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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 & Cafe,Bar

호텔앤레스토랑 - 내 눈에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너, 뮈니엘(Meunie're)

버터구이를 한 가자미 살을 내 입에 넣어 주며 미소 지었다. 엄마가 아이 입가에 묻은 음식물을 닦아주듯 입가에 묻은 버터를 닦아주며 “먹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다.” 
그 말에 잠깐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사랑의 눈을 뜨게 하고 요리의 눈을 뜨게 해 준 피시뮈니엘(Fish Meunie’re)! 
뜨거운 생선 버터구이에 레몬즙을 눌러 짜 넣고 크게 잘라 먹으면 입 안에서 사르륵 녹아내리는 것이 커틀렛에 치즈 퐁듀가 혼합된 듯 했다.
“아~” 눈을 감으며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다.

선배는 요리경연대회에서 여러 차례 상을 받아 후배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도 멋진 파티셰가 되고 싶어 지원한 과에서 선배가 만든 요리를 보고 나서 내 스스로가 욕심인 것을 알게 됐다.
“선배님 요리가 작품 같아요.
“너도 동아리활동 열심히 하고 대회 참관도 하고 특히 컬러공부하면 잘 할 수 있어.”
“정말요?”
수요일 오후 동아리방에서 해산물 요리와 그에 어울리는 와인을 세팅하기로 했다.
“가자미는 5장 뜨기를 해야 하는데 칼날을 생선뼈에 가까이 해서 살을 발라내면 돼.”
“생선살에 소금, 후추 밑간을 하고 수분을 닦아주고 밀가루를 묻힌 후 오래 두지 말고 여분의 밀가루를 털어내고 후라이팬에 버터를 녹인 후 생선을 구어.”
“버터가 타지 않도록 팬 온도도 조금 낮추고...”
“해산물 요리라고 꼭 화이트와인만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마.”
선배는 해박한 지식으로 와인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너무 멋져 연예인을 보는 듯 했다.  TV에서 보는 것처럼 머리 위로 손을 들어 소금을 뿌리는 쇼맨십은 잊으라. 고객을 위해 즉석에서 주문과 동시에 요리를 하는 조리사는 땀흘리는 직업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된다는 말에 셰프의 환상이 깨어졌다.
“요리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그릇에 담아내는지가 더 중요해. 비주얼이 좋아야 고객들이 맛있고 멋지고 고급스러운 요리로 느끼기 때문이지.”
선배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깨웠다. 
“와인은 비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고 본인의 취향에 따라 즐기는 와인을 달리 할 수 있어.”
“오늘은 ‘카모미 나파 밸리 샤도네이’라는 미국 와인을 준비했으니 조금씩 음미해 봐.”
와인까지 챙겨오는 선배의 열정에 오늘의 요리는 최고였다.
꽤 시간이 지난 줄도 모르고 있다가 실습실 청소 당번인 나는 실습실을 정리하고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이 있어야겠다. 우리집에 가서 우산 가지고 가.”
지하철역까지 10분 남짓 걸어가야 하는데 선배 집은 3분 거리여서 그곳까지 둘이서 비를 맞으며 걸어갔다. 선배가 지내는 원룸을 다녀온 동기들의 얘기로는 혼자서도 곧잘 요리를 해서 후배를 불러 술 한 잔 한다는 말이 생각나서 나도 가보고 싶었다.
“선배 방을 아주 멋지게 꾸며놨다고 하던데 방 구경해 봐도 돼요?”
“아침에 정리하지 않고 나와서 지저분한데... 참 너 오늘 뮈니엘을 먹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더라.”
“제 것과 선배가 하신 것과 맛이 엄청 차이가 났어요. 진짜 맛있었어요.”
우산을 받아들고 나와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내내 선배가 “먹는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한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그 한마디로 인해 어제와 다른 내가 됐고, 선배의 관심이 요리의 열정을 태우는 기름이 돼줬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은 마술적이야.” 비좁은 방에서 어설픈 연인들의 흉내로 소꿉놀이를 하던 “너를 내 꺼하고 싶다.”는 이기적인 생각에 한 학기 동안 둘의 사랑은 뜨거웠다. 마술에 걸려든 것처럼 아이스크림이든, 라면이든, 한 잔의 소주이든 간에 함께 나눠 먹는 모든 맛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풍성한 향과 맛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 채 만들어주던 많은 음식들은 그 눈빛과 함께 떠오르고 숨소리와 나란히 추억의 집에 간직됐다.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 “우리 취업하고 나서 만나면 안될까?” 뒷말을 흐리며 말했다. 오가는 대화보다는 흐르는 침묵이 끊어내지 못할 그들의 정(情)이 남아 있었다. 
“내가 싫어졌어?”
“미완성의 내 미래에 대한 진지한 시간을 갖고 싶어서. 취업돼 안정이 되면 생각도 커질테니 너에게 더 잘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누가 한사람이 헤어지자고 하면 쿨하게 헤어지기로 한 약속, 잊지 않았어.”
“이 사랑은 배고플 것 같아서 나도 싫어.”
선배가 만들어주던 음식은 언제나 따뜻하고 에로틱하고 맛있었는데, 따뜻해야 맛있는 뮈니엘은 식어가고 있었다. 눈물이 났다.
좁은 창을 통해 밀려오는 푸른 향기는 온몸은 차갑게 물들였고, 창가에 머물던 바람이 코를 간지럽혔다. 
“우리가 사귀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요리였지. 너무 맛있게 먹던 네 모습이 지금도 생각나네. 아일랜드 작가 마거릿 울프 헝거포드(Margaret Wolfe Hungerford)는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눈 속에 있다(Beauty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고 했어. 오늘 내 눈에 네가 가득 차 있어.” 그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손 대지 않은 뮈니엘은 풍성한 버터향은 가라앉고 수렴의 레몬즙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었다.


김성옥

동원대학교 호텔조리과 교수

kso5200@tongwon.ac.kr


글 : 김성옥 / 디자인 : 강은아