4%를 차지한다. 수도권에서는 2014년 130건(38%)을 정점으로, 2017년에는 100건(31.3%)으로까지 감소세를 보였으나, 2018년에 다시 157건(37.6%)로 무려 50% 이상 급증하고 있다.
다음은 부산·경남지역이 60건(14.4%)이었으며, 대전·충청지역은 52건(12.4%), 강원지역은 49건(11.8%) 등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2018년의 숙박시설 화재건수가 상당히 증가했는데, 강원지역의 경우 25건(7.8%)에서 49건(11.8%)으로 거의 두 배나 증가했다. 반면에 대구·경북지역은 41건(12.8%)에서 34건(8.2%)으로, 광주·전라지역은 46건(14.3%)에서 36건(8.6%)으로 감소했다.
숙박시설의 소방안전계획
소방안전관리자의 역할
여행문화의 확산으로 국내여행 중 숙박을 하는 여행객이 매년 증가함에 따라, 다양한 인원이 상시 거주하는 공간적 특성상 숙박시설에서의 비상대응을 위한 전문인력 배치가 대단히 중요하다. 이에 따라 숙박시설에서의 소방안전계획 등 소방안전관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일정 자격을 갖춘 ‘소방안전관리자’를 선임케하고 있다.
소방안전관리자는 소방시설에 관한 예산 편성의 계획, 점검 사항의 파악, 정비계획의 수립, 내·외부 공사 시 소방안전관리 및 화기취급 감독 등 중요한 임무를 담당한다. 또한 신속한 비상대응을 위해 직원들에 대한 소방교육훈련 실시, 비상상황에 대비한 대응능력 제고, 소화전 및 비상경보 등 소화설비와 경보설비의 이상 유무 등을 점검하며, 화재 등 비상상황에 대비해 피난로의 확보 및 소화활동시설의 정상작동을 위해 피난설비, 건축방화시설 등을 점검하고 있다.
소방안전관리자 제도는 1958년 소방법이 만들어질 때부터 시행돼 온 제도며, 민·관이 상호 보완적인 체제를 통해 사회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화재예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마련됐다. 대부분 화재감지기가 설치된 건축물에는 소방안전관리자가 근무하고 있으며, 소방안전관리자에 의해 사전에 예방되거나 초기에 진압된 화재사고 사례는 대단히 많다.
특히 숙박시설과 같이 불특정다수가 상시 거주하는 소방대상물에 있어서 24시간 시설물 안전을 감시하는 소방안전관리자의 역할은 실로 중요하다 하겠다. 이러한 소방안전관리자 제도는 미국, 영국, 일본 등지에서도 시행되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일본의 제도와 유사하다.
소방계획서의 작성 유지
소방안전관리자의 임무는 크게 예방활동과 대응활동을 중심으로 발전해왔으며, 과거에는 소방대가 도착하기 전에 화재를 진압하거나 화재의 확대를 억제하는 부분에 역점을 뒀다. 그러나 최근 인력, 장비가 확충되는 등 소방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소방안전관리자의 임무는 화재대응을 포함한 예방활동을 중심으로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숙박시설은 전기제품, 침구류 등으로 인해 화재 등 비상사태 발생 시 위험요소가 상존하고, 숙면 중인 투숙객의 대피지연으로 대형 인명사고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또한 내부구조가 복잡할 뿐만 아니라, 단기투숙자가 대부분인 관계로 화재사고 등의 비상상황 발생 시 대피로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다가 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할 가능성 또한 대단히 높다.
이에 따라 숙박시설 소방안전관리자는 화재예방능력 제고를 위해 피난계획이 포함된 소방계획서를 작성, 운용해야 한다. 소방계획서란 소방업무의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작성 관리하는 문서를 의미한다. 특히 피난계획에는 건물구조를 고려한 피난경로가 표시돼야 하며, 화재경보의 수단 및 방식, 층별·구역별 인원, 이동이 어려운 투숙객 현황, 객실별 피난경로 및 피난방법, 주요 피난시설 등 피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제반사항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다.
