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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 & Cafe,Bar

호텔앤레스토랑 - 메르씨엘 윤화영 셰프 셰프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지난 2월, 프랑스의 레스토랑 가이드인 ‘라 리스트 2019’ 시상식에 오른 17곳의 레스토랑 가운데 단 한 곳의 레스토랑이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탄생했다. ‘메르씨엘’은 피에르 가니에르 파리를 비롯해 프랑스문화유산으로 꼽힌 크리옹 호텔, 포시즌스 호텔, 파크 하얏트 호텔, 플라자 아테네 등 여러 거장들의 레스토랑에서 내공을 쌓은 실력파 셰프인 윤화영 셰프가 한국에 돌아와 첫 선을 뵌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지난 8년 간 메르씨엘을 운영하며 한국 다이닝의 현실을 공감하는 윤화영 셰프의 인터뷰에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셰프들의 고뇌를 담았다. 국내 셰프들의 롤 모델이자 하드트레이너로서 내공이 담긴 조언 그리고 요리와 와인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알랭 뒤카스의 요리가 인생을 뒤바꿔

프랑스 유학 중 일본인 친구의 손에 이끌려 그 곳에 가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꿈을 가졌을지 모른다. ‘알랭 뒤카스’의 레스토랑에서 경험한 신선한 충격. 요리를 선택할 생각이 전혀 없던 내 삶에 ‘이건 뭐지?’하며 훅 들어온 바로 그 시간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젊은 시절에는 사진에 푹 빠져있었다. 레스토랑에 들어가 일을 했지만 요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진에 필요한 장비 값을 벌기 위해서였다. 당시의 연이 이어져 군대에서 취사병으로 차출됐고 그 때도 역시 사회에 나가서 절대로 요리는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군대에서 많은 시간을 갖고 진로를 고민하다가 결국 사진은 접었다. 그리고 제대 후, 예술사를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 어느 날 어학원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가 알랭 뒤카스의 레스토랑에 한 번 가보자고 했다. 꿈에도 몰랐다. 그 날 밥값 30만 원이 요리 인생의 밑천이 될 줄은. 


“그 날의 경험은 제게 충격이었어요. 이후로 인터넷을 다 뒤져 알랭 뒤카스에 대한 것을 검색하고, 알랭 뒤카스의 책을 보면서 그를 제 인생의 롤 모델로 삼았죠. 시니컬하고 차가웠지만 요리에서 만큼은 셰프에게 느껴지는 광기가 어마어마했어요.”


윤화영 셰프는 그 길로 예술사가 아닌 요리를 선택했다. 파리의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루와 프랑스 상공회의소가 설립한 ESCF(École Supérieure de Cuisine Française)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파리의 크리옹 호텔에서 6개월의 스타쥬(견습생) 기간 동안 18시간씩 일을 했다. 이후 실력을 인정받아 정식 입사해 2년간 크리옹 호텔에서 경력을 쌓았고 플라자 아테네의 알랭 뒤카스 레스토랑과 파크 하얏트 호텔, 피에르 가니에르 파리 오픈 멤버, 포시즌스 호텔 조지 V 파리 차석 셰프에 이르기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윤화영 셰프는 11년 동안 프랑스에 머물면서 알랭 뒤카스, 피에르 가니에르, 장프랑수와 피에주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셰프들과 함께 일하며 요리 인생의 기반을 다졌다. 2011년 귀국과 함께 이듬해 부산에 프렌치 레스토랑 메르씨엘을 열어 오너 셰프로 활동하고 있으며 해비치의 파인다이닝 밀리우 오픈과 조선호텔 나인스게이트의 리뉴얼에 F&B 디렉터로 참여했다.

 

프랑스 레스토랑 가이드 ‘라 리스트 2019’에 오른 메르씨엘

#셰프와 요리에 대해

 

국내에서 독보적인 프렌치 셰프시죠. 윤화영 셰프님, 근황이 어떤가요?
메르씨엘이 조만간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가요. 오픈 당시에는 기존 건물을 1, 2층으로 나누어 1층은 브라세리로 2층은 파인다이닝으로 운영했지만 지금은 2층만 운영하고 있어요. 원래도 브라세리로 시작한 것인데 감사하게도 고객 분들이 우리가 하는 일을 파인하게 봐주셔서 파인다이닝이 됐어요. 이제 브라세리로 교통정리하려고요. 그리고 올 연말에서 내년 초 사이 발간될 800페이지 분량의 라루스 와인 사전도 번역하고 있어요. 메르씨엘의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면서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귀국하셨을 당시 한국에는 파인다이닝이라는 개념이 막 움트고 있었어요. 특별히 부산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었나요?
프랑스 요리는 해산물이 자주 등장하고 바다와 많은 연관이 있어요. 상해, 샌프란시스코, 싱가포르 등 세계적인 미식도시들도 항구도시고요. 이런 미래 가치를 보고 항구도시인 부산을 선택했지만 금융업이 발달한 이들 국가와는 다르게 2차 산업이 발달한 부산은 소비패턴이 달랐어요. 결과적으로 고객이 원하는 방향과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죠. 오픈 당시 서울에서도 시도되지 않은 것들을 부산에서 하고 있으니 말예요. 시행착오도 겪고 좌절도 하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왔어요. 그리고 이러한 시도를 다양한 방법으로 풀어나가려고 해요. 무엇보다 부산에도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시장의 파이도 좀 더 커져야 하고요.

메르씨엘 오픈할 때 주방 설계에도 직접 참여하셨다고요.
음식 퀄리티의 반은 주방 설계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장비, 브랜드, 예산, 동선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고, 특히 주방과 손님 사이에는 서버가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이 반드시 필요해요. 그래서 스시 다이가 아니고선 바 다이닝이나 오픈 키친은 적합성 여부를 반드시 따져봐야지요. 프랑스 주방의 경우에는 소음이 많은 편이에요.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팬 닿는 소리, 음식 냄새, 열기가 한데 섞이죠. 그래서 저는 바 다이닝이나 오픈키친은 지양하는 편이에요. 

뭐 하나에 꽂히면 매진한다고 하죠. 악착같은 면이 있으세요.
크리용 호텔에서는 21시간씩 일하기도 했어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일하냐고 묻곤 했는데 답은 단순해요. 우리 일은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일을 대하는 태도, 즉 직업에 대한 전문성은 일본에 배울 점이라고 생각해요. 당시 워킹홀리데이로 프랑스를 찾는 일본인이 많았는데 요리를 배우고자하는 그들의 집요함과 광기가 부러울 만큼 일에 대해 열정적이었어요. 저도 그들을 능가하려면 그런 광기로 버텨야 했죠. 1년 중 쉬는 날은 단 4일 뿐.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어요. 가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저는 요리사는 이렇게 사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요리사가 되고 싶다면 남다른 각오가 있어야 해요.     

 

하드 트레이너로도 유명하신데요. 
지방의 인력구조를 보면 서울로 몰리는 원탑구조가 심각해요. 미쉐린이 자리 잡고부터는 더 심해졌지요. 힘들게 가르쳐 놓으면 지방 인력이 서울로 가거든요. 물론 그들 입장에서 이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죠. 저는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아요. 사실 메르씨엘은 서울보다 부산의 호텔로의 인력 유출이 심해요. 대기업의 네임 밸류나 금전적, 비금전적 메리트를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가끔 지칠 때도 있지만 잘 성장한 친구들도 있어 뿌듯해요. 어디 가서 일 잘하는 직원이 메르씨엘 출신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보람도 느끼죠. 

책이나 와인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등장하실 만큼 와인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셰프이기도 하고요.
와인을 할 것이냐 요리를 할 것이냐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어요. 파리 포시즌스에서 유명 소믈리에와 함께 일할 때였어요. 그 덕에 좋은 와인을 쉽게 접하게 됐어요. 여러 와인을 테이스팅하며 와인의 매력에 차츰 젖어들었고 쉬는 날이면 먼 곳에 있는 와이너리까지 찾아다니며 와인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었죠. 하지만 직업과 취미는 다르잖아요. 와인이 직업이 되면 큰 즐거움을 잃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와인도 음식의 영역이므로 음식과 와인을 페어링하는데 소믈리에보다 요리사가 더 유리하지 않겠어요? 본인의 음식에 더 잘 맞는 와인을 고를 수 있잖아요. 메르씨엘을 오픈하면서 와인을 직수입한 것도 당시로서는 처음이었지요.