또한 직원 및 투숙객에 대한 소방훈련 및 교육 횟수, 방법 등의 내용과 함께, 소방시설 자체점검 계획이 수립돼야 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변경사항이 있을 때마다 매년 작성해야 하며, 일부 사항에 대해서는 소방관서에 보고토록 하고 있다.
숙박시설의 대피훈련
우리나라 숙박시설의 대피훈련
숙박시설은 그 특성상 화재사고 등 비상상황 발생 시 직원 및 투숙객에 의한 초기대응 여부에 의해 그 피해규모가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최근 소방관련 법령들은 건물주 등 소방대상물 관계자에 대해 소방안전 의무를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으며, 화재발생 시에도 무거운 법적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숙박시설 등 소방안전관리대상물의 관계인은 그 장소에 상시 근무하는 직원 및 투숙객들에 대해 소화·통보·피난 등의 소방안전훈련과 안전관리에 관한 교육을 해야 하며, 이 경우 피난훈련은 그 숙박시설에 출입하는 사람을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키고 유도하는 훈련까지 포함하게 된다.
숙박시설 비상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직원 중심의 자위소방대가 조직된다. 자위소방대는 화재 등 비상상황 발생 시 신속한 초기대응을 담당하며, 소방 등 관계기관에서 도착하기 전에 인명피해 방지 및 화재확대 등을 억제하게 된다. 자위소방대 훈련은 소화훈련, 통보훈련, 피난훈련 등으로 구분되며, 연1회 이상 소방안전교육과 병행해 실시된다. 비상연락반, 초기소화반, 피난유도반 등의 내부조직을 두며, 임무별로 배치된 역할을 명확하게 숙지케 하기 위해 반복 훈련을 실시한다.
소방본부장이나 소방서장은 숙박시설 관계인이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소방훈련을 지도·감독할 수 있으며, 소방훈련과 교육의 횟수 및 방법 등 세부사항까지도 법률에 규정돼 있다. 이러한 자체훈련 규정을 위반하는 경우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외국 숙박시설의 대피훈련
소방관서와 합동 훈련은 숙박시설이 소방관서에 협조 요청을 할 때 이뤄지는데, 우리나라 숙박시설의 경우, 실제로는 대부분 소방관서와 함께하는 합동 대피훈련을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분노출을 꺼리는 투숙객들의 불편과 불만 제기가 가장 큰 이유며, 이에 따라 대부분의 숙박시설에서는 요식행위에 가까운 자체 소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해외에서는 소방훈련을 할 때 실제와 유사한 상황을 가정해 실시한다. 미국은 아예 사전예고조차 없이 화재훈련을 진행하는데, 숙박시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대피하고 나서야 훈련이었음을 알려줄 정도다. 따라서 훈련 도중에 수많은 돌발 상황이 생겨나고, 이런 상황처리를 통해 대처능력을 향상시켜 나가는 훈련이다. 소방대원들은 훈련과정에서 화재경보시설이나 소방시설에 이상은 없는지, 대피경로에 장애물은 없는지 등을 꼼꼼하게 확인하며, 소방안전관리자는 직원 및 투숙객들의 실제 행동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점검한 후, 매뉴얼을 개선한다.
영국은 숙박시설 영업주가 직접 구체적인 훈련결과를 기록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훈련날짜와 참여한 직원들의 명단, 대피완료까지 소요된 시간, 신속한 대피를 위해 보완할 사항들을 기재하며, 이는 소방계획서에 그대로 반영돼 점차 훈련 강도를 높여가게 된다. 창문이 폐쇄됐다거나 중앙계단이 연기로 막힌 상황,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이용객이 투숙해 있는 상황 등을 설정해 훈련하게 된다.
일본은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119에 신고하는 방법부터 교육한다. 또한 어떤 종류의 화재인지, 시설물에는 어떤 소방 설비가 설치돼 있는지 등을 직접 질문하며, 화재발생 장소에 따라 임시피난처까지도 다르게 지정해야 한다. 숙박시설의 경우, 화재가 발생한 지점에 따라 투숙객들이 이동하는 대피로도 달라지게 된다. 고층건물일 때는 소규모 단위로 나눠서 어떤 투숙객을 먼저 내려가게 할지, 어느 계단을 이용하게 할지 등의 순서까지도 사전에 미리 정해 놓을 정도다.
대피훈련 중요성 사례
평상시 비상대응훈련 및 소방안전교육의 중요성은 지난 2019년 12월 22일 새벽, 광주 북구 두암동 모텔 방화 현장에서 확실하게 입증됐다. 모텔 3층에서 발생한 방화로 인해 전 층으로 급속히 연기가 확산된 상황에서 일부 투숙객들은 ‘수건에 물을 묻혀 코와 입을 가리는 방법’ 등 평소 소방훈련을 통해 배웠던 대피요령을 활용해 목숨을 구할 수가 있었다.
한 여성 투숙객의 경우 휴대전화로 119 신고를 하면서 대피를 했는데, 객실 문을 열자마자 시커먼 연기가 객실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연기가 들어와요.”라는 신고 여성의 다급한 외침에 119상황실 직원이 곧장 “문을 닫으세요.”라고 알려 줬고, 계속해서 “수건에 물을 묻혀 코와 입을 가린 채 바닥에 엎드려 구조를 기다리세요.”라는 지시를 했다. 여성 투숙객은 지시에 따라 대피해 있다가 안전하게 구조될 수 있었다. 또 다른 남성 투숙객은 가득 찬 연기에 대피할 곳을 찾지 못해 허둥대던 중, 군복무시절 배웠던 화재대피요령을 생각해 냈고, 욕실에서 수건에 물을 묻혀 입과 코에 대고 객실 내부에서 기다리던 중 정신을 잃었지만, 다행히도 119구조대에 의해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었다. 이처럼 생존자 상당수가 평상시 배웠던 대피요령대로 대응함으로써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반면 소방안전규정에 위반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방화문은 모텔화재의 인명피해를 키운 가장 큰 원인이 됐다. 물론 화재의 근본원인은 방화였지만, 객실 한곳에서 시작된 불과 연기가 열려있는 방화 문을 통해 모텔 전체로 급속히 확산되는 바람에 무려 3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대부분이 연기흡입으로 인한 피해였다.
얼마 전, 한 지인의 아들이 관광 관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시내에 위치한 꽤 큰 호텔에 취직을 했다며 인사를 왔다. 소방관 직업 특성상 아이에게 근무하는 곳의 소방안전이 어떤지에 대해 물었다. 전혀 모른다는 답변이었다. 화재와 같은 재난사고가 발생하면 자기 몸 하나 대피하기도 어려울 아이에게, 차마 투숙객과 이용객들을 어떻게 대피 안내할 것인지 물을 수는 없었다. 직원에게조차 소방안전교육을 소홀히 하는 것이 우리나라 숙박시설의 현주소인 듯하다.
숙박시설을 비롯한 대부분의 소방대상물들이 비상대응계획과 소방훈련, 소방교육 등 안전에 소극적인 데는 솔깃할 만한 유인책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숙박업소의 보험가입 시 언더라이팅 단계에서부터 소방안전관리 방식에 대한 리스크 측정을 통해 추정최대손해액 등을 엄격하게 산출하고 보험료 산정에 활용하는 방법은 어떨까? 화재보험의 경우라면 보험전문가가 직접 현장을 방문해 소방시설의 성능 및 유지관리상태, 비상대응계획의 현실성, 소방훈련 참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등급에 따라 보험료를 책정하는 방식도 좋을 것이다. 현재도 내진보강을 한 건물에 대해서는 보험료 할인 및 세제감면 정책이 있는 만큼 한 번쯤은 고려해 봄직도 하다.
정진항
서울용산소방서 소방행정과장
CIFI(보험조사분석사), CFEI(미국화재폭발조사관)
글 : 정진항 / 디자인 : 강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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