 

# 셰프의 파인다이닝

 

“파인다이닝, 콘셉트가 중요한 게 아니다. 
레스토랑의 본질적인 기능인 ‘식사’에 주목해야... 
손님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관건”

 

국내 파인다이닝이 급격히 성장한 건 사실이지만 과도기에 접어들었다는 말도 많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과도기의 문턱까지 갔다가 못 넘고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에는 정치적인 영향이 컸어요.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청탁금지법이요. 파인다이닝의 대부분은 접대 손님인데 청탁금지법의 시행으로 손님도 줄고 몇몇 소수의 일반 고객들에게 맞추다보니 퀄리티는 떨어질 수밖에요. 소비의 주축인 30대가 파인다이닝에 큰돈을 지불하는 게 쉽지 않은데다 소통창구인 SNS를 타고 비싸다는 편견만 심어주게 돼 시장이 성장할 수 없어요. 파인다이닝의 정점을 찍었던 게 2012년부터 2014년 사이인데 이후 세월호, 메르스, 청탁금지법, 촛불집회 등 시장 침체기는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는 분위기예요. 실수입은 줄고 세금은 올라 소비력도 상실했지만 인건비나 물가 상승으로 경영은 더 어려워졌거든요. 지금 주변의 많은 레스토랑에서도 문을 닫거나 긴축경영을 하고 있는 상태죠. 

 

가니쉬를 중시하는 윤화영 셰프가 가장 애착을 갖는 요리인 ‘부추 피스투를 곁들인 그릴에 구운 양갈비'

레스토랑을 하다보면 콘셉트의 한계에 직면하게 되는데요. 메르씨엘은 어떤가요?
저는 콘셉트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메르씨엘도 그냥 양식당일 뿐이죠. 무엇보다 손님들이 메르씨엘의 요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식당이 존재하는 1차적인 기능, ‘식사’라는 것에 충실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이미 수명에 한계를 두는 것과 같아요.   

 

한국에서 프랑스 요리라고 하면 너무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편중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요. 실제 프랑스 요리는 어떤가요?
파인다이닝의 이미지 자체가 고가에 맞춰졌지만 프랑스는 작은 비스트로도 많고 모든 음식이 다 비싸지 않아요. 우리가 흔히 프랑스 요리로 잘 알고 있는 어니언 수프는 프랑스에서는 한국의 신선로처럼 일반 사람들이 잘 먹지 않는 음식이에요. 냉동 에스까르고는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고 단순히 오븐에 익혀 내면 되는 브라세리 요리에 속해요. 관광객용 상품이죠. 개구리 뒷다리는요? 단품에 100유로씩 하는 고급요리인데 쉽게 먹기 힘들죠.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프랑스는 정말 축복받은 땅이에요. 툰드라 빼고 거의 모든 기후를 갖고 있고 바닷물의 온도며, 산의 높이가 다 달라요. 육가공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요. 일본에서 조차 익히는 생선은 프랑스의 것을 사용할 정도로 프랑스는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해산물이 좋은 나라에요. 요리에 사용하는 지방의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노르망디에서는 치즈나 버터로, 남서부 지방에서는 푸아그라, 알자스에서는 돼지 지방, 프로방스에서는 올리브 오일을 많이 사용하는데 대체로 한국에서의 프랑스 음식은 무겁다고 알려져 있어요. 한국에 알려진 프렌치는 미국에서 일본을 거쳐 건너왔다고 봐요. 분위기가 프렌치 일 뿐 정작 프랑스 사람들이 잘 먹지 않는 무거운 음식을 팔고 있는 거죠.    

셰프님이 생각하는 파인다이닝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과거에는 식탁보의 유무, 식기 등 여러 가지를 따졌지만 이제는 기준이 없다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 즉 파인다이닝을 찾는 고객들의 수준도 고려돼야 해요. 가령 전복죽집도 파인다이닝이 될 수 있어요. 그건 장르의 문제가 아닌 균형의 문제인거죠. 한국의 파인다이닝을 세계적인 파인다이닝의 기준에 견주어보면 직원, 식재료, 기물, 가격 등 모든 조건을 고려했을 때 다소 저평가돼 있어요. 충분한 경험을 갖추지 않은 채 난립하고 있는 레스토랑이 유행을 핑계로 파인다이닝을 내세우면 가격과 퀄리티에 납득할 수 없는 고객들은 ‘파인다이닝은 별로야’라고 인식하게 되고 결국 파인다이닝의 설정이 잘못될 수 있어요. 한국은 유행이 잦아 새로운 콘셉트에 의한 시장 진입이 쉬운 편이에요. 20만 원짜리 음식을 팔려면 적어도 경력 15년은 나와야 하는데 국내에서 34세라 한들 고작 경력 6년이고, 수셰프 경력 10년, 12년에 완성도 높은 요리를 하려면 셰프의 경력은 그것 이상이어야 하거든요. 결국 짧은 경험으로 쉽게 시장에 진입한다면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다시 강조자면 트렌드는 파인다이닝이 아닙니다. 트렌드는 결국 소멸하고 말지만 파인다이닝은 완성도가 중요해요. 단단한 셰프의 철학과 고집이 있어야 하지요. 


글 : 노혜영 / 디자인 : 임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